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생각하면 저미는 마음 향우애로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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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생각하면 저미는 마음 향우애로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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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8.1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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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한개, 소주 한병도 향우가 만들고 파는 물건으로

▲ 김상진 아이상승인파크 회장
14대와 15대(2000-2004) 재경순창군향우회장과 옥천향토문화사회연구소 제9대 이사장(2007-2009)을 역임했다. 현재는 (주)아이상승인파크 대표이사 회장이다.
1942년 적성면 지북리에서 작고한 김귀순, 이반면 사이의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나 적성초, 순창중, 순창농고(현 제일고)를 졸업했다. 고향 지북리에는 두 형수들만 셋째 누이는 동계 마상동에서 살고 있다.
김 회장의 큰 아들 완수(41ㆍ싱가포르 은행 과장)씨 부부는 싱가포르에서 산다. 매주 금요일 저녁 김 회장의 아파트에는 둘째아들 진수(39ㆍ노동부 근로복지공단 과장)ㆍ셋째 홍수(38ㆍ메르츠화재 선임과장)씨 부부와 자녀들이 모여든다. 때마다 하는 일이 같지는 않지만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은 김 회장 가족들이 서로의 소중함을 기억하며 일상의 피로를 푸는 시간이다. 김 회장의 며느리 사랑은 유별나다. 김 회장은 온 가족이 찜질방에서 휴식을 취할 때 차가운 녹차를 챙겨주는 자상한 시아버지이다. 때론 며느리를 앞세워 스크린 골프장을 찾아서 비즈니스에 필요한 실력을 챙겨주기도 한다. “부부란 서로 존중하고 말 한마디도 조심하고 모범을 보여야 자식들 부부도 보고 배운다”며 김 회장은 가족 앞에서 얼굴 붉힌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아버님처럼, 아버지 흉내는 못 내더라도 생각이라도 닮으려고 노력한다”고 자녀들은 말했다.
작년에 칠순을 맞은 김 회장은 자신의 기업과 가족에게 받친 정성의 근본은 ‘따뜻한 정’이라며 “향우들 사이에도 서로 돕고 정을 나누는 게 기본이며 마음으로 향우들을 대할 때 따뜻한 온기가 흐르는 향우회가 된다”고 강조했다.

향우회장 재임시 읍ㆍ면별 산악회 구성과 ‘순총회’ 창립을 지원했다고 들었다. 김 회장이 생각하는 향우회는?

= 도시락 하나, 소주 한 병을 사면서도 향우들이 만들고 파는 물건을 사서 쓰려고 애썼다. 길을 가다가 ‘전라도’라고 써진 간판이나 글귀만 봐도 마음이 설레고 반가웠다. ‘순창사람’을 만나면 더없이 좋았다. 그런 마음으로 향우회에 나갔고 회장을 맡아 일하면서 ‘향우들의 마음이 내 맘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잊어 본적이 없다. 윗사람, 어른을 공경하고 편 가르지 않고 모두 함께 의논하며 일을 추진하려고 노력했다. 당시 신년하례식 등 향우회 행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달라 분열 조짐이 있었으나 향우회 임원은 물론 부녀회, 청년회를 연쇄 접촉하며 충분하게 논의하도록 기다렸다. 그 결과 부녀회, 청년회가 서로 역할을 나눠 분담하며 협력해주었다. ‘향우사랑, 고향사랑은 우리들의 소명이다’는 나의 설득과 실천하려는 노력에 향우들이 호응한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역대 각 읍ㆍ면 향우 조직과 군 향우회의 실무를 맡아 활동해온 젊은이들이 계속적으로 향우회의 근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당시 고윤석, 김진문 등 군향우회 사무총장 등이 추진한 총무들의 모임 창립을 도왔다. 임기 동안 심혈을 기울여 왔던 향우회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되기는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후임 회장을 추대할 때도 김종세, 윤양하 회장님 등 전임회장님들과 11개 읍ㆍ면 향우회장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를 구성 했었다. 향우들과 마음을 함께 할 사람을 뽑는 게 중요했고 젊은 층과 호흡을 할 수 있고 향우들의 화합을 할 수 있는 회장을 선출해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향우회는 향우회 임원들의 노력과 향우회원들의 호응이 조화를 이룰 때 성장할 수 있다.

옥천향토문화사회연구소 이사장도 역임했다. 향우단체들의 고향과의 관계와 역할에 대한 생각은?

= 많은 향우회 행사가 있고 그 때마다 상당한 비용이 든다. 향우회 행사에 과도한 비용이 든다는 비판과 자성도 있다. 문제는 재원보다 사람이다. 확 펴놓고 자기가 할 일을 하면서 화합과 선도가 필요하다. 군세가 미약한 고향에서 상경하여 갖은 고생을 한 향우들이 생활기반을 잡기까지의 고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생이 심할수록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옥천향토문화사회연구소가 ‘순창지역 발전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한 것도 고향 발전을 재향 주민과 서울 향우들이 공감대를 찾아보고 이를 위해 함께 힘을 합해보자는 노력의 하나다고 생각한다. 한 술에 배 부를 수는 없지만 우리 지역의 전통문화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지역사회의 대안을 찾아 머리를 맞대보자는 취지였다고 생각한다. 향우회나 연구소 등 향우단체들이 보다 더 고향에 대해 관심을 갖고 빛깔만 좋고 실속 없는 행사보다는 작지만 재향 주민에게 도움이 되고 후손들의 미래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부녀회가 매년 동계 매실농장을 찾아 일손 돕기를 하는 것처럼 다른 향우단체들도 고향의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 찾아 힘을 합해야 하고, 고향 특산물 팔아 주고 고향으로 휴가를 가고 고향에서 소비를 하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실천들이 모여 고향의 발전 방안도 찾을 수 있고 실질적인 향우와 재향 주민의 협력도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조그만 이익에 변덕부리지 않고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향우단체가 되기 바라며 노력하겠다.

