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도록’, ‘더적더적하다’, ‘구릉지다’, ‘무기미하다’
남북한 언어를 발굴하는 작업에 힘이 실렸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새로운 단어들이 속속 발굴 되고 있다. 겨레말큰사전 남북한 공동 집필을 위해 지난해 남북의 사전(남 표준국어대사전, 북 조선말대사전)에 실려 있지 않은 문헌어ㆍ지역어ㆍ현장어를 조사하여, 선별한 새롭게 찾은 겨레말을 소개한다. 그동안 남북한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어휘를 발굴하는 작업은 남한과 북한, 중국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이 중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발견된 공통 단어들을 만나보자.
“기별을 해줄 테면 일찌감치 기별을 해줄 일이지, 사람을 ‘그대도록’ 곯린단 말씀요?” 박종화 《임진왜란》(남), “인제 제가 죽고 나면 며느리 고 씨가 집안의 한 어른이 되어 가지고 맘대루 휘둘러가면서 지낼 테니까 그 일을 생각하면 아깝고 미웁고 해서 숨이 넘어가는 마당에서까지 ‘그대도록’ 야속한 소리를 했던 것입니다.” 채만식 《천하태평춘》(북), 앞의 예문에서 볼 수 있는 ‘그대도록’은 ‘그다지’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로 ‘그러한 정도로’ 또는 ‘그렇게까지’로 풀이할 수 있다.
“머리는 부엉이 대가리 같고 수리 눈에 왜가리 주둥이, 맹꽁이, 모가지 체격으로 욕심과 심술이 ‘더적더적하옵데다.’” 작가미상 《흥보전》(북), “문을 잡아당기자 비바람에 바랜 종이가 ‘더적더적한’ 문짝이 기우뚱하며 열렸다.” 이명한 《위패》(남), 앞의 두 문장에서 나타난 ‘더적더적하다’ 는 ‘어지럽게 덧붙거나 겹쳐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형용사다.
“‘구릉진’ 곳을 휘청휘청 올라간다.” 박경리 《토지》(남), “‘구릉진’ 포장도로가 마주 다가오고 길옆의 키 높은 방울나무들이 휙휙 지나갔다.” 최성진 《높이 솟은 탑》(북), 두 묘사문에 쓰인 ‘구릉지다’는 ‘언덕지다’와 같은 말로 ‘바닥이 평탄하지 못하고 언덕처럼 비탈지다’는 뜻으로 풀이 된다.
“검은 침묵과 함께 조용히 시간이 흘러갔다. 이 ‘무기미하며’ 숨막힐 듯한 침묵 속에서 아픈 다리는 또다시 쑤셔나기 시작하며 뇌장을 송두리채 뽑아 내친 것처럼 머리속이 휭하여졌다.” 권정룡 《도강》(북), “수달피 씨의 시골 사람을 모욕하는 언사에는 모두가 불쾌한 듯 아무도 맞장구를 치지 않아서 방 안은 잠시 ‘무기미한’ 침묵에 잠겨있었다.” 정비석 《한월》(남), 앞의 예문에 쓰인 ‘무기미하다’는 ‘아무 기미가 없다’와 ‘어떤 낌새나 징조를 알아차리거나 짐작할 수 없다’는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그다지를 강조한 말 ‘그대도록’, 어지럽게 덧붙은 모습을 표현한 ‘더적더적하다’, 비탈진 곳을 나타내는 말 ‘구릉지다’, 기미가 없다는 뜻의 ‘무기미하다’ 외에도 다양한 남북한의 공동언어가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겨레말큰사전 사업은 서로 다른 언어뿐만 아니라 지금껏 인식하지 못했던 공동의 민족 언어까지 발굴해 나가는 작업이란 점에서 또 하나의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