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문화센터, 향교ㆍ금과 방성리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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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문화센터, 향교ㆍ금과 방성리 ‘방문’
  • 배요식 순창향교 사무국장
  • 승인 2020.08.1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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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향교(전교 유양희)와 금과면 방성리 곡부공씨 집성촌을 지난 5일, 한국공자문화센터 이육원 원장과 전춘화 부장(홍익대 상경학부 교수)과 촬영팀이 취재했다.
이날 취재에는 한국공자문화센터 총재 겸 성균관유도회 총본부 박홍영 부회장과 공병철 성균관부관장, 공환일 곡부공씨 종친회장, 공환규 씨 등 종친회원 20여명이 동행했다.
순창향교에 도착한 일행은 순창향교 강병문 일요학교장 집례로 대성전에서 봉심례를 올렸다. 이어 금과면 방성마을을 찾아 곡부공씨가 순창으로 입향한 내력을 취재했다.
금과면 방성리는 곡부공씨 집성촌이다. 원래 방그미, 방기미로 불렀다. 공소(孔紹)의 10대 후손이자 공자의 제64대손 학제(學濟) 공동(孔東)이 1594년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화순에서 피난온 뒤 터를 잡고 마을 이름을 방금(訪金)이라 불렀다. 순창군수로 부임한 이성열(李聖烈ㆍ재직 1892~1894) 군수가 마을을 찾아 성인을 찾는 마을이란 뜻으로 ‘찾을 방(訪)’, ‘성인 성(聖)’의 방성(訪聖)으로 개칭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곡부공씨 시조는 공자(孔子)다. 공자 53대손 공완(孔浣)의 둘째 아들 공소(孔紹)가 원나라 순제(順帝)때 한림학사를 지내다 1351년 고려 충정왕 때 공민왕과 함께 온 노국공주를 수행해 평장사의 벼슬을 받고 고려에 귀화했다. 이후 문하시랑평장사(文下侍郞平章事)로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졌다. 본관은 창원(昌原)을 받아 우리나라 공 씨의 시조가 되고 조선 정조 때에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韋)를 본관으로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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