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민을 졸지에 채무자, 범법자 만든 박근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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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농민을 졸지에 채무자, 범법자 만든 박근혜 정부
  • 김효진 이장
  • 승인 2017.03.2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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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풍산 두지마을 이장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우편이 왔다. 지역농협이나 면사무소도 아닌 중앙정부로부터 우편이 왔다는 게 생경하면서도 움찔하다. 유례없는 쌀값폭락으로 최종 결정된 공공비축미 가격이 우선지급금보다 낮게 책정되었으니 과다하게 지급된 금액을 내어놓으란 얘기다. 환수할 금액과 계좌번호까지 적시하고는 동시에 수령할 몫인 변동직불금 금액까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근데 변동직불금 액수가 작년보다 많다. 내가 생산한 나락이 30년 전 가격으로 부당대우 받으며 여기저기 팔려나간 것은 잠시 잊은 채,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순간이나마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는 꼬락서니라고는!
안내문 행간의 숨은 뜻인즉, 작년보다 인상된 직불금 -쌀값폭락의 위로금쯤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을 지급할 터이니 그야말로 몇 푼 안 되는 환수금은 문제될 게 없지 않느냐 하는 거다. 참 교활하다. 뻔뻔하고도 집요하다.
이번 우선지급금 환수 조치는 초유의 일이기도 하거니와 국가가 농민을 홀대하는 태도가 너무도 적나라해?- 공분을 사고 있다. ‘쌀값 똥값 사태’는 분명코 정부의 농정철학 부재에서 비롯했고, 무분별한 쌀 수입개방과 수입쌀 재고 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쌀값 결정을 시장에 맡기자며 공공비축제도를 도입해놓고선, 도리어 정부는 나락공급이 집중되는 추수기에 애써(!) 미국 식용 쌀을 수입해서 쌀값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려왔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는 물가상승 집중관리 품목 52개 중 첫 번째 관리대상에 쌀을 지목하고 시장개입을 통해 노골적으로 쌀값 하락을 유도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 의무도입 물량으로 해마다 40여만 톤씩 들여온 수입쌀은 남북교류가 전면 중단된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간 차곡차곡 쌓여 곳간마다 넘쳐나고 있다.
또한, 쌀값 폭락에 대한 대책이라며 내놓는 것이 논 면적을 계속 줄이고 농민들을 농업에서 손 떼게 하는 것 말고는 없다. 쌀 과잉 생산과 소비 감소를 쌀값폭락의 원인으로 진단하는 정부로서는, 그 답이 뻔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지금 전국적으로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 환수 거부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가마당 860원이고, 전체 25만 가구, 총액 197억, 호당 평균 78,000원. 대기업은 수십 수백억을 최순실과 박근혜에게 바치며 은밀하게 거래했지만, 대한민국 전체인구 5%도 안 되는 투표수를 보유한 농민은 이미 그들의 거래 대상조차도 못되고 일방적으로 고혈을 짜내 바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자조 섞인 표현으로 ‘등외 국민’이란 말이다.
갑오년 당시 농민을 에워싼 탐욕의 먹이사슬을 <금강>의 신동엽 시인은 이렇게 표현했다.
‘… 그래서, 큰 마리 낙지 주위엔 일흔 마리의 새끼 낙지가… 칠백 마리의 말거머리 휘하엔 만 마리의 빈대 새끼들이, 아래로부터, 옆으로부터, 이를 드러내놓고 농민 피를 빨아 열심히, 상부로 상부로 올려 바쳤다.’
땅의 덕성을 닮은 농민들은 대체로 변화에 둔감하고 보수적이며 방어적이고 유순하다. 하지만, 유사 이래 그 농민들이 몸을 일으키면 왕조가 사라지고 태동했다. 이번 사태가 자칫 조병갑의 학정마냥 역사의 고갯길을 넘는 혁명의 단초가 될 수 있음을 위정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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