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터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상태바
이 터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 김수현 기자
  • 승인 2020.06.11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3일 구례 장터 팔각정에서는 시민 100여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구례 출신 20대 초반 여성노동자인 서 씨가 직장생활 1년 6개월 만에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해 진상규명을 위한 구례시민사회모임을 꾸리고 집회를 연 것이다. 
서 씨는 지난 3월 17일 오후 회사 아파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유서를 남겼다. 숙소에서 나온 4장 글에서 서 씨는 상급자 이름과 직책을 거론하며 “이제 그만해라. 이젠 좀 적당히 해. 그만해 제발… 돈이 뭐라고 이젠 그만하고 싶어”라는 등의 내용을 남겼다. 
지난주에 이어 기본소득 기사를 쓰고 있다. 전북지역 기본소득운동을 통해 기본소득이 개인이 협상력과 발언권을 높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되면 착취 수준의 임금이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거부할 힘이 세지고, 더 높은 조건을 만들 수 있는 협상에 대해 확신하고 대처해나갈 수 있게 된다.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사용자도 노동자들의 노동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게 된다.
기사를 쓰면서 머리에는 구례 서 씨의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 맴돌았다. 도대체 오리온은 신입직원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상급자가 부당한 행동을 지속해서 했다면 제지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서씨 역시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을까?
이 질문은 무력하기 그지없다. 지난달 22일 광주 광산구 하남산단의 한 재활용업체에서 홀로 일하다 파쇄기에 끼여 빨려 들어가 숨진 고 김재순 씨, 올해 초 이마트에서 무빙워크를 점검하다가 기계에 끼어 숨진 청년노동자, 작업장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김용균 씨, 구의역에서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사망한 김 군, 방송계 ‘노동착취’의 가해자가 되는 현실에 괴로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한빛 피디까지…부당한 노동 환경에서 이들은, 이들을 둘러싼 사람들은 왜 그 상황을 정지시키지 못했을까? 
빈곤과 폭력 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터널링’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터널링이란 터널 안에 들어가면 오로지 멀리서 빛을 발하는 출구만 보이고 주변의 모든 사물은 깜깜해서 보이지 않는 터널 시야 현상으로, 터널링은 결핍과 풍족함에 대한 주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결핍은 통찰력을 부족하게 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고, 조절을 잘못하게 한다. 특히 물질적인 결핍은 인지 능력의 핵심적인 특징인 유동성 지능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생존이라는 얄팍한 빛 외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심지어 생명조차 보이지 않는 상태. 우리 노동자들이 터널 안에 서 있다. ‘돈이 뭐라고 이제 그만하고 싶어’라는 서 씨의 유서를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이 터널에서 긴급히 빠져나와야 한다.
물론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산업보건안전법 등 법 개정도 필요하다. 동시에 문제가 있는 곳에 ‘여기 문제가 있다!“고 소리칠 수 있는 목소리를 회복하는 데 힘써야 한다.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돌아보고 함께 해결할 공감의 목소리를 회복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 100주년 기념식 ‘새로운 백년 기약’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카페 자연다울수록’ 꽃이 일상이 되는 세상
  • 순정축협 이사회 ‘조합장 해임 의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