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보물여행(29) 바위에 새긴 석산리 마애여래좌상과 불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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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보물여행(29) 바위에 새긴 석산리 마애여래좌상과 불암사
  • 김태현 해설사
  • 승인 2017.11.0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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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오늘 소개할 문화재는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 184호인 석산리 마애여래좌상입니다.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산 130-2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섬진강을 따라 장구목 가는 21번 국도 구 도로에서 강경마을 가는 방향으로 가다가 입석이 마을 초입을 지키고 있는 입석마을을 관통하여 도왕마을로 가는 시골길을 따라 약 1키로 정도 진행하면 왼쪽으로는 도왕마을로 가는 길이 나오는 교차로의 오른편 작은 길로 약 100미터 정도 오르면 두 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작은 주차 공간이 나옵니다. 이곳에 차를 대고 이정표를 따라 직선거리로는 약 300미터이나 오르막길인 산길을 약 20분 정도 오르면 230고지 정도에 위치한 마애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가는 도중엔 행운이 있으신 분은 길가 주변에서 작은 영지버섯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4호로 지정된 석산리 마애여래좌상. 큰 바위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데 사람의 왕래가 적어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석산리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약 2.5미터 정도 되는 바위에 1.7미터 정도 높이에 폭 1.3미터 정도의 크기입니다. 얼굴은 약간 사각형 모양이나 부드러우며 눈은 가늘고 코와 입술도 또렷하고 입 꼬리는 약간 처진 모양입니다. 전체적으로 왜소한 몸체에 비해 얼굴이 크고 손모양은 항마촉지인 즉, 왼손은 펴서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무릎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펴서 오른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어깨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왼쪽 어깨에 대의(또는 원삼)자락을 걸친 우견편단식 옷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머리 뒤편에 얼굴에 비해 과하게 큰 광배가 또렷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붉은색 칠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성 당시나 그 이후라도 오랜 시간 전에 채색된 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얼굴의 선이 전형적인 둥근 얼굴이 아닌 네모 형태라는 점, 상반신에 비해 하반신이 왜소하며, 어깨가 왜소한 점 등이 고려시대 불상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나 일각에서는 백세시대 불상이라는 의견도 있긴 합니다. 전문가의 솜씨라고 하기에는 신체의 균형미나 조각의 세련미가 출중하지 않아서 지역의 석공이나 불심 높은 재주가 있는 일반인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되나,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은 곳에 조성되어 있어 보존 상태는 좋은 편이라 다행입니다.
불상의 왼편에는 작은 굴과 같이 옴폭한 공간이 있으며 그곳에는 제단 역할을 하였을 듯한 널찍한 바위도 놓여 있는데, 이 장소는 불상이 만들어지기 전 토속신앙의 기도처나 성스러운 공간으로 쓰였음직한 공간으로 보입니다. 불상 앞에는 작은 공터가 있는데 이곳에 옛날 불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에 한 도승이 가람을 세우고 대 명당자리를 찾아 전국을 다녔습니다. 이때 순창 적성현에 찾아와 섬진강 만수탄 맑은 물과 장군대좌 용궐산, 무량산을 바라보면서 부근에 대 길지가 있을 것으로 예감하고 지금의 우두산(소머리 형상)에 올라보니 과연 대 가람터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대웅전 자리를 찾지 못하고 날이 저물어 민가에 돌아와 잠을 청하는데 꿈속에서 아름다운 보살이 금부처를 안고 내려와 그 금부처를 놓고 다시 승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승이 꿈인 것을 알고 날이 밝아오자 황급히 꿈속의 장소를 찾아가보니 아뿔싸 실제로 황금부처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도승은 부처님의 계시이므로 그 자리에 대웅전을 짓고 불암사를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대웅전에 금불상이 있는데 바위에 마애불 좌상을 왜 암각 하였을까요?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불암사에는 매달 보름날 저녁이면 처녀 보살들이 섬진강 만수탄에서 목욕을 하는 날로 이날은 비구승들은 외출 금지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보름날 젊은 스님이 나쁜 마음을 먹고 목욕하는 여승들을 훔쳐보다가 막 옷을 입는 처녀보살을 위에서 안아버렸습니다. 이때 보살이 놀라 하는 말이 “내 몸은 나의 몸이 아니고 중생들의 몸이니 저를 놓아 주시지요”라며 간청하였으나 젊은 스님은 더욱 굳세게 안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처녀 보살이 돌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 뒤에 불심이 지극한 처녀 보살의 얼을 달래고자 주지스님이 암벽 바위에 마애불을 새기고 아기 부처를 그곳에 함께 묻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 스님도 죄책감에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또한 장승으로 변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불암사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수많은 여인들에게 아이를 점지해 주었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때 흥했던 불암사는 쇠락의 길에 접어드는데 여기에도 재미있는 설화가 있습니다. 처녀 보살이 돌로 변해버린 뒤 어느 날 밤 주지스님이 꿈에 송아지 바위 밑에서 이빨 빠진 늙은 암소가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꿈에 깨서 황급히 대웅전에 가보니 황금부처가 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이런 괴이한 현상이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 천명이 넘던 신도수가 점차로 줄어들어 결국은 폐사가 되고 마지막 주지인 도민스님은 흥하면 망하고 오르면 내려오는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하여 금부처를 땅에 묻고 만일사를 지으러 떠난다며 언젠가는 금부처를 다시 찾는 날이 꼭 올 것이라고 하였답니다.
한때는 붉은 색의 옷을 입은 화려한 채색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천명 이상의 중생들을 굽어보았을 석산리 마애불은 이제 그 화려함을 잃고 어렵게 길을 물어 찾아가야하는 외진 곳에 외롭게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대략 천년의 풍상을 견디며 그 자리에 남아 있고, 전통과 역사를 찾아 여전히 찾아보는 뜻있는 사람들에게 과거의 이야기와 추억을 속삭이는 듯합니다. 마애불이 우리의 삶과 더 멀어질지 아니면 우리의 생활 속으로 한 발 가까이 들어오실 지는 현재를 사는 순창 사람들에게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주지 스님이 어딘가에 묻고 떠났다는 그 금부처는 언제쯤 알현할 수 있게 될까요?

▲위 사진에서 확대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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