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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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신문
  • 강성일 전 순창읍장
  • 승인 2017.04.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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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일 전 순창군청 기획실장

얼마 전에 집사람이 내게 넌지시 말했다. 당신도 이젠 시간이 많으니 대학을 다녀보라고…
퇴직해서 집에만 있는 내가 답답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내가 말했다. 나! 대학 다니고 있어…
집사람이 의아해한다. 자기도 모르게 대학을 다니고 있는가 하는 표정이다. 어느 대학에? 나, 인생 대학 신문학과 다니고 있어.  ?? … !! …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4명이다. 나, 집사람, 아들, 딸. 나만 빼곤 모두 대학을 나왔다. 시대의 흐름이라 생각한다. 대학생활에 대한 동경은 가져 보았지만, 대학 공부를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전문분야를 공부하기 위해서라면 대학을 다닐 필요가 있겠지만 취직하고 일반적인 삶을 사는 데는 고등학교 학력으로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은 국민학교(1960년대) 도덕 시간에 습자시간(붓글씨)에 다 배웠었다. “근면, 성실, 정직, 효도, 솔선수범, 책임완수, 이웃사랑, 나라에 충성…” 등등, 알고는 있지만 실천을 못 하거나 부족할 따름이다. 그리고 지금 생활에 필요한 정보, 지식은 신문으로 충분하고도 남는다.
나는 신문 2부를 본다. 중앙지 한 부와 열린순창 신문을 보고 있다. 인터넷으로 신문을 볼 수 있지만, 종이신문이 좋다. 가지고 다니면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누워서도 볼 수 있고, 보다 졸리면 얼굴을 덮을 수도 있고, 보고 나서는 여러 용도로도 쓸 수 있다.
내가 신문을 읽기 시작한 것은 1980년 군청에서 근무하던 때부터다. 그 이전에는 학교 마치고 군대 다녀오고 공무원 시험 치르고 했으니 신문 볼 겨를도 없었지만 1970년대는 신문 보는 게 일반화되지 않았었다. 신문은 유식한 사람, 생각 있는 사람만 보는 것 같았다. 나 같은 사회초년병은 신문 볼 엄두도 내지 않았었다. 신문을 꾸준히 읽은 덕분에 지금은 기고도 하지만 예전에는 글짓기도 못했었다.
1974년 군대 입대할 때였었다. 집에서 입고 갔던 옷을 군복으로 바꿔 입으면서 옷을 집으로 보냈다. 옷 꾸러미 속에다 넣을 편지를 쓰라고 했다. 갓 스무 살 먹은 어린 청년들이 군대에 불려 왔으니 얼마나 집 생각이 났겠는가! 그땐 12월 겨울이었다. 몸과 마음은 얼마나 추웠던가! 예전 생활이 그립고 앞날이 두려워서 다들 훌쩍거리며 편지를 썼다. 나도 눈물은 났지만, 편지를 쓰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은 있었지만, 편지라는 걸 써본 적도 없었고 갑자기 효도 스러워 지는 내가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은 환경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1980년 군청에 들어와 맡은 일이 여론 업무였다.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이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그 정권은 켕기는 게 있었는지 국민들의 민심과 여론에 신경을 많이 썼다. 당시 중앙 부처인 내무부와 도청에는 여론을 전담하는 부서가 생겼고 군청에도 담당자를 두었다. 내가 그 일을 맡았는데 공무원을 막 시작하던 때라 사회 물정에도 어두웠고 어설펐었다. 상급기관의 지시는 많은데 경력은 짧고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읍면에 무리한 요구도 했었다. 미안한 일이었다. 여론, 민심을 알기 위해서는 신문을 읽어야 했었다.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 세상 모든 일을 쉽게 알 수 있지만 그땐 신문이 중요한 수단이었다. 신문을 통해 정부, 도의  흐름을 알고 방향을 잡을 수가 있었다. 독자 기고 난에서는 아이디어도 얻을 수가 있었다. 순전히 일 때문에 신문을 보게 된 거였다. 시험보기 위해 벼락치기 공부한 것과 같은 경우였다. 신문을 접하다 보니 사회현상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또 거기에는 지식도 타인의 삶도 세계의 흐름도 있었다. 공부가 됐었다. 그 후 여러 부서에서 일했지만, 언론과 관련 있는 공보계장, 기획실장 때 세상살이에 대해 많이 배웠다.
지금 광주 집에서 보는 중앙지 한 부는 매일 아침이면 아파트 문 앞에 단정히 놓여있다. 문 열면 바로 집을 수 있게 위치까지 배려해준 마음이 느껴진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올 때도 빠짐없이 배달된다. 매달 구독료 지로용지가 오면 바로 낸다. 고맙기 때문이다.
열린순창은 월요일 오후에 받아본다. 순창에 있으면 목요일에 볼 수 있지만 광주라서 늦다. 우편함에 다소곳이 꽂혀 있는 신문을 보면 좋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기쁘다. 무슨 소식이 있을까? OO기자는 어떤 기사를 썼을까? 기획기사는 뭘까 등! 여러 소식이 궁금하고 반갑다. 제작진의 노고와 애환도 느껴진다. 이웃을 따뜻하게 하는 미담과 세월의 무게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사는 삶을 취재한 기획기사는 지역신문의 본령을 충실히 이행한 가치 높은 기사라고 생각한다. 유익하게 보고 있다. 지역신문은 우리 고을의 일기라 생각한다. 세월의 두께가 쌓이면 역사가 될 것이다.

군민, 독자들께 부탁하고 싶습니다! 글도 보내주시고 이웃의 소식도 알려주시고 취재요청도 하시고 구독료도 잘 내주시고… 주변 사람들 외지에서 사는 가족 친구들에게도 구독을 권하면 금상첨화 일겁니다!! 읽는 사람이 많아야 신문을 더 잘 만들 테니까요.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려면 비를 맞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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