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보물여행(40) 소나무 숲 헤치며 만난 귀래정 ‘편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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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보물여행(40) 소나무 숲 헤치며 만난 귀래정 ‘편액’(2)
  • 김태현 해설사
  • 승인 2018.05.3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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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순창사람이라면 모두 아시다시피 귀래정은 순창읍의 남산대 마을에 위치한 정면 세칸 측면 두칸 지붕은 팔작지붕 형태의 건물로 현재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67호로 지정되어 있는 정자입니다. 귀래정 이야기는 본지 기획연재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2016년 10월 20일(315호), ‘설씨부인을 다시 생각하다’, 2017년 4월 27일자(341호), ‘신말주의 숨결 귀래정’과 2017년 5월 11일자(343호), ‘귀래정에 올라 호연지기를 가슴에 품다’에서 다룬바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오늘은 귀래정의 편액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편액(扁額) 또는 액판(額板)이란 이른바 현판(懸板)으로 통칭되는 건물의 정면, 처마 및 천장에 거는 글과 그림 등을 총칭하는 명칭입니다. 귀래정에는 현재 총 19개의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신씨 세거지를 지나 귀래정 방향으로 오르면 유서 깊은 소나무들이 그림과 같이 주 출입구를 지키고 있는데요, 계단을 오르면 첫 현판을 만나게 됩니다. 그림에는 가려져 보이지는 않습니다. 편액 순서는 세거지에서 귀래정으로 오르는 길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편액을 첫 번째로 외부에 걸린 편액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첫 번재 편액의 안쪽에 걸린 편액에서 시계방향으로 돌아 걸린 순서 그리고 다시 출발점에서 안쪽 칸에 걸린 편액 순으로 임의로 순서를 정했습니다.  

<열린순창> 393호 1~4번째 편액에 이어

 

5. 다섯번째 편액

 

다섯 번째 편액은 첫 번째 편액의 안쪽에 걸려있는 아래의 편액입니다. 편액의 제목은 십로시입니다. 신말주 선생은 1499년 본인을 포함한 순창의 70세 이상의 노인과 계를 조직하고 명칭을 십로계라하고 선생께서 서문을 쓰고 계원 각자가 시 한수씩 짓고 본인의 모습을 그려 넣은 첩을 만들었는데 이 편액에는 10명의 계원이 지은 시구와 이름이 쓰여져 있습니다.
십로계에 대한 설명은 신말주 선생께서 직접 쓰신 십로계서 18번 편액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십로계첩은 현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4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십로계첩에는 그림과 싯구가 같이 실려있는데 그림을 참고하여 싯구 식구를 꼼꼼히 읽어보시면 각 인물의 됨됨이가 얼마나 사실적인 동시에 해학적인지 감탄하게 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시구는 김박, 설산옥 두 어르신 싯구입니다. 뜻을 풀이하자면

<십로시>

안변에서 신선이 먹었다는 복숭아 뿌리째 뽑았으며 / 혼사가 이어져 옥천에 당도했다. / 사준에서 시작한 벼슬은 부장에서 끝났으며 / 다시 머리카락이 나도 범궁에서 참선하리라. <이윤철>

소싯적에 활을 잘 쏘았음은 틀림이 없으며 / 늙어 감에도 여전히 헛된 소리함이 드물다. / 술 마신 후 약한 노여움이 생긴다고 말하지 마시오 / 선을 취하면 역간의 잘못이 있은 들 어찌 따질 것이 있으리오. <안정>

눈 같은 수염은 서역 사람 같은데 / 벙어리가 되고자함은 다름이 아니라 세상의 시끄러움 싫어서이네. / 예전대로 아내를 부릴 수 없다면 / 아마도 배를 타고 황해 나루터를 건너갔으리라. <김박>

전산 깊은 계곡에서 한가로이 지내는 이 / 도회지의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몇 해를 보내었나. / 세상에서 부질없이 늙어 가는 사람이라 말하지 말지어다. / 여러 해 감고를 지내며 마을마다 이름을 날렸네. <한승유>

십노계 중에서 가장 대장부일세 / 머리카락 비록 세어졌다한들 어찌 평범한 사람일까? / 이 늙은이 잘하는 일 알고자 하거든 / 부리는 하인과 처가 본 남편을 버리고 왔음이 증명이 되네. <설산옥>

못을 앞에 둔 마당에 작은 정자 만들어 / 손자와 장난치며 한가로이 지내다가 여생을 보존한다. / 때때로 첩이 맛있는 음식을 올리니 / 마주보며 먹으니 그 냄새 향기롭다. <설존의>

타고난 성품이 자연적으로 공손해 / 비록 어린이와 대면하여도 역시 예의바른 모습이네. / 다만 마음을 열고 즐겁게 웃을 일이 있으면 / 노래 한 곡조에 술이 천 사발이다. <오유정>

귀래정 위의 흰 머리 늙은이 / 다 떨어진 빗자루도 버려야 당연하거늘 못쓰게 되어도 근심하지 않는다. / 이웃 사람들도 아깝게 여기고 버리지 않음에 힘입어서 / 술자니 만들고서 나날이 시를 읊지 않는 날이 없다. <신말주>

