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마을] 제주도 신도마을(2)...전국 최초 성평등 마을규약 개정
상태바
[이웃마을] 제주도 신도마을(2)...전국 최초 성평등 마을규약 개정
  • 김수현 객원기자
  • 승인 2021.03.17 1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수현 객원기자의 이웃마을 이야기
성평등 마을 규약이 개정된 이후 첫 신도 3리 운영위원회.  여성위원이 30프로 이상 참여하게 개정되었다.
성평등 마을 규약이 개정된 이후 첫 신도 3리 운영위원회. 여성위원이 30프로 이상 참여하게 개정되었다.

제주도의 성평등 마을 규약 개정 사업, 어떻게 시작되었나?

성평등 마을 협약이 만들어지기까지 제주여민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이후 여성농민회), 각 마을 부녀회 등 지역 사회단체의 역할이 컸다. 2017년 제주여민회는 제주도 후원으로 <제주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느끼는 문제 진단과 방안>이라는 주제로 여성친화도시 제주 실현을 위한 제주여성 100인 원탁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는 실질적인 여성친화형 도시를 모색하기 시작한 첫 자리였다. 실제로 제주 각계의 여성 100인이 모여 이들의 삶의 터전인 제주의 성평등 지수 및 정책, 사회적 인식 등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토론을 했다. 제주도의 변모도 눈에 띈다. 제주도는 2017, 여성친화형 도시로 재지정되고, 도에 성평등 정책관을 설치하면서 성평등한 제주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제주여성 100인 원탁회의

여성정치 리더십이 가장 절실, 마을에서 시작하기로

원탁회의에서 여성들은 제주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느끼는 가장 큰 문제일상화되어 거부할 수 없는 남성우월풍습(40%)’을 꼽았다. 지금보다 더 나은 제주 여성의 삶을 위해서 가장 우선 개선해야 하는 분야로 정치(33%)’, 제주의 변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실천방안으로는 여성 연대를 통한 여성 정치 강화(60%)’라고 답변했다. 여성의 문제가 정치적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할 구조적 문제이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 정치 리더십의 강화가 절실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자리였다.

이 회의 이후 제주여민회는 우선, 읍면 단위 농촌 지역에서 여성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2018년에는 애월읍조천읍 등을 다니며 마을 속 여성 대표성현장 조사를, 2019년에는 성평등 마을 규약 제주여성이 만들다를 기치로 성평등마을규약 표준사항 마련 및 공론화 사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 내 지회가 있는 여성농민회가 적극 결합해 읍면 지역의 마을 규약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부녀회장이 회의진행을 한 첫 회의. 옆에는 의사봉이 있다.
부녀회장이 회의진행을 한 첫 회의. 옆에는 의사봉이 있다.

성평등한 제주 만들기터전 닦은 여민회여성농민회

제주 여성농민회는 성평등한 농촌, 여성농민이 행복한 농촌 건설을 목표로 지회별 순회 성평등 교육, 성평등 강사개발 교육 등을 통해 회원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여왔다. 정책적으로도 여성농민이 출산 시 일손을 돕는 농가 도우미 제도’, ‘농협 복수조합원제’, 여성농민의 직업적 지위 보장을 위한 행복 바우처 농가수당 지급등 정책 사업을 진행해왔다. 특히, 오는 2022년부터 지급되는 제주농민수당에도 발 벗고 나섰다. 그 결과, 제주 농민수당은 전국 최초이자 유일하게 개인별로 지급된다. 이는 농민수당은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고 증진하는 농민에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상함으로써 농업과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자하는 농민수당의 취지를 차별 없이실현하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간의 농업 정책이 경작 규모에 따른 차별과 농가단위 집행으로 소외시켰던 여성 농민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는 첫걸음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54개 제주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제주 농민수당 조례 제정 운동본부(본부장 현진희 전 제주여성농민회 회장)가 꾸려져 농민수당 조례제정 주민 발의 서명 등 활동을 해온 덕분이다.

제주지역의 시민단체가 제안하고, 제주도가 손잡으면서 시작된 성평등 마을규약, 이 규약은 마을을 어떻게 바꿔갈까?

 

부녀회, ‘지원, 보조자에서 공적 조직으로

지난 22일 금악리 마을총회 부녀회안 통과를 위한 부녀회 총회를 준비하고 있는 임원들을 만났다. 처음에 성평등 마을규약 사업을 제안 받았을 때 금악리 양정순 부녀회장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성평등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을 못했고, 으레 마을 일은 남자들이 하는 거라고 여겼어요. 그저 마을 어르신이 하는 일에 따라갔지요. 부녀회는 의견을 내거나 결정을 하는 데가 아니라, 도와주는 데라고만 생각했지요.”

올해 부녀회 총회를 준비하는 모습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성평등 마을규약 사업 이후 부녀회원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는 일상적인 소통과 단합을 끌어냈다. 임원들의 각성과 토론도 이어졌다.

그동안 정회원제가 안 되었던 것도 정회원제로 바꿨어요. 부녀회와 회원 자격에 대해 논의도 했고요.”

