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세, 금과 송정마을 최귀철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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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세, 금과 송정마을 최귀철 어르신
  • 김슬기 기자
  • 승인 2015.02.25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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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오래 사는 비결? 없는디…”

 

▲한복을 꺼내 입고 마루에 걸터 앉아 인자한 웃음을 짓는 최귀철 어르신.

삼시 세끼 챙겨먹고 소주 한 병 간식
4륜 오토바이 직접 운전 밭으로 출근

장광이 훤히 보이는 집

 

어르신들이 알려주신 대로 길을 꺾어 한참을 올라갔다. 시원한 대나무 바람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되는 곳. 두릅나무 밭을 지나니 “장광(장독대)이 훤히 보이믄 그 집이여” 하셨던 어르신들 말씀대로 옹기종기 장광이 눈앞이다. 흙 마당을 조심스레 밟으며 송정마을의 큰 어른, 올해로 99세 최귀철 어르신 댁 문을 두드렸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앞에 계신 어르신은 몇 번의 강산이 변하는 것을 보았을지, 어른들 말씀에 “겁도 안 난다”는 말이 실감났다. 내년이면 100세라는 생일을 맞는 최귀철 어르신. 3년 전 아내를 하늘로 떠나보낸 후 홀로 살아가고 있는 어르신은 직접 음식을 만들어 식사를 챙겨 드시는 것은 물론, 4륜 원동기(오토바이)를 자유자재로 운전해 밭일까지 나가는 그야말로 ‘대단한 할아버지’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남연 이장은 “마을 최고 어른인데 우리보다도 더 건강하시다. 논농사는 내려 놓으셨지만 지금도 밭농사는 계속 지으시려고 한다. 밭이 멀리 있는데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가셔서 일을 하실 정도”라며 “욕심 없는 분”이라고 어르신을 소개했다. 이어 박양임(86) 어르신은 “혼자 지내시는데 식사도 직접 만들어 드시고 아주 정정하시다. 나보다도 얼굴이 뽀얗고 좋다”며 “오래 사시니 신문에도 나오는가 보다”고 미소 띤 얼굴로 길을 안내했다.

장수의 비결 … 참이슬(?)

 

▲직접 운전하고 다니신다는 4륜 오토바이에 올라 포즈까지 취해주셨다.

보통 장수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운동량이 많거나 식사량이 적고 채식을 위주로 한 건강한 밥상 등이 그 비결로 꼽힌다. 그렇다면 최귀철 어르신의 장수비결은 무엇일까. 어르신의 답은 “글쎄, 그것을 나도 알지 못 하겠어요”다.
어르신은 “밥은 삼시 세끼 먹고 술도 삼시 세끼 먹지요. 무엇이든 잘 먹는 것도 아니고 못 먹는 것도 아니요. 채식만 하는 것도 아니고 고기반찬이 없으니 그렇지 있으면 잘 먹어요”라며 “젊어서부터 좋아하고 꾸준히 챙겨먹은 것은 그저 술뿐이요”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어르신 뒤로 깎다 만 사과 안주와 ‘참이슬’, 유리 문 너머로 보이는 부엌의 상 위에도 ‘참이슬’ 두어 병이 놓여 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술을 마셨다는 어르신은 “내가 술은 참질 못해요. 애기 때부터 먹었소. 그 원인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선친께서 집에 술을 늘 해놔요. 술을 늘 해 놓으면 한참 괴어요. 한참 괼 때 몰래 술밥을 떠먹으면 달아요. 늘 먹으니 그것도 술이라고 늘어요. 그래서 인이 박혀서 지금까지 먹어요”라며 술을 즐기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건강에 해롭다는 담배도 어르신은 10년 전까지 피우셨단다. 그래도 병원엘 가본 일이 없다며 잠도 잘 자고 지금도 특별나게 어디 아픈 곳이 없단다. 어르신은 “술을 한 잔씩 먹어야 밥이 달아요. 밥맛이 없을 때 술을 마시면 밥맛이 살아나”라며 끼니마다 반주로 두 잔, 하루면 한 병은 먹는다고 말했다. 속이 아프시지 않은지 여쭙자 “아 그럼사 어떻게 먹겠어요?”라며 웃으셨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고생이었지

 

한참 어르신의 말씀을 듣다 벽에 걸린 사진에 눈길이 갔다. “한 육십 쯤 되었을 걸.” 말끔한 양복 차림의 사진 속 모습과 달리 어르신의 젊은 시절은 고생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해방 될 때 중국 가서 있다가 피난을 왔어요. 고향 정읍으로 왔는데 그러자마자 조금 있다 6ㆍ25 사변이 나니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고생을 많이 했지요”라며 잠시 침묵했다.
3남 1녀, 사남매를 키우며 안 해본 일이 없다는 어르신은 “육군 정종회사가 있었어요. 군인들 정종 만드는 곳인데 거기서도 일해보고 저기 부안에서는 숯 만드는 일도 했지요. 젊어서 일 한 것이야 셀 수 없이 많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늘 술이 가까이에 있었네”하며 인자한 웃음을 보였다.
정읍 초강리에서 태어나 제2의 고향으로 송정을 선택해 노후를 보내고 있는 어르신은 “처가가 여기예요. 집사람이 자꾸 이곳으로 오자고 해서 오긴 왔는데 처음에 왔을 당시에는 함정에 빠진 것처럼 힘들었어요. 아, 벌어먹을 길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또 혼자 객지로 나가서 돈을 벌었어요”라며 “이제는 송정이 제2의 고향이지요. 마을도 작고 내세울 것이 없지만 인심은 참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모다 복 많이 받으면 그걸로 돼

어르신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햇살이 좋아 지난 설에 꺼내 입고 곱게 접어 넣어 놓았던 한복을 꺼내 입으시도록 부탁해 밖에서 사진을 찍었다. 평소에 밭에 갈 때 타는 오토바이에 가뿐히 올라 포즈를 취해주시는 어르신. “혼자 지내니 적적하지요. 딸은 저 충청도에 있고 아들은 저 경상도에 가 있으니 자주 못 봐요. 전화는 자주 오지만 얼굴은 이번 설처럼 명절 때나 되어야 봐요. 텔레비전을 벗 삼아 뉴스도 보고 동물 나오는 것(다큐멘터리)도 보고 그래요. 동네에서는 이남연 이장이 자주 찾아오는데 술을 안 좋아해서 오면 과자 같은 거나 먹지 술은 안 먹어요. 나만 먹어요”라며 ‘귀찮게 해 죄송하다’는 인사에 그런 소리 말라 하셨다.
젊은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나 덕담을 부탁드리자 “세배들 오면 복 많이 받으라 하고 말지요. 몸 건강히 모두 그렇게 살면 그걸로 끝난 것이지 뭐. 그럼 돼요”라고 말씀하셨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에 대해 여쭈니 “이 나이에 무슨 꿈 꿀 것이 있겠느냐”며 “백살이 내일모레, 아니 내일이니 그저 건강이 최고지요”라고 답해 주셨다.
낯선 이의 갑작스런 방문에도 딸 같이, 아니 손녀 같이 반겨주신 최귀철 어르신. 멋지게 신문에 나오면 맛있는 것 사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자 “미안해서 안 돼요”라며 문밖배웅을 나오셨다. 뉴스에서는 겨울황사가 심각하니 바깥출입을 자제하라 난리지만 송정마을 장광이 보이는 집을 나서니 날씨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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