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바깥32 과꽃
광주에서 순 깡패짓만 골라하던 그 새끼
인문고 문턱에도 못 가보고
겨우 상고에나 다니던 그 새끼
툭하면 땡땡이 치고 툭하면
야 꼬마야 돈 내놔야
꼬마야 누나 내놔
하던 그 새끼가
어느 날 군인이 되어
우리 집에 찾아왔어
학교 끝나는 시간만 되면
스포츠 머리에 기름 발라 넘기고
어이 은희씨
수피아 여고생하고 상고생허곤
영 수준이 안맞는당가
키득키득 우쭐거리며
누나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그 새끼
야이 씨발년아
누군 공부 못해 인문고 안 간 줄 알어
그 놈의 돈 때문에 내 청춘 종 친 거지
박박 악쓰던 그 새끼였어
그 새끼는 느닷없이
벌벌 떠는 아버지 앞에 넙죽 큰절을 했어
은희 누나를 절대 집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고
나가면 무조건 개죽음이라고
두부처럼 다 뭉개진다고
죄없는 광주시민 다 죽이는
공수부대 샅샅이 때려잡고
민주화되면
사람 돼서 돌아오겠다고
숨넘어가듯 주절댔어
그때서야 난 알았어
그 새끼 군복과 공수부대 놈들 군복이 다르다는 걸
그 새낀 회색 깨구락지 군복을 입고 있었어
그때였어
처음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누나에겐 수십 통의 편지를 툭 던져주었어
그리곤 어둠 넘어 사라졌어
그날부터 누난 울었어
하얀 교복 입고 등굣길 서두르는
작은누나 골목길 어귀
예전처럼 뒷호주머니에 손 찔러넣고
보라색 배꼽바지 펄렁거리며
헤이
헤이
거들먹거리지도 않았어
우리반 애들 돈 빼앗던
그 새끼 똘마니들도
하늘나라 가버린 거야
그 새끼는 아예 하늘로 올라가버린 거야
누나가 매일 과꽃을 꺾어와
한 잎 두 잎
집골목에 흩뿌리기는 하지만
하얀 눈물 맨날 맨날
꽃잎처럼
하늘거리기는 하지만
•1992 첫시집 <친구여, 찬비 내리는 초겨울 새벽은 슬프다>에서 재수록
채광석 시인. 1968년 순창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재학 중인 23세 때 등단했다. ‘대학 재학 중 등단’이라는 수사는 화려함 그 자체다. 하지만 등단은 ‘대학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 등과는 화려함의 결이 전혀 다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대에 절필을 한 후, 나이 쉰이 넘은 지난 2019년 2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를 펴냈다. <오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