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앞둔 지난 16일 읍내 재래시장은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채소와 과일, 곡물상은 물론 어물전에도 사람들이 넘쳐났다. 군내버스 승ㆍ하차장은 행선지별로 큼직한 보따리를 챙긴 사람들이 길게 늘어섰고 일부 면 지역으로 가는 버스는 서 있기조차 마땅치 않을 정도로 승객을 가득 실었다. 말만 대목장은 아니었다.
명절에 쓸 물건을 사러 나온 권정순(77ㆍ구림 운남)씨와 조명숙(75ㆍ구림 운남)씨는 자녀들을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홍애채(홍어무침)하려고 나왔어. 미나리랑 해서 미리 담아놔야지. 전어랑 꼬막도 해야 하니 바쁘다”고 말하는 권씨의 말에 조씨가 “전라도서는 제사상에는 홍어가 빠지지 않는다”고 귀뜸했다. 꽃게와 버섯도 한 봉지씩 담은 조씨는 9명 손자를 맞을 기분에 들떴다. 조씨는 “손주가 많아 세뱃돈은 많이 못 준다. 영감이 명절에 고생하는 나도 좀 줬으면 좋겠는데 손주만 주니 야속하기도 하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명절 대목장에는 그릇과 이불을 파는 상인도 눈에 띄었다. 제사를 지내는 대부분의 가정이 제기를 소유하고 있고 최근에는 제사를 생략하고 명절을 보내는 곳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소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새해를 시작하는 김에 결심하고 새 그릇과 이불을 사는 사람도 있기에 이불 상인이 차에서 물건을 내리기 무섭게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시장 곳곳에서는 흥정과 덤이 오갔다. 도시처럼 바람잡이는 없지만 손님이 손님을 불러 모으는 현상도 나타났다. 일부 좌판에 사람이 몰린 것을 본 주민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덩달아 몰리는 탓에 상인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대목장에 한 개라도 물건을 더 파려는 상인의 입장은 때로 자리다툼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목장에서는 “장날마다 와서 팔던 자리”라는 ‘원조 상인’과 “먼저 앉은 사람이 임자”라는 ‘외지 상인’의 다툼이 이따금 발생한다. 이 다툼은 대개 매번 장날마다 만나온 주변 상인들의 동조 속에 ‘원조’의 차지가 된다. 이 같은 자리다툼을 처음부터 피한 한 상인은 아예 시장 끝 주택가로 가서 좌판을 열었다. 그래도 사람이 모인다. 물건이 싱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