상경 후 기업 창업까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 사람은 사람에게 잘 해야 한다. 군대를 제대하고 소 한 마리를 팔아 상경했다. 어찌 아는 사람을 통해 당시 안양농협에 취직해 1주일을 출근했는데 그 다음날 책상이 없어졌다. 취직을 알선해 준 사람이 소 판돈을 먹고 튄 것이다. 막막했다. 영등포 신길동의 사촌매형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던 시절이라 난감했다. 그 자를 찾으려 했으나 잡을 방도가 없었다. 돈은 다 떨어지고 온종일 거리를 헤매다 우신초등학교 앞 떡집 거리에서 파장 시루떡 1개를 사서 인분냄새 진동하는 배추밭 어귀에 앉아 굶주린 배를 채웠다. 그 때 인근에 사시던 한 노부부가 내 딱한 사정을 듣고 도와주셨다. 잠도 재워주고 음식도 나눠주고 회사도 알아봐 주셨다. 영등포역에서 화차에 철가루를 오삽(평삽)으로 퍼 담는 일을 하다가 할아버지의 소개로 수산시장에 취직했다. 8년 동안 제대할 때 입고나온 군복을 입고 ‘수산시장 김 서기’로 살았다. 그 후 자동차 부속상회와 택시 사업을 하면서 유한양행과 국정교과서 등 큰 회사들과 거래하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유류파동이 왔고 견디지 못해 부도를 냈다.

1980년, 운수업의 인연으로 교통회관 이사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1개 회사가 독점했던 자동차보험을 개방했다. 그때 자동차보험 총무부장의 권유로 ‘상승실업’이라는 총괄대리점을 창업했다. 경제신문에 전국 실적 1위 회사라고 대서특필되고 큰 호황을 누렸다. 손해보험협회로부터 표창도 받고 열심히 노력했다. 지난 6월 1일로 창업 28주년이 되었고 연간 300억원 가까운 실적을 올리는 중견 보험총괄법인으로 성장했다. 해마다 전직원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온 지 5년째다. ‘여러분의 고생이 상승실업의 성장이다. 여러분 뒤에는 가족이 있다. 올해 고생하여 내년에는 여러분의 가족 모두와 함께 한강 유람선을 빌려 하루를 즐기자.’ 직원들에게 하는 당부이자 지켜온 약속이다. ‘사람(직원)ㆍ가족ㆍ화합ㆍ인간경영’ 직원을 가족처럼 대하고 차별을 두지 않는다. 선물 하나를 주더라도 실속있는 물건을 찾아내려고 고심한다. 한 번도 ‘내 자식이다’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다. 회사도 사회도 고향도 향우회도 사람이 중심되고 그 사람들이 희망의 비전과 성공의 신화를 만든다.

고향의 지인들 그리고 고향 마을에 대한 기억은?

= 강원도 주문진 한 횟집 주인이 ‘담양사람’이라는 소리에도 귀가 솔깃해졌다. 내 고향 순창 이웃 고을인데...  고향 근처 사람만 봐도 반갑고 즐겁다. 고향 적성 지북 마을에는 형님이 살고 계시고 농소의 최훈 이장, 김진홍, 김익진, 김양수, 최금용 등 선배와 친구들이 살고 계신다. 해마다 추석 전 주 토요일에 성묘를 간다. 선조들의 묘소를 참배하고 선배님들과 친구들이 마련해 주는 음식을 대접받고 온다.

자식들 모두 성장했고 큰 욕심도 없다. ‘비우면 채워지고 강하면 끊어진다’는 경구를 잊은 적 없다. 고향에 거주하는 친족들은 물론이고 고향 사람들과 어울려 여생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한 때는 고향의 금과 전원마을에 집을 구하려고도 했었다. 은퇴후 고향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재경순창군향우회는 우리 군의 작은 지역세에 비해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11개 읍ㆍ면 모두에 향우회가 조직돼 있고 그 산하에 부녀회와 청년회가 있다. 실제로 부녀회의 경로잔치와 청년회의 송년회 등의 행사 규모는 다른 지역 향우회가 부러워 할 정도다. 이에 더해 역대 읍ㆍ면 향우회 총무단의 모임인 ‘순총회’는 각종 향우 행사의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해온 실무 활동가들이 정보를 교환하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 또 읍ㆍ면 별로 조직된 산악회는 매월 정기 산행을 통해 향우와 고향 사랑을 두텁게 한다. 이런 각종 향우 조직들은 각 읍ㆍ면별로 그 역사가 다르기도 하지만 대개 김상진 회장이 재경순창군향우회장 재임기간 중에 태동했거나 그 기반을 더욱 굳건하게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향우들이 자주 만나다 보면 향우들 간의 정이 쌓이고, 그렇게 되어야 향우회가 자연스레 활성화된다”는 김 회장의 지론이 가져온 결과라는 전언이다.

아이(i) 상승실업(주)를 창업하여 업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재경향우회의 중흥기를 이끌었다는 평판을 받고 있는 김상진 회장에게서 향우회에 대한 열의와 기업가로써의 성공담을 들어봤다.

인터뷰 : 임양호 편집인

▲ 김상진 회장이 경영하는 (주)아이상승인파크 임직원들은 해마다 가족들과 함께 창사기념일 맞아 해외여행을 한다. 지난해는 필리핀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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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호 2011-08-12 11:47:53
김상진 회장님은 지역신문에서 가끔 보고 들었는데, 인터뷰 내용을 보니 남다른 고향사랑이 있었군요. 경영인으로서 직원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마음 존경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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