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40년 애연가 시원섭섭한 금연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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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0년 애연가 시원섭섭한 금연소회
  • 고윤석 향우기자
  • 승인 2012.08.2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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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이 퍼런 군사독재정권 하의 암울한 시절인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에는 담배 인심이 퍽이나 좋았다. 하고 싶은 말은 함부로 할 수는 없었지만 주점에 들려 희미한 불빛아래 여럿 친구들이 모여앉아 양은 주전자 가득 넘친 막걸리 한 사발씩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담배를 권하면 골초들 사이에 낀 초짜도 뻐끔 담배를 마음껏(?) 피우며 배우던 그 때가 내가 대학 재학생 시절이었다. 이렇듯 담배가 좋아서 즐겨 피우는 이들을 애연가(愛煙家)라고 한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올해 초 즐겨 피우던 담배를 아무 이유도 조건도  없이 하루아침에 끊어버렸다. 40년 애연가로서 시원섭섭함을 ‘담배’하면 떠오르는 ‘꽁초’ 이야기로 기려 보고자 한다.

시인 故 오상순(吳相淳 1894~1962) 님이 바로 꽁초다. 불교의 공사상(空思想)을 초월하고 싶은 염원에서 아호(雅號)를 공초(空超)라고 하였는데 평소 담배를 워낙 좋아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꽁초’라고 불렀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물욕과 번뇌를 초탈한 시인 공초 오상순 님은 하루 평균 180여 개피의 담배(약 9갑)를 피웠으며 당대에 숱한 일화를 남긴 사람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 밤 민족시인인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님과 한강에 뱃놀이를 갔는데 손에 쥔 것은 술 몇 병과 담배 두 보루(20갑)였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일화다. 이들은 그렇게 술에 취하고 담배에 전 채 휘영청 밝은 달을 벗 삼아 밤새워 문학을 논했다고 한다. ‘나와 시와 담배’라는 글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담배가 발가벗은 아이들 같이 내 몸에서 나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나와 시와 담배는/이음 동곡의 삼위일체’라 하였으니 서로 음은 달라도 그 마음은 한 가지 소리를 내고 있는 몸이라고 하였다. “담배는 공허한 마음을 달래 주는 듯 하지만 내 몸 속에 깊은 암흑의 병을 남길 수 있다”며 “그러나 사라진 담배 연기는 영혼을 마주 보는 듯 자유롭고 삶에 대한 애증을 훌훌 날려버릴 수 있는 달콤함을 지니고 있다”고도 했다.

끝으로 공초 오상순 시인은 <담배 맛이 제일 좋을 때>는? 첫번째, 기침연초(起寢煙草 매일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피우는 담배의 맛) 두번째, 측간연초(厠間煙草, 옛날 재래식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면서 피우는 담배의 맛) 세 번째, 식후연초(食後煙草, 식사 후 바로 한 대 피우는 담배가 ‘불로장생초’) 네 번째, 방사후연초(房事後煙草, 땀 흘린 후 거의 탈진 상태에서 피우는 담배의 맛이야말로 무아지경 속에서 최고)라 했지만 지난 1962년 6월 3일 그는 임종을 지켜보는 가족 하나 없이 이 세상을 떠나셨다. 문인 중 한 분이 선생님의 임종을 지켜 드렸는데 바로 시인 구상(具常) 님이다.

평소에 공초 선생께서 많은 분들과 만날 때마다 하신 말씀과 뜻을 시로 적은 시인 구상 님의 그 유명한 ‘꽃자리’다. “꽃자리.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세수할 때도 양손에 번갈아가며 담배를 즐길 정도로 애연가였으나 건강하게 오랜 산 공초 오상순 시인은 흡연하는 이들의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로 끊어버린 담배 연기 속에 남아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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