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도중/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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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미도중/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7.08.3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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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예 曳 꼬리 미 尾 진흙 도 塗 가운데 중 中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60

‘순간 어깨가 갑자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나라의 녹을 먹고 지낸 34년의 공직생활을 접게 되었을 때 가졌던 느낌이었다. 장기간의 공직생활로 사회적 체면도 유지하고 먹고 살만하게 되었지만 여기에는 수많은 희로애락이 있었다. 아침에 한 시간 이상 더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는 다른 직원보다 늦게 퇴근하느라 아침과 저녁식사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만성 위장병을 달고 다닌 34년이었다. 또 상급자에 충성하고 때로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아부하고, 동료와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며 부하를 잘 이끌어가야 했고,  민원인들과 부딪기며 그들의 고민을 풀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는 그들과 다투기도 하였었다.
이제 손을 놓고 그만 두게 된 것이다. 백수가 되어 ‘시원섭섭’한 가운데 장기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어 ‘시원’이 나의 어깨를 가볍게 해준 것이다. 비록 갓끈이 떨어지고 봉급도 없게 되었지만 이제는 늦게 일어나도 되고 자유로이 돌아다니다가 해지기 전에 아내가 차려 주는 따뜻한 밥을 먹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사기?노자ㆍ한비열전에 나온다. 꼬리를 진흙 속에 묻고 끌고 다닌다는 뜻이다. 부귀로 인해 속박받기보다는 차라리 가난을 즐기며 자유롭게 사는 편이 낫다는 것을 비유해서 쓰는 성어이다.
춘추시대 초(楚)나라 위(威)왕이 장자(莊子)의 현명함을 듣고 사신을 보내 예물을 후히 하여 그를 맞아 재상자리에 모시겠다고 했다. 장자가 웃으면서 그 사신에게 말했다.
“천금이라고 하면 거금이며, 재상이라고 하면 높은 벼슬자리요. 그대는 교제(交際, 왕이 도성 교외에서 지내는 제사)에 제물로 드리는 희생의 소를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오. 몇 년씩이나 걸려서 기르고 무늬가 있는 옷을 입히지만 결국에는 태묘(太廟)에 바치게 되는 것이오. 그때가 되어 새끼 돼지를 부러워한들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겠소. 그대는 빨리 가시오. 나를 더럽히지 마시오. 더럽혀질 바에 나는 살아서 더러운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겠소(寧其而生 曳尾塗中). 나라의 주권자에게 구속을 받고 싶지는 않소이다. 종신토록 벼슬자리에 나아가지 않고, 내 뜻대로 쾌적하게 지내고 싶을 뿐이오.”
<나는 자연인이다>는 모 종편방송 교양프로그램이다. 원시의 삶 속 대자연의 품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자연과 동화되어 욕심 없이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중장년층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산에 들어온 지 3~4년부터 20년이 넘어가는 사람들까지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그들은 그저 산이 좋아서,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운동권에서 활동하다 숨기 위해, 아내 혹은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친환경적 삶에 매료되어 머물렀다고들 말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이들은 친환경적 가치관과 욕심 없고 소박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2년 전에 ‘도시의 일상과 속박을 벗어나 혼자만의 생활을 하며 쉬고 즐기겠다. 최소한의 사회적 연결망을 유지하고 조용히 전원에 묻혀 살겠다’고 다짐하며 제주에 왔었다. 하지만 혼자 지내는 것이 말이 쉽지 사실은 어려운 일이었다. 외롭고 일이 없으니 심심하고 무료하였다. 다행히 40년 지기 아내가 이런 귀촌생활을 나보다 더 즐겨하여 같이 지내주니 외로움은 해결되었다. 학교에서 재능기부를 하고 중국인들을 만나는 일과 감귤 밭 농사일을 하게 되니 일거리가 있어 재미와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또 가끔 친구들과의 모임과 경조사 참석, 그리고 출강을 위해 서울행 비행기를 타니 무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예미도중, 속박을 벗어나 내 뜻대로 자유롭게 살겠다고 애초에 가졌던 소박한 생각과 다짐은 아내가 합류하고 또 일거리가 늘어나고 가끔 서울에 올라가는 바람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특히나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핸드폰과 인터넷, 그리고 티브이(TV)가 보여주는 온갖 뉴스들이 결국 나로 하여금 서울도심에서 사는 바와 다름없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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