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임순여객 운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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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임순여객 운전기사
  • 김슬기 기자
  • 승인 2013.04.18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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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째 군내버스 운전하며 군민과 인연 맺어
이왕 하는 일 신나게 웃고 하자 다짐하지요

 

장날도 아닌데 북적북적 사람이 많다. 봄나물 널어놓고 “아가씨, 냉이 한 줌 쥐어가”하는 정 많은 할머니부터 파마한 머리를 꽁꽁 싸매고 앉은 아주머니, 과실수 묘목을 사들고 서성이는 아저씨, 세 네 살 쯤 먹은 아이를 데리고 부랴부랴 발길을 서두르는 엄마들까지. 햇살 좋은 지난 12일 순창군내버스터미널 풍경이다.
세월이 변하는 동안 터미널 외관은 많이 변했다. 나무의자들도 세련된 모습으로 변했고 터미널 내부 상가들도 깨끗하게 새 단장을 했다. 오가는 사람들까지도 매일 매일이 다르지만 15년 동안 변치 않고 자리를 지킨 한 사람이 있다. 군내버스터미널 선참 기사 김봉규(51ㆍ순창읍 순화)씨는 15년 세월 변치않는 모습으로 버스를 지키고 있다.

 

15년 한우물만 팠지
작은 컨테이너 안, 군내버스기사들의 쉼터인 그 곳에 15년 동안 임순여객 버스기사로 운전해 온 베테랑기사 김봉규씨가 있었다. “아니, 난 갑자기 누가 날 찾는다고 해서 뭔 일인가 했더니 취재요?”라며 당황한 듯 멋쩍은 웃음을 보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5004번 버스로 터벅터벅 걸었다. 티끌하나 없이 깨끗한 내부, 새 차를 받은 지 1년도 안됐다고 했다. 김 씨는 차 속에 빗자루와 대걸레를 싣고 다니며 하루에도 몇 번을 쓸고 닦는다고 말했다.
순창 군내를 담당하는 9명의 임순여객 군내버스 기사들은 쌍치터미널 5명의 기사들을 제외하고 4인 1조로 에이(A)조와 비(B)조로, 1명은 독선을 정해 코스를 돌고 있다. 독선 기사는 같은 코스만 돌고 AㆍB조 기사들은 코스를 번갈아가며 달리니 군내 전 지역의 ‘길’은 모르는 곳 없이 속속들이 꿰고 있다. 어디 그 것이 길 뿐이랴.    
15년 전 군내버스 운전대를 잡기 시작한 김봉규씨는 가장으로서 화물운수업을 통해 아내 정순이(47)씨와 세영(23)ㆍ수진(20) 두 딸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김 씨도 그때 그 시절 불어 닥친 아이엠에프(IMF)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지금의 ‘순화집’ 자리에서 과일장사도 해봤지만 어려운 생활은 계속됐다. 그러다가 인연을 맺은 것이 군내버스였다. 이직이 잦은 직업이었지만 그는 15년 동안 한 우물을 팠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 정년까지 남은 9년 동안도 김 씨는 같은 우물을 팔 생각이다.

6시 20분 첫차, 8시 45분 막차
김씨의 첫차는 아침 6시 20분에 터미널을 떠난다. 하루 종일 사람들을 태우고 방방곡곡 작은 마을까지 달리고 난 후 시동을 끄는 시각은 7시 50분. 어쩔 땐 8시 45분이 막차일 때도 있다니 얼추 계산해보아도 13~14시간 근무다. 강철체력이 따로 없다.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돌아오는 탓에 가장 소홀한 건 가족과의 시간이다. 김 씨는 “아내와 딸들에게 가장 미안하죠. 같이 아침밥 먹어본 적이 별로 없으니까. 저녁에도 모임이다 뭐다 일 끝나고 바로 나가다보면 밤늦게 들어가는데 그게 참 미안해요”라며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해 온 동료들과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다. 배차시간에 쫓겨 식사도 혼자 해결할 때가 많다. 순창에는 그나마 작은 기사쉼터라도 마련되어 있어 커피 한 잔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임실, 오수, 관촌 등에는 순창 기사들을 위한 쉼터가 없다. 모든 버스가 매일 임실 본사를 들러야 하는 코스로 짜여있지만 잠깐 버스에서 내려 허리를 펴고 누울 수 있는 곳이 없는 실정이다.