이전의 부녀회가 봉사와 여행이 주되게 하는 임의 조직이었다면, 이제는 마을 여성을 대표하며, 회원을 성장시키고, 더 나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공적 조직으로 바뀌고 있었다.

 

부녀회, 여성 지도자의 산실로 발돋움

지난 임시총회 때는 회장이 직접 회의를 진행하고 의사봉을 두드렸다. 부녀회 회의인데도 청년회장 등 마을 남자가 진행해왔던 이전 부녀회 회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오랜 기간, 가정과 마을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어오면서 여성들이 리더로서 회의 진행 등 경험을 축적할 기회는 없었기 때문. 금악리 임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번 워크숍을 통해 회의하는 방법, 체계를 배운 게 큰 소득이었어요. 부녀회 회의를 스스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어요. 우리도 뭔가 해 냈구나 뿌듯했지요. 더 나은 마을을 만들려면 늙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걸 배웠지요.”

이번 성평등 마을 규약 개정 사업을 통해 마을주민과 부녀회원들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마을 여성 지도자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부녀회 임원들은 마을 행사 뒷수발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을을 대표하는 여성 지도자로 스스로 위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부녀회가 여성지도자의 산실이 되어가고 있다.

 

같이 살아가자성평등 마을, 성평등 가정 일구어

여기에는 금악리의 원만한 의사소통 구조도 한 몫을 했다. 부녀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만큼 교육과 규약 개정 과정에 운영위원들(개발위원)의 도움도 컸다. 마을의 변화는 가정까지 이어졌다.

집안에서도 이전에는 하지 않던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됩니다. 농촌지역이 다른 조직보다는 가부장성이 높고, 불평등한데도 모르는 채로 살아왔다는 걸 교육받으면서 깨달았지요. 마을 안에서만 있으니 잘 몰랐지요. 대화하면서 남자들도 조금씩 변하고 있지요.”(금악리 양정순 부녀회장)

성평등 마을 규약 만들어지는 게, 남자들 위치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가자고 하는 거니까요.”(금악리 부녀회 백숙이 부회장)

신도1리 제주 성평등 워크숍
신도1리 제주 성평등 워크숍

우리 세대를 위한 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일

하지만 진행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마을 규약을 현실에 맞게 바꿔보자면 제일 처음 하는 말이 있다. “지금으로도 불편함이 없다.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 연로하신 여성회원들도 그렇게 말한다. 뒷말이 나오기도 한다. 평소에는 말이 없다가 술을 한 잔 하면 다른 말을 한다.

도대체 여자들이 나서서 뭐하냐.”, “부녀회가 뭔데 마을규약을 바꾸려하느냐, 부녀회가 마을을 대표하려하느냐.”, “여성농민회가 뭔데 마을을 들 쑤시냐?”

신문, 방송의 호응에도 못마땅해 하기도 했다. “농촌이 달라져야 할 게 아닌가, 우리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다고 이야기하면서 설득해갔다. 이 사업이 제주도의 주요한 정책방향이라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여성, 여성대표성의 엄중한 책임을 가지고 목소리내야

신도 3리 부녀회장인 현진희 여농 정책위원장은 성평등 마을규약을 통해 달라지는 것은 한마디로 여성의 발언권이라고 말한다.

마을에서 여성이 발언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로 바뀐 운영위원회에서도 여성들은 뒤쪽으로 앉으시더라고요. 여성이 앞으로 나서야 합니다. 마을규약을 성평등하게 바꿔가고, 운영위에도 서로 추천해 들어가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당당하게 한 사람의 운영위원으로, 여성대표성이라는 엄중한 책임을 가진 지도자로 역할을 해나가야 합니다.”

해녀들의 태왁에는 다 자기 이름이 써있어

해녀들은 태왁(가슴에 받쳐 몸을 뜨게 하는 뒤웅박)에 자기 이름이 다 쓰여 있다. 해녀 사회에서는 누구 엄마, 누구 부인이 아닌 제대로 자기 이름이 불려진다.”

월정리 성평등 워크숍에서 한 주민이 말했다.

해녀들은 바다밭을 단순 채취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끊임없이 가꾸어 공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과정에서 획득한 지혜를 세대에 걸쳐 전승해왔다. 다른 이름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이름을 쓰는태왁의 유산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2021년의 한국, 기후 위기와 헬조선의 위기에 여전히 우리는 서있다. 하지만 새로운 조짐이 일고 있다. ‘성평등 마을이라는 생각지 못했던 일이 제주 마을에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함께 가꾸어 공존하여, 물려줄 수 있는땅으로 바꾸려는 파도가 제주로부터 밀려오고 있다. 파도가 말한다.

‘11. 누구도 그 이상 가져서는 안 되고, 누구도 그 이하를 가져서도 안 된다.’

<이 기사는 2020 성평등 마을규약 만들기 자료집 성평등한 농업농촌! 여성농민이 행복한 농업농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김수현 객원기자 yeeseung21@openchang.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금과초 100주년 기념식 ‘새로운 백년 기약’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카페 자연다울수록’ 꽃이 일상이 되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