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선한 동생, 평생 한 풀었다”
제20차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에서
갓 스무 살이 되던 해. 부모님과 아직 아무것도 모를 네 살 동생과 헤어진 설순환(85)씨는 65년이 지난 2015년 10월, 금강산에서 이제는 머리가 하얘진 막내 동생과 재회했다.
오랜 세월동안 보지 못한 형제, 더구나 동생은 워낙 어린 나이에 헤어진 터라 형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지만 ‘피붙이’란 그런 것인지 형제에게 어색함은 없었다.
설재봉 금과ㆍ팔덕 농업인상담소장의 아버지인 설순환 씨는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에 선정돼 북에 있는 동생과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짧은 만남을 마치고 기약 없는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돌아왔다.
지난달 20일부터 1ㆍ2차로 나눠 진행된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 남측에서는 1차 97가족, 2차 90가족이 선정됐다.
설 씨 가족은 순창에서 살다가 그가 일곱 살이 됐을 무렵, 그의 아버지가 일제 때 빚보증을 잘못서 황해도로 이사를 가게 됐다고. 그는 “논 서마지기를 짓고 밥 먹고 살았는데, 나락이 무르익으면 빚쟁이들이 베가 버려서 하다하다 못해 가족 모두가 황해도로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전쟁이 시작되고 당시 황해도에 살던 설 씨는 북한군에 징집 당했다. 그는 “2달 정도 전쟁에 따라다니다, 남쪽으로 오려고 자수를 했다”며 “포로 생활을 하다 남한을 택했고, 황해도에서 피난을 온 형님과 셋째 동생을 만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설 씨는 “부모님과 동생을 그리워하다 한 30여년 전부터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것으로 생각해 아버지 생신을 기일로 정하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며 “이번에 동생에게 부모님 기일이 언제고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얘기를 다 들었다. 제사는 동생이 지내도록 얘기했다”고 덧붙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에 다녀온 설재봉 소장은 “2박 3일 중에 2시간씩 6차례 만남을 가졌다. 5차례는 단체 상봉이었고 온전히 우리 가족끼리 시간을 보낸 것은 2시간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하며 “선물을 할 수 있다기에 가기 전에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의 오리털 점퍼와 시계, 내의, 양말을 준비했고 북쪽에서 인기가 있다는 초코파이도 준비해 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상시 아버지께서는 부모님은 돌아가셨을 것 같고, 막내 동생은 살아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아버지로부터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생전 처음 뵌 작은 아버지였는데 혈육이다 보니 기분이 남달랐다”며 “아버지께서 평생에 소원을 이뤘다. 교류가 활발해지면 사촌 동생들도 꼭 찾아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6.25때 헤어지고 생사도 모르고 살아왔다. 못 볼 것으로 생각했는데 뜻밖에 이런 기회가 찾아와 한을 풀 수 있었다. 60여년 만에 보는데도 어색하지 않았다. 동생과 술도 한잔 마셨다”며 “보고나니 동생 모습이 눈에 선하다. 헤어질 때 버스 밖에 서서 울면서 손을 흔드는 동생을 보고 너무 슬펐다. 동생이 항상 건강하기만을 바란다”고 말하는 설 씨가 꼭 동생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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