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촌마을 ‘특별한 윷놀이’
상태바
유촌마을 ‘특별한 윷놀이’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7.01.18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못자리 비닐하우스에서 시작한 윷놀이…농한기에는 매일
지는 사람이 1000원씩 기부…마을 식대에 보태는 ‘기부’
공사로 철거 예정 … “자리만 있으면 비닐하우스 칠거여” 
 

▲11월부터 3월까지 다섯 달, 유촌마을 주민의 일상은 윷놀이로 얘기된다. 매일 비닐하우스에 모여 윷을 노는 주민들은 판돈을 모아 마을에 기부한다. 지금 쓰는 비닐하우스가 없어지면 곧 다른 자리에 새로 만들 예정이다.
농촌마을의 비닐하우스는 아주 보편적인 구조물이다. 작물 생산량을 높여 농가 소득을 올리는 데 있어 비닐하우스보다 값 싼 비용으로 더 나은 성능의 구조물을 찾기는 어렵다. 농번기는 물론 농한기인 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는 다양한 작물들이 자란다.
이런 비닐하우스의 특별한 변신이 화제다. 유등면 유촌마을 주민들은 농사를 쉬는 겨울에 마땅한 놀 곳을 찾아 비닐하우스에 들어왔다. 매일 점심시간을 지내고 어김없이 10명 가량의 주민이 모인다. 그들이 이곳에 모이면 어김없이 윷판이 벌어진다.
윷놀이 할 줄 아는 주민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유촌마을 주민들의 윷놀이 사랑은 유별나다. 겨울이 되고 날씨가 추워지자 주민들은 마을회관 옆 공터에 손수 비닐하우스를 짓고 멍석을 깔았다. 낡은 교회 의자를 얻어다 놓고 달력과 옷걸이까지 걸어두니 괜찮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평생 농사지은 사람들이 만든 비닐하우스이니 그 짜임새나 성능은 훌륭하다. 바람이 새지 않고 해만 뜨면 겨울에도 따뜻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서기수(75ㆍ유등 유촌) 씨는 매일같이 이곳을 찾아 이웃과 함께 윷놀이를 한다.
유촌마을 비닐하우스를 찾아간 지난 17일 오후, 이곳에서는 8명의 주민들이 모여 윷놀이를 하고 있었다. 2대 2로 편을 나누고 윷을 노는데 이미 쓴 말이 몇 개 보였다. 서종수(72)ㆍ서종욱(57) 씨가 3대 2로 앞서가고 있었다. 마지막 말 내기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서종수 씨가 던진 윷이 ‘도’다. 이어 한 칸 차이로 뒤쫓던 상대방이 던진 윷은 ‘개’가 나왔다. 서한섭(72)ㆍ박일호(71ㆍ유등 오교) 씨는 패색이 짙던 상황에서 앞서던 말을 잡은 기세를 몰아 역전에 성공했다. 서종수 씨는 “몇 마리가 잡혔는지 모른다. 넣는 것보다 못하다”며 허탈해했다.
▲윷을 잘 노는 것보다 말을 잘 쓰는 것이 핵심이다. 의견이 다르면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하지만 분위기는 항상 좋다.
박일호 씨는 오랜만에 유촌마을에 놀러왔다가 윷판에 합류했는데 기세등등하게 4연승을 했다. 귤 한 상자를 사들고 온 그에게 유촌마을 주민들이 일부러 져 준 것은 아니다. 그가 던진 윷은 ‘개’가 하도 많이 나와 ‘개 선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날은 ‘개’가 통한 날이었다.
중간에서 말을 쓰는 ‘말잡이’ 옆에는 지폐 몇 장이 들어있는 반찬통이 보였다. 그냥 놀면 재미없을 것 같아 이들은 한 판에 1000원씩 판돈을 건다. 한 사람이 하루 서너 판 정도 놀기 때문에 내리 지면 3000원 가량을 잃기도 한다. 그런데 이긴 사람이 판돈을 다 가져가는 구조는 아니다. 이긴 사람은 본인이 건 돈 1000원만 가져오고 1000원을 이 통에 넣는다. 더구나 3연승을 하면 1000원을 내는 ‘벌칙 아닌 벌칙’을 정해놓았다. 이날도 1만원 이상 적잖은 돈이 모였다. 8명이 돌아가며 윷을 놀다보니 모인 금액이 상당할 때도 있다.
이렇게 모인 돈은 서기수 씨가 보관했다가 마을을 위해 쓰인다. 마을잔치 등 주민들이 단체로 식사하는 자리가 만들어지면 반찬이나 쌀 등을 사는데 쓰거나 식사비에 보태라며 기부하는 것이다. 서한영(61ㆍ유등 유천) 씨는 “기부에 고마워하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윷판이 벌어질 때면 샛거리(간식)를 만들어오곤 한다. 판돈이 걸렸으니 누가 보면 도박이라고 할 텐데 이거 신문에 내도 되는 거냐?”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윷놀이 재미도 살리고 마을에 기부도 하는 유촌마을의 윷놀이는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원래 못자리로 쓰던 비닐하우스를 공사 때문에 허물어야 할 상황이 생기자 평소 윷을 즐겨온 사람들이 손수 비닐하우스를 지은 것이 지금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봄이 되면 철거해야 하는데, 철거 하더라도 유촌마을의 윷놀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서기수 씨는 “마땅한 자리만 있으면 어디든지 비닐하우스 치고 멍석 깔 것이다. 농번기에는 못해도 겨울에는 이만큼 재미난 놀이도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윷놀이 하다 멍석이 닳아 버릴 것을 대비해 하나 더 사서 마을회관에 보관하고 있다. 서 씨는 이곳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통한다.
이곳 사람들은 윷을 잘 노는 것보다 말을 잘 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윷놀이 대회 전적이 아주 높은 것은 아니다. 잔치집이나 초상집에 멍석이 깔리면 으레 벌어지던 윷놀이 고수들이 군내에 아직 많기 때문이다. 의견이 다르면 한바탕 실랑이가 오가기는 하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유촌마을과 길 건너 유천마을은 서 씨 집성촌으로 주민 상당수가 친척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유촌마을의 윷놀이는 매년 11월부터 농번기 시작 전까지 거의 매일 진행된다. 윷놀이를 하고 싶은데 같이 놀 사람이 없어 근질거리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한 번 방문해보시라. 마을에 기부할 돈 몇 천원이면 충분히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 100주년 기념식 ‘새로운 백년 기약’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카페 자연다울수록’ 꽃이 일상이 되는 세상
  • 순정축협 이사회 ‘조합장 해임 의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