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천리마실길 ‘3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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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천리마실길 ‘3코스’
  • 서보연 기자
  • 승인 2018.02.2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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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사람을 만나는 길
구미교-용궐산-장군목-현수교

 

2월 22일 10시 20분 지북ㆍ구미행 군내버스를 순창터미널에서 기다린다. 작은 버스가 터미널 주차장에서 10시 15분쯤 승강장으로 들어오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차례차례 버스에 오른다. 버스요금은 내릴 때 내면 된다. 순창 어디든 천 원. 천 원의 행복이다.
버스를 타고 20분가량 가니 예향천리 마실길 3코스 시작점 ‘구미교’에 도착했다. 버스카드를 카드단말기에 대고 내리려니 기사님이 “그냥 찍으면 안 된다”고 했다. 기본요금 구간은 그냥 카드를 찍어도 되지만 기본요금을 벗어난 구간은 기사가 요금조정을 한 뒤에 찍어야 된단다. 그래야 그 차액을 군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고. 기사님께 나의 성급함을 사과하고 다음에는 기다리다 찍겠다고 인사하며 내렸다.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려 준비 중인 섬진강. 
▲좋은 기운을 내뿜는다는 ‘용궐산 치유의숲’.

 

구미교 버스정류장에서 바로 걸어도 되고, 다리를 건너서 걸어도 된다. 길 건너지 않고 바로 걷는 길은 작은 도서관이 있는 휴드림 펜션, 섬진강 마실 오토캠핑장이 있고 다리를 건너서 걷는 길은 섬진강권역 거북이야영장, 용궐산 치유의 숲, 요산요수 바위 등이 있다. 다리를 건너서 가기로 했다. 구미교 다리를 건너 왼쪽방향으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장군목유원지’ 표지판이 보인다. 장군목유원지까지 4.2킬로미터. 개인 걸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약 한 시간에서 한 시간 삼십분 거리이다. 구미마을 이름답게 귀여운 초록색 거북이가 웃으며 여행을 반겨준다.
길 따라 조금 가다보니 왼쪽에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무덤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섬진강권역 거북이야영캠핑장(섬진복지회관)이 보인다. 예전 마을해설가 워크숍과 평화의소녀상 모임도 했던 장소라 반가운 곳. 마침 일을 보고 들어오는 섬진강권역 사무장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그간의 안부를 나누고 다시 길을 나섰다. 하얀 두릅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가지런히 서있고 매화나무는 겨울눈 속에 매화 잎을 숨겨두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예향천리마실길을 걸었을 때는 섬진강 물 위로, 산 위로 하얀 눈이 쌓였었는데, 어느새 눈은 자취를 감춰버리고 봄을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머리 위 하늘은 연하늘색으로 부드럽고 섬진강에 내려앉은 햇살도 따뜻하다. 바람은 아직 차가워서 걷기 시작할 때 준비한 핫팩을 꺼냈더니 양 손이 너무 따뜻하고 기분이 좋다. 지금까지 산 핫팩 중에 제일 성능이 좋다. 천원 버스에 이어 천원 핫팩! 천원의 행복2!
3코스는 오르막도 없고 갈림길도 없고 섬진강을 따라 가볍게 걷기 딱 좋은 길이다. 이렇게 인생도 큰 오르막이나 내리막길 없이 평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너무 지루하려나. 성취와 발전이 없는 삶이려나’는 생각도 들지만 단순하고 소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감도 크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너무 큰 욕심은 안 부리게 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걷는다. 단순한 걷기라는 행위가 주는 이 위대한 힘은 무얼까? 몸의 근육도 마음의 근육도 튼튼해짐을 느낀다.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나오고 있음을 느낀다.
