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보물여행(36) 조선 마지막 딸깍발이 선비 ‘노사 기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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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보물여행(36) 조선 마지막 딸깍발이 선비 ‘노사 기정진’
  • 황호숙 해설사
  • 승인 2018.03.22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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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노사 기정진이 배향되어 있는 전남 장성의 고산서원.
▲노사선생 유허비 제막추진위원회에서 건립한 유허비.

「공명(功名)도 너 여라 호걸(豪傑) 도 나 스르어,
 문(門) 다드니 심산(深山)이오 책(册) 펴니 사우(師友)로다.
 오라 난 데 업건마난 흥(興) 다면 갈가 노라.」

 

“동해유어 무두무미무척(東海有魚 無頭無尾無脊), 용단호장 (龍短虎長) 화원서방(畵圓書方)? (동해에 고기(魚)가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척추 뼈도 없다.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 그리면 둥글고 글씨로 쓰면 모가 난다. 이것이 무엇이냐?” 

모두 한번 맞춰 보세요.
이 문제는 조선 말엽 청나라 사신이 이 땅 조선에 인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만든 시험문제입니다. 천자의 명이라며 들이대지만 조정에서는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이 없어서 안절부절 못했지요.
이 때 누군가 아뢰기를 “전라도 장성 땅에 신동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 아이에게 물어 보면 어떠할까요?” 하더랍니다. 하여 나이 어린 기정진을 찾아가서 문제를 보여 주었더니 “고기 어(魚)자에서 머리와 꼬리를 빼면 밭 전(田)자만 남고, 다시 척추 뼈에 해당하는 획 'ㅣ'를 다시 없애면 일(日)자만 남게 됩니다.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는 십간에 용은 진(辰)이요 호랑이는 인(寅)인데, 해가 동쪽 진방에서 뜰 때는 겨울이라 해가 짧고, 인방에서 뜰 때는 여름철이라 해가 길다는 뜻으로, 해의 일조 장단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면 둥글고(⊙) 글씨로 쓰면 모가 나는 것(日)’은 바로 해(日)입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철종임금이 무릎을 탁 치며 기뻐하면서 칭찬하기를 '장안만목불여장성일목(長安萬目不如長城一目)' 풀이하면 '장안(서울)의 수많은 눈이 장성의 한 눈만 못하다'고 하여 외눈박이지만 천하의 문장이란 칭호를 얻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왜 장성사람을 순창군의 인물로 소개하는지 궁금하시지요.
장성사람이 아닙니다. 노사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은 1798년 순창군 복흥면 동산리(일명 조동, 구수동)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양친이 돌아가신 후 18세 때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로 이사하였기에 현재 고산서원에 배향되어 계십니다.
노사 선생이 애꾸눈이 된 데는 재미있는 할머니 묏자리에 관한 전설이 있습니다. 복흥면 대방리 용지마을에서 장성으로 통하는 구 고갯길을 넘어가면 노사 선생 할머니 묘소가 있습니다. 노사 선생의 할아버지가 묏바람으로 손자 가운데 위대한 학자가 나오기를 염원하면서 수많은 노력 끝에 찾아 낸 명당자리입니다. 노란 꾀꼬리가 나무를 쪼는 ‘황액탁목혈’이라고, 마치 새 한 마리가 나무에 달라붙어 있는 형국이라고 합니다. 무덤 뒤의 바위가 꾀꼬리 색 마냥 노란색을 띄고 있거나 묘지를 쓴 후에 노란색으로 변해야 발복이 된다는 명당자리입니다. 특히 3대 후손 중에 한쪽 눈이 없는 아이가 나와야 발복이 된다는데 노사 선생이 태어났을 때 두 눈이 멀쩡하여 실망했다가 실명이 되자 환호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내려옵니다.(인터넷에서 찾아보시도록…)
화담 서경덕, 퇴계 이황, 율곡 이이, 한주 이진상, 녹문 임성주와 함께 조선시대 6대 철인 중 한 분인 성리학의 대가가 노사 선생입니다.
노사는 7세에 성리철학의 깊은 이치를 깨우칠 정도의 신동이었고 10세에는 경서, 사서 등을 통독하였다고 하지요. 순창 복흥의 기운이 팍팍 전해진 것인데요. 장성사람으로만 기억 되는게 아쉽습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키가 7척이고 상체가 하체보다 길었으며 귀는 크고 입은 모지며 눈썹은 길고 눈은 투명하였답니다.
다행히 순창에서 뜻있는 분들이 모여서 2003년도에 유허비와 8세 때 쓰신 시문비를 함께 건립하였습니다. 노사선생 유허비 제막추진위원회(회장 양상화)에서 했는데 큰 박수를 쳐드리고 싶네요.
장성에는 노사를 배향하는 고산서원이 있어 ‘딸깍발이 선비 문화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딸깍발이’는 '남산골 샌님'의 별명으로 오직 인(仁)과 의(義) 속에 살다가 죽는 것이 떳떳하다며 강직(剛直, 목이 부러져도 굴하지 않는 기개)하게 살았던 선비들을 일컫는답니다.
순창군립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답사를 장성으로 가서 노사 선생과 훈몽재의 주인공 하서 김인후 선생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순창의 절의와 선비정신을 되새겼죠.
노사는 학문에 있어서는 일정한 스승이 없었지만 성리학의 이치를 터득하고 연구해서 자신의 사상체계를 세워 나갔을 뿐 아니라 지행합일(知行合一)의 학문 철학은 후학들에게까지 전승되었죠. 그래서인지 노사의 손자 기우만과 종손 기삼연도 한말 의병장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위정척사 사상에 입각해 1862년에 ‘임술의책’을, 1866년 ‘병인소’를 지어 올렸던 노사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있으면서도 지역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며 국정의 방향과 운영에도 영향을 끼치는 사대부 지도자의 역할을 한 19세기 산림지식인이지요.
단편적인 지식을 갖춘 해설사지만 늘 노사 선생에 대해 함께 뜻을 기리는 귀중한 시간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기정진의 편지.
▲노사 기정진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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