[기고] 어느 소방관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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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느 소방관의 기도
  • 김귀영 독자
  • 승인 2016.12.1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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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귀영(순창읍 민속) 전 초등학교 교사

 얼마 전 네이버 뉴스에 이런 기사가 떴다. “순직 소방관의 추모비를 유족이 세우는 나라!!”

지난 14일 오후 서울 홍제동의 연립주택 밀집지역. 이면 도로를 마주하고 빽빽하게 들어선 연립주택 안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도마질 소리, TV 소음, 아이들 웃음이 흘러나왔다. 3~5층 높이의 연립주택들 사이로 이보다 조금 낮은 2층짜리 연립주택이 하나 서 있다. 15년 전인 2001년 3월 4일 새벽 이 자리에 있던 연립주택이 화염에 휩싸였다. 불길은 5분여 만에 잡혔다. 60대 집주인은 “1층에 아들이 있다”고 애원했다. 소방관 9명이 생존자를 찾아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건물은 낡고 물을 많이 머금은 상태였다. 소방관들이 진입한 순간 건물은 ‘우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소방관 6명이 목숨을 잃은 ‘서울 홍제동 화재’였다. 박동규(46) 소방장, 김철홍(37)ㆍ박상옥(33)ㆍ김기석(43) 소방교, 장석찬(35)ㆍ박준우(31) 소방사 등 서울 서부소방서(현재의 은평소방서) 구조대원 여섯 명이 숨진 채 잔해 속에서 발견됐다. 소방관ㆍ경찰관ㆍ군인은 국민의 안전을 최일선에서 책임진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는 이들이 희생됐을 때 잠시 관심을 가졌을 뿐 곧 잊어버렸다. 홍제동 화재 당시 정부로부터 2년만 인정받던 요양기간이 ‘완치 시까지’로 바뀐 것은 무려 10년이 지난 2011년이 돼서다.

우리 사회는 사회를 위해 순직한 이들을 추모하는 데도 소홀하다. 홍제동 사고 이후 순직한 소방관을 기리는 추모비를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유족들이었다. 이들은 남편ㆍ아버지ㆍ아들ㆍ형제를 잊지 않기 위해 자비를 들여 이들의 얼굴을 동판에 새겼다. 추모비는 서울 서부소방서에 있다가 2013년 서울소방학교로 옮겨졌다. 추모비 뒷면엔 ‘어느 소방관의 기도’가 새겨 있다.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신이시여 /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 저에게는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 신속하고 효과적인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 신이시여, 출동이 걸렸을 때 / 사이렌이 울리고, 소방차가 출동할 때 / 연기는 진하고 공기는 희박할 때 / 고귀한 생명의 생사를 알 수 없을 때 / 내가 준비되게 하소서 / 신이여! 열심히 훈련했고 / 잘 배웠지만 나는 단지 인간사슬의 한 분입니다 / 지옥 같은 불 속으로 전진할지라도 신이여 / 나는 여전히 두렵고 / 비가 오기를 기도 합니다 / (중략) / 그리고 /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지난해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제목의 책을 낸 오영환(28) 소방교는 “소방관의 처우가 개선돼야 하는 것은 위험한 직업이라서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는 소방관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사회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어느 소방관의 기도>는 소방관의 뜨거운 사명에 관한 이야기다. 또한 한 청년 소방관이 치열한 소방 현장의 최전선에서 경험했던 절망, 슬픔, 분노, 희망, 감격 그 모든 순간에 대한 기록이자 너무나 쉽게 잊히곤 하는 대한민국 모든 소방관의 이야기다.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 때문에 상처받고, 매년 현장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선배들을 보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방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고, 한 편 한 편이 차곡차곡 모여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이 책에는 그가 소방 현장의 최전선을 달리며 경험한 좌절과 희망, 가슴 벅찼던 순간들이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담겼다. 모두가 도망쳐 나올 때 그곳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가 펼쳐놓은 가슴 벅찬 이야기들은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서 잊어버리곤 하는 ‘살아 있음’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준다.
일독을 권하는 바, 동절기 화마에 모두 함께 염려하기를 바라며, 또한 수 많은 위대한 소방관들에게 경의와 찬사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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