사람을 싣고 달린다는 것
1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김씨는 휴대전화 시계를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4시, 구림면 운북으로 향하는 버스를 운행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자 운전석 옆 맨 앞자리에 무임승차했다.
버스가 정차하자 기다리던 승객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김씨는 “오늘은 뭔 일이래, 신문사에서 취재 나올 줄 알고 계셨나 봐요. 장날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이 타셨대”하며 싱글벙글 웃었다. 잠시 후 휴대전화 정시 알림 소리에 주황색 버스가 서서히 움직였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10년 무사고 표창을 받은 군내버스 기사 3인 가운데 한 사람인 김 씨지만 사람을 싣고 달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처음엔 몰랐다고 한다. “난 참 쉽게 봤어요. 사람들이 직접 자기 발로 타고, 내릴 때 되면 벨 눌러서 알려주고. 또 스스로 내리고…. 그러니 난 쉴 때 쉬고 달릴 때 달리면 되니 얼마나 쉬워요.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큰 오산이었죠.”
처음 운전을 시작한 뒤 차내 승객이 부상을 입는 사고도 겪고, 버스가 고장 나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화물을 불러서 싣고 갈 정도의 짐을 싣고 버스에 오르는 승객 때문에 배차시간을 못 맞추기도 하고 차 안에 비린내가 가득하게 생선을 들고 탄 승객 때문에 다른 승객들의 불만을 잠재우랴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시련은 사람들의 ‘말’이었다.

한마디 말에 ‘울’고 ‘웃’고
“요즘은 봄나물 캐 장에 나오시면서 봉지에 따로 챙겨가지고 기사님 잡숴보라 건네주시는 할머님도 계시고 요구르트 같은 음료수도 건네주시는 승객도 계셔요. 어디 다녀오시냐고 물으면 이런저런 이야기 해주시는데 듣고 오다보면 시간이 금방 가죠. 그럴 땐 하루 종일 싱글벙글 승객들에게 말도 잘 걸고 노래도 흥얼대는데 어쩔 땐 한마디 툭 던지는 말에 상처받고 종일 우울할 때가 있어요. 2~3분 늦었다고 핀잔하면 이런저런 이유를 설명해드리는데 다짜고짜 너는 평생 기사나 해먹고 살라면서 욕하시는 손님이 있죠. 그럴 땐 회의를 느껴요. 이런데도 인상 한 번 안 쓰고 웃기만 하는 우리 임성우 기사는 참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니까요. 승객들은 물론이고 기사들 사이에서도 칭찬이 자자해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친절 모범 운전수라고 말이예요”라며 동료이자 후배기사의 자랑을 늘어놓는 그였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속에 하나 둘 사람들이 내리고 운북에 도착하자 버스가 텅 비었다. “아이고, 기사양반 여까지 오느라 애쓰기쏘잉”하며 할머니 한 분이 인사를 건네자 김 씨의 하얀 이가 빛났다.
마을 종점에서 차를 돌려 10여분 정도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그는 잠깐의 여유를 갖는다. 라디오를 벗 삼아 ‘여행을 떠나요’, ‘남자라는 이유로’등 18번 노래도 흥얼거리고 먼 산을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아주 잠깐이지만 꿀맛 같은 시간이란다.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아는, 미처 벨을 누르지 않아도 어디서 내릴지 아는 그런 사이로 인연을 맺어가는 재미로 사는 김봉규 기사. 유쾌한 농담이 자연스러운 자줏빛 선글라스 5004번 버스는 오늘도 많은 이의 꿈을 싣고 달린다.

“덜컹 덜컹 달려간다 시골버스야~
힘차게 달려간다~
빵빵빵빵 기적을 울리며 신나게 달려간다~
추억이 살아 숨 쉬는 이곳~
내 고향 정든 시골길~
옆집 뒷집 시골 아줌마~
옆집 아저씨~
언니 오빠들~
다 태우고 달려간다~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려라~
내 꿈도 싣고 달려라~
빵빵빵빵 기적을 울리며 시골버스 달려간다”
                           -박상철 노래 ‘빵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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