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기고] ‘첫 도전’과 ‘또 다른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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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기고] ‘첫 도전’과 ‘또 다른 도전’
  • 남상언 학생
  • 승인 2015.05.2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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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언 제일고 1년

고등학교 첫 시험이 어느덧 마지막 날에 다다랐다. 하지만 오늘은 단지 시험만 보는 날이 아니다. 내 생에 첫 휠체어 마라톤에 도전하는 날이기도 하다. 원래는 내일 열리지만 개최지가 서울이기에 미리 출발하기로 했다.
물론 나 혼자 참여하는 게 아니다. 순창에서도 다른 분들이랑, 아버지와도 함께 간다. 대회는 경쟁 경기와 어울림 경기로 구분하는데 경쟁 경기는 선수들이 뛰는 거라 나는 어울림 경기에 참여했다.
시험이 끝나고 아버지 차를 타고 전주로 향했다. 나는 ‘이번에 참가하는 휠체어 마라톤이 기록을 재는 경기는 아니지만 좋은 경험으로 남기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야구 시작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 ‘아버지 휴대폰으로 야구를 볼 배터리는 충분히 있을까?’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이 시작됐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고 그 택시를 기다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제 바로 가서 티브이로 야구 볼 시간만 남았군’이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언제나 변수가 있는 법이다. 장애인 콜택시가 늦어져 아버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동안 내가 기숙사 생활을 해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가진 아버지와의 대화는 좋았고 앞으로도 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싶다.
저녁을 먹을 때까지 택시가 오지 않아 연락을 해보니 밀려서 늦는다고 하였다. 1시간, 2시간, 3시간, 4시간이 흐르고 기다리다 지쳐 일반 택시를 타고 가려는 순간 연락이 왔다. 장애인 콜택시 기사님은 오늘은 어버이날이라 차가 밀려서 늦게 왔다고 설명했다. 숙소까지는 30~40분 거리였다. 피곤한 나는 콜택시 안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숙소에 도착해 싣고 침대 위에 앉아서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30분이었다. 오전에 뛸 마라톤 경기를 생각하며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툭툭” 아버지께서 날 깨우는 소리다. 새벽 5시였다. 3시간 30분밖에 자지 않았다. 비몽사몽 하다가 밥이 왔다. 이른 새벽이고 잠을 적게 자서 그런지 입속으로 뭐가 들어가고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다.
잠실 종합경기장에 도착해 마라톤이 열리는 곳으로 향하였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마라톤이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얼른 그 행렬에 합류하여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몇 분이 흐른 뒤 드디어 신호가 왔다. 하지만 경쟁부문의 출발신호였다. 내가 출전하는 어울림부문은 경쟁부문 선수들이 다 출발하고 마지막에 출발한다. 태어나서 처음 하는 마라톤이라 긴장이 되었다. 이윽고 카운트가 시작이 되고 숫자가 0이 되자 출발. 5킬로미터의 마라톤이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여유롭게 갔다. 주변 분들의 힘내라는 메시지에도 반응하며 대답을 했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서자 초반의 여유가 사라졌다. 힘이 들기 시작했다. 정신력으로 버티고 같이 뛰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겨우 버텼다. 아버지의 도움없이 내가 휠체어를 굴릴 때는 정신력으로 버텼다. 주변의 우렁찬 응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황에서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가다 보니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있는 힘을 다해 휠체어를 굴렸다. 마지막 오르막길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종착점에 골인했다. 힘들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기념 메달을 받고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긴장을 풀었다. 결승점을 통과했던 기쁨과 통쾌함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집으로 오는 길 고속버스 안에서 대회장에서 가져온 책자를 읽어보았다. 5킬로미터 마라톤 경쟁부분에 출전한 다른 시ㆍ도 선수들은 많은데 전북 출신 선수는 한 명뿐이었다. 생각해보니 전북이 다른 도보다는 휠체어 마라톤에 대한 관심이 적기 때문인 것 같았다. 관심이 적으면 그에 대한 지원이 적어지고 선수 육성 등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일들이 없어지면 좋겠지만 자세히 보면 사회에 이러한 소수자에 대한 무관심이 퍼져 있다.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를 함부로 대해도 아무런 말없이 지나치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한다. 우리 사회의 민주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와 더 나아가 지원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가 선수로 뛰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을 했다. 내가 선수를 해보겠다고. 그렇게 ‘또 다른 도전’을 마음에 새기는 동안 고속버스는 전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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