사람들은 집이 큰 산 속에 있다고 하니 / 산 속에 도달하지 못하면 끝내 만나지 못하리. / 신선도 아니고 도한 귀신도 아니니 / 어떻게 오래도록 노저옹과 벗하리오. <조윤옥>

악행을 보고서는 어느 누가 마음이 부끄럽지 않으리오 / 마음을 비우고 잘 대처함이 참으로 현명한 이로다. / 비록 별다른 덕이 없어도 이 또한 아름다운 일 / 사람들이 말하는 인욕선을 물리침이 마땅하다. <장조평>

 

6. 여섯 번째 편액

 

이 편액이 바로 송운 강희맹의 시입니다. 강희맹은 조선 세종/성종대의 인물로 신숙주와 함께 세조실록 예종실록을 같이 편찬하기도 하였고 소나무 대나무 및 산수화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시의 뜻풀이만 싣겠습니다.
그 내용은, 귀래정의 컨셉에 어울리게 강호의 유유자적을 노래하고 풍진의 세상을 등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귀래정 선생을 칭송하는 내용입니다. 

벼슬을 버리고 돌아온 것은 무슨 일인가?
전원에 삼경이 묵었다네
봄은 찬데 송국이 무량턴가?
손님이 오면 술상을 가져오네
샘물은 졸졸졸 흐르는데
꽃가지 은은히 향기롭네
마음 놓고 즐길대로 즐기니
높은 벼슬 생각할 이유없네

벼슬을 버리고 돌아온 것은 무슨 일인가?
조용히 살면서 긴 여름 보내리라
죽림 깊은 곳에 사슴을 보고
마을 멀리 꾀꼬리 노래 듣네
집 짓는 제비들은 쌍쌍이 바쁘고
강 위에 갈매기는 낱낱이 날쌔구나
마음 놓고 즐길대로 즐기니
어찌 헛된 명예에 얽매일손가?

벼슬을 버리고 돌아온 것은 무슨 일인가?
들판에 가을 기운이 감도네
먼 기러기는 바닷가에 날아오고
외로운 학은 숲언덕에 있네
반짝이는 솥에는 순채를 삶고
소반이 향기로우니 게과 자라 올랐네
마음 놓고 흥취가 다시 도도하도다

벼슬을 버리고 돌아온 것은 무슨 일인가?
입동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네
토끼는 추워서 토굴 속에 숨고
물고기는 내려가서 얼음 속에 잠들었네
베어낸 나무 밑동은 봄을 고대하며
관솔불 만들어 등불을 대신하네
마음 놓고 즐길대로 즐기니
나 이미 내 집 마당에 이르렀네

무슨 일로 돌아가는가?
너무나도 돌과 샘이 기이하기 때문이네
강물은 달리고 들은 멀리 퍼졌으며
산은 작은 정자를 안고 높았네
대숲이 있으니 뜰이 유달리 고요하고
꽃을 사랑함에 자리를 자주 옮기네
마음 놓고 즐길대로 즐기니
어찌 세상과 어긋나리

무슨 일로 돌아가는가?
고향에서 경치 좋은 곳에서
-유유자적하기 위함이네
산은 푸르고 물은 맑으니
따뜻한 봄 뒤에는 맑은 가을이 있네
이미 평생의 계획을 결안하니
어찌 높은 벼슬을 꿈꾸었으리오
마음 놓고 즐길대로 즐기니
뜻을 얻어 다시금 너그러워지네
 

7. 일곱 번째 편액

 

일곱 번째 편액은 허백당 성현의 시입니다. 허백당 성현은 세조 8년(1462년)에 문과 급제 후 평생을 관직에 머물렀는데 용재총화라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성종대에 이르기까지의 민간 풍속, 문물, 제도, 역사, 지리, 학문, 종교 등 문화 전반을 다룬 필기잡록류 서적을 집필하였고 악학궤범이라는 한국음악사와 음악이론의 중요한 원전으로 이용되는 서적의 주요 집필진으로 참석한바 있습니다. 허백당은 신말주와 동시대 인물로 이 시는 신말주가 순창에 낙향하여 귀래정을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벗을 위해 지은 시입니다.
이 시는 친구 재능과 귀향을 아쉬워하는 동시에 그 결정을 내린 귀래정 선생을 위로하며 공감하고 또한 약간의 자조가 같이 섞여있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내용이 길어 주요 시구만 발췌합니다.    

돌아왔는가, 돌아왔는가?(중략)
지금 임금의 덕화는 요순을 초월하니
기와 용같은 신하들이 벼슬길에 나섰는데
그대의 좋은 재주 문무를 겸하고서
급류에 물러난 건 어리석지 않은가?
그대가 말하기를 벼슬길은 기구해서
몇몇이나 바쁜 걸음으로 그 몸을 다쳤는가?
평생에 먹은 마음 강호에 있느니
이제 가지 않고서 또 무엇을 기다릴까!(중략)
만 그루 배와 대추 구슬같이 매달렸네
사방에서 말술을 서로서로 가져 오니
시골의 노인들과 자리를 같이 하네
즐겁게 북을 치고 강구에서 노래하니
태평한 이 세상에 슬픔이 무엇인가!
바라건대 이 즐거움 끝까지 변함없길
아마도 도연명이 이런 재미있었는지?(중략)
그대를 보내면서 큰 기대 해보지만
한바탕 웃음 웃고 공연히 한숨 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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