조금 걷다보니 왼쪽 길가에서 보이는 봄까치꽃! 2018년 처음 본 꽃이다! 까치처럼 봄을 알린다고 해서 봄까치꽃이라고 부르는, ‘큰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 예쁜 하늘색 꽃이다. 정식 등록된 이름은 큰개불알풀꽃! 열매의 모양을 보고 일본 사람이 지은 이름 ‘이노 노후구리’를 직역한 것이다. 국내 최대 식물 커뮤니티 ‘모야모’는 일본식 이름이나 인격 비하의 뜻이 담긴 꽃 30종의 명칭 개선을 위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조사 결과, 큰개불알풀→봄까치꽃, 복수초→얼음새꽃, 왜개연→노랑애기연, 지면패랭이꽃→꽃잔디, 개양귀비→꽃양귀비, 개맨드라미→여우꼬리맨드라미 등 15종의 꽃 이름 개선안이 응답자 9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모야모 관계자는 “큰개불알풀이란 이름은 부르기도 민망할 뿐만 아니라 일제의 잔재가 남은 이름”이라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학자들이 국내에 자생하는 식물을 조사해 꽃 학명에 자신들의 이름을 넣기도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루빨리 봄까치꽃이 정식 이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며 다시 발걸음을 떼고 걷다보니 하얀 솜털 같은 식물들이 보인다. ‘버들강아지’라고 불리는 ‘갯버들’이다. 물가를 좋아하고 3~4월경에 꽃을 피는데 암꽃은 연노란 회색, 수꽃은 노란 녹색의 꽃을 피운다고 한다. 줄기를 자르고 속을 빼내서 버드피리를 만들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 작고 빈 가지에서 나는 맑고 큰 소리가 떠오른다. 월악산국립공원에서 친구들과 버들피리를 만들어서 누가 더 크고 좋은 소리를 내는지 내기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렇게 여행을 하다보면 과거도 만나고 미래도 만난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어디쯤에 서있는지 현재의 나를 만나게 된다.
머리도 마음도 몸도 즐거운 여행 길. 조금 걷다보니 오른쪽으로 용궐산이 보인다. 안내판을 보니 용궐산은 용이 승천하는 모습의 바위산으로 화승조천(火乘朝天 : 아침에 떠오르는 불꽃과 같음)의 기운이 샘솟는 기센 산이라고 적혀있다. 이곳에서 마음을 다스려 기운을 바르게 하면 심신의 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니, 따뜻한 날 용궐산 치유의 숲을 거닐며 명상을 해도 좋을 듯하다.
용궐산을 지나 걷다보니 큰 바위에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글씨가 써있다. 한가로이 자연을 즐기는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본래는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라는 문장으로 알려져 있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슬기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로, 이런 문장이 뒤를 잇는다. ‘슬기로운 자는 동적이요, 어진 자는 정적이며, 슬기로운 자는 즐기며, 어진 자는 오래 산다.’ (네어비 지식백과 참조)
이 글씨는 순창 서예가 남곡 김기욱 씨가 썼다.
‘동적으로 걷고 정적으로 생각해야 겠다’고 다짐하며 걷다보니 저 멀리 현수교와 요강바위가 보인다. 오른쪽 위에 있는 찻집에서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달려 나와 요강바위 표지판 옆에 서서 짓다가 사진 모델이 되어준다.
요강바위로 가보니 생각보다 바위가 엄청 크다. 요강처럼 가운데가 움푹 패인 이 바위는 가로 2.7미터, 세로 4미터, 길이 2미터로 무게는 무려 15톤이나 된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마을주민들이 화를 피해 이 바위에 숨었다고 하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니 실제로 몇 명이 들어가 숨기에 충분하다. ‘바위 속에 한번 들어가 볼까’라는 무모한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저 멀리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무리지어 걸어오고 있다. 알고 보니 연수중인 순창 공무원 모임이다. 김태현 문화관광해설가가 ‘요강바위’에 대해 설명하자 직원들이 요강바위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사진을 찍는다.
내룡마을 정류장에서 순창터미널로 가는 막차가 오후 2시 25분, 2시 50분에 있다. (하지만 버스는 상황에 따라 언제 운행시간이 바뀔지 모르니 출발하기 전에 항상 타는 시간과 장소를 미리 확인해 두어야 한다.) 2시 25분 버스를 간발에 차로 놓치고 운 좋게 50분에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섬진강권역 복지회관에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사람들이 오고 있으니 버스에 내려서 다시 오라고 한다.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사람이기에 주저 없이 버스에서 내려 그곳으로 갔다. 그렇게 네 명이 모였고, 우연한 만남은 저녁 모임시간 전까지 두 시간 가량 이어졌다.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대화는 언제나 좋다.
만남으로 시작한 여행은 만남으로 끝을 맺었다. 예향천리길을 걸으며 봄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나를 만났다. 일거삼득의 여행이다.

▲봄을 알리는 ‘갯버들’.
▲김태현 문화관광해설사가 군 공무원에게 ‘요강바위’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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