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이 간다.
1960년 4ㆍ19혁명, 1980년 5ㆍ18, 1987년 6ㆍ10 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청년 학생들이 참여한 4ㆍ19의거가 독재ㆍ부정한 정권을 갈아엎고 새 정부를 이뤄냈으나 이듬해 맥아더 안경(검은색 선글라스) 쓴 군인들의 쿠데타로 어이없이 무너졌다.
2년의 군정, 18년의 철권정치는 1979년 10월 26일 이른바 ‘대통령시해사건’을 불러왔다. 이어 ‘정치군인’들의 발 빠른 정권욕은 그해 겨울 12ㆍ12사태를 통해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군권은 물론 정치적 실권도 장악했다. 그러나 12·12사태는 1997년 대법원 판결에서 군사반란으로 확정됐고, 1998년 교과서에 이러한 내용이 명확히 추가됐다.
신군부세력은 정권을 잡기 위해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했다. 5ㆍ18 광주 민주시민들의 무장 항쟁은 한국 현대사의 전환점이었다. 오월항쟁의 민주시민들은 오랜 세월 ‘폭도’와 ‘난동자’로 모욕당했다. 심지어 신군부 쿠데타 주모자들은 오월항쟁을 ‘북 간첩”과 연계시키는 여론 조작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신군부 세력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북한과 연관된 것처럼 여론조작을 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결론 내렸다.
33년이 지난 2013년 5월에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종편 <티비(TV) 조선>과 동아일보의 <채널에이(A)>가 ‘극우 인사’들과 탈북자들을 출연시켜 5·18 관련 ‘북 특수부대 개입설’을 방송으로 내보냈다. 두 종편은 여론이 악화되자 뒤늦게 유감을 표명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문제는 두 신문사의 종편방송만이 아니다. ‘우익’을 자처하는 네티즌들의 글에서 더욱 분을 참을 수 없다. 5ㆍ18 희생자의 사진에 “홍어 말리는 중”이라는 악담을 퍼붓거나 시신을 담은 관을 두고 “홍어 택배 중”이라고 써댄 야만은 경천동지(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든다)할 망언이다.
이런 현상은 지난 대선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유신시대와 80년대, 민주화를 지지했던 현재의 50대는 지난 대선에서 정치적 구도보다는 현실적 대안을 중시하는 정책적 구도를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사회양극화를 강화했으나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구축이 요구돼 왔다. 위기의 중소기업ㆍ자영업ㆍ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며, 5대 불안(일자리ㆍ노후ㆍ주거ㆍ교육ㆍ가계부채)의 해소가 시급하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러한 흐름이 “민주화는 더 이상 국민 다수가 공감하는 시대정신이 아니고 집합적 가치로서의 의미를 잃어온 것”이라는 분석을 낳게 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는 유신체제 이래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이었다. 4월혁명에 역사적 기원을 둔 민주화 열망은 유신과 전두환 정권에 맞서 학생ㆍ노동ㆍ농민운동을 추동했다. 1980년 광주항쟁을 거쳐 1987년 6월항쟁에 이르러 군부정권을 종식시키고 민주화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시대정신인 ‘민주화’의 가치가 퇴색돼 가고 있다. 슬픈 일이다. 더구나 전두환 정권의 민정당인 뿌리인 새누리당까지 ‘민주화세력’을 자처하고, 극우성향 인터넷 ‘일간베스트’에서는 ‘민주화’를 “다른 소수를 집단으로 폭행하거나 언어폭력을 하는 것”을 일컫는 은어로 쓰이고 있다.
군사독재정권을 붕괴시킨 그 엄청난 힘이 어디서 왔는지 잊어버리고, 개인주의를 민주주의로 착각하면서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힘없는 사람을 위해 대신 목소리를 내고, 세상을 좋게 만드는 일” 한 가지만을 해 왔다는 한 민주화운동 활동가의 말이 귓 속을, 가슴 깊은 곳을 파고든다.
<사진으로 본 민주화운동>
*@자료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이 경향신문사와 박용수 선생님으로부터 동의를 받아 위탁 관리하고 있는 사진을 전재하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