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준회]‘똘레랑스’ 홍세화 선생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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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똘레랑스’ 홍세화 선생의 명복을 빌며
  • 구준회
  • 승인 2024.04.2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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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순창교육희망네트워크 사무국장)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의 저자이자 장발장 은행장인 홍세화 선생이 지난 418일 향년 77세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저서를 통해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관용)을 소개하며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 지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고 평가된다. 선생은 무역회사의 해외지사 근무시절인 1979,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 조직원이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시작하였다. 남민전은 서슬 퍼렜던 박정희 유신독재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 및 기관지를 배포하는 등 반유신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망명시절인 1995년 자전적 에세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통해 망명자로 삶의 폭풍을 겪게 된 과정과 파리생활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독자들의 열광적인 호응과 사랑을 받았다. 그의 책에서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를 설명하는 구절을 찾을 수 있다.

“‘당신의 정치적·종교적 신념과 행동이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우선 남의 정치적·종교적 신념과 행동을 존중하라’, 바로 이것이 똘레랑스의 출발점입니다. 따라서 똘레랑스는, 당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는 독선의 논리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것을 요구하고, 당신의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믿음을 남에게 강제하는 행위에 반대합니다.”

오늘날 세대 간 그리고 젠더 간 갈라져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것 같아 똘레랑스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홍세화 선생은 똘레랑스가 정치적 성향에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똑같이 적용된다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똘레랑스는 당신에게 당신과 다른 것을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이웃을 인정하고, 외국인을 인정하고 또한 당신과 다른 생활방식, 다른 문화를 인정하라고 요구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발 딛고 사는 순창 사회의 똘레랑스 수준은 어떠한지 생각해본다.

1999년 발간된 그의 또 다른 책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서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동물농장에 빗대어 설명한다.

한 동물농장에서 각기 개성을 갖고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온건한 분위기 속에서 오순도순 살고 있다면, 다른 동물농장에서는 생긴 모습도 같고 성질도 같은 한 종류의 동물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살고 있다. 모습이 너무 똑같고 성질도 너무 똑같기 때문인지, ‘너의 고향은 어디지?’ ‘당신은 어느 학교를 나왔소?’ ‘선생의 가문은 어떻게 되시오?’ ‘그대는 고작 힘없는 암컷이로구먼이라고 따지고 구분하며 편가르기를 일상사로 삼고 있다. 그리하여 개성과 창의력이 피어나기도 전에, 모든 동물의 가치는 자궁에서 이미 그리고 어떤 학교를 다녔는가에 의해 일찍이 규정되어 버린다. 이 동물농장에서 개성과 창의력을 꽃피우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출신성분, 학벌, 성별에 의한 구분 짓기를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어 얼굴이 후끈거린다.

홍세화 선생은 경범죄 등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생활고 등 어려운 형편으로 벌금을 낼 수 없는 빈곤·취약층을 돕기 위해 20153장발장 은행을 설립하였다. ‘장발장들만이 빌릴 수 있는 이 은행은 개인과 단체의 기부로 운영되고 있으며 소년소녀가장, 미성년자, 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권자 또는 차상위계층이 우선 대상으로 최대 300만원까지 신용조회 없이 무담보, 무이자로 대출해주고 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인 장발장이 생계 부양을 위해 빵을 훔치고 5년형을 선고 받은 이후 수차례 탈옥시도로 인해 총 19년 형을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세상의 장발장들에게 이 은행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언론에 의하면 2023년 말까지 1250명에게 217400여만 원을 빌려줬고 202312월 말 기준 299번째 대출금 전액 상환자가 나왔다고 한다.

<한겨레>에 지난해 1월 마지막으로 실린 홍세화 칼럼 마지막 당부 :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에서 그는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고 세상을 떠났다. 홍세화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똘레랑스를 실천할 것을 다짐하며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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