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무대 복흥 뜰에서 농산물직거래 성공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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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인생무대 복흥 뜰에서 농산물직거래 성공신화
  • 고윤석 향우기자
  • 승인 2013.07.0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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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흥 반월마을 귀농 7년차 정기영 씨

▲복흥 반월마을에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정기영씨와 해발 350미터 준 고랭지에 자리 잡은 복분자 농장.
사업을 실패했거나 직장을 잃어 더 이상 도시생활을 할 수 없는 이들이 선택하는 막다른 길처럼 여겨졌던 귀농ㆍ귀촌은 이제는 옛말이다. 요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삶이 도시인들의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귀농을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시대의 거대한 트렌드(방향, 경향, 동향, 추세, 유행 등의 뜻)로 분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인구 구조의 변화와 함께 대두된 웰빙(참살이, 삶의 질을 강조하는 생활 방식) 트렌드, 그리고 농업에서 블루오션(무경쟁시장, 고기가 많이 잡힐 수 있는 넓고 깊은 푸른 바다를 말하는데 경쟁자가 없는 유망한 시장을 가리킨다)을 찾고자 하는 젊은이들까지 합세한 흐름이기 때문이다.
귀농 7년차, 복흥면에서 농사짓는 정기영(47ㆍ복흥 반월)씨는 서울에서 대기업 가전회사에서 15년 동안 근무했다. 부친의 농업경영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계획을 앞당겨 귀농했다는 그는 회사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의 엄격한 품질관리와 인터넷 쇼핑몰 운영 및 통신 판매 등을 통해 연간 1억원을 웃도는 매출 소득을 올리고 있다. 서울에서 재경복흥면향우회 총무와 청년회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복분자 2000평, 오미자 1400평, 인삼 1600평, 오디 1300평, 논ㆍ밭농사 8500평 등 1만5000평 규모의 농원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귀농 계획이 있었나
귀농은 당연히 생활을 위해서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다. 생계만을 위해 농사를 짓자는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 밑에서 보고 배우며 느꼈던 것은 ‘고래(옛날)로부터 내려온 농사방법은 절대 아니다’였다. 이런 인식을 일찍 터득했기에 30대 후반 쯤에 귀농할 계획으로 준비하고 있던 중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30여 년 동안의 인삼재배로 ‘순창 인삼 재배 1세대’라고 자부해 온 부모님이 도매시장에 인삼을 출하하면서 중간 유통 업자에게 속아 헐값에 넘겨 큰 손해를 반복해서 입는 모습과 산지 출하가격과 소비자 가격과의 너무 큰 차이에 놀랐다. 농민들에게 좀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소비자들이 쉽고 싸게 우리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각오로 2003년경부터 농지를 구입하고 시설(저온저장고 등)을 갖추면서 귀농을 준비했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보장받는 두 번째 직업, 농사를 짓기 위해 지난 2006년 9월, 자녀 교육 때문에 서울에 거주할 수밖에 없는 아내와 자녀 둘을 남겨놓고 고향 복흥으로 내려왔다.

정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귀농을 준비할 때는 가전회사 품질경영 팀장, 과장으로 승진했고 재경복흥향우회 총무와 청년회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서울과 시골을 왕래해야 했기에 애로사항이 많았다. 기존의 인삼과 벼농사 위주로는 소득이 일정하지 못해 생활이 불안정했다. 직장인처럼 일정한 소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농지를 추가 구입하고 복분자, 오디, 오미자, 블루베리, 매실 등 특용작물 재배 및 시험생산 등에 필요한 작물투자, 건물구축, 저온저장고ㆍ가내 가공설비 등에 퇴직금 약 1억8000만원을 투자했다. 쇼핑몰을 구축하고 내가 근무했던 회사는 물론 서울 동네의 미용실ㆍ복덕방, 마트, 동창ㆍ동문ㆍ향우회 등 각종 모임과 행사에 참여하며 발로 뛰는 홍보와 고객 의견 반영, 다품목ㆍ고품질 농ㆍ특산물 생산 및 공급을 통해 2000여명의 고객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부가가치 높은 핵심 품목에 집중해서 수익성을 높인 것이 빨리 정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일궈놓은 농사 기반과 곁에서 도와준 형제자매 일가친척들의 도움이 컸다. 농사 박사급 고향 친구들과 곁에서 지켜보며 지도해 주신 많은 선배님들이 있어서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농사는 그야말로 연습이란 없다. 뿌리는 대로 거두는 것이 농사라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농사의 기회는 1년에 딱 한번이고 실수나 실패를 하면 시간과 노력과 경비를 고스란히 잃어버리는 아주 잔인한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큰 실패는 본의 아닌 시행착오와 천재지변이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기후변화에 따른 작물 피해가 가장 힘들었다. 꽃피는 시기에 내리는 늦서리, 결실기 가뭄, 길어진 장마, 잦은 태풍 등으로 작물 손상, 시설물 파손, 침수 피해 등 일 년 농사뿐 아니라 몇 년 농사를 한순간 망쳐버리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농번기철 노동력 부족이 심각하다. 농촌인구 고령화가 제일 큰 문제다. 인력이 많이 필요한 특수작물 재배로 유휴 인력이 없고 작물 특성상 시기별 일손 투입이 중요한데 자기 일만 할 뿐 품앗이는 생각도 못한다. 몇 년 전 후배 한 분이 귀농한 덕에 40대 후반인 내가 동네 막둥이를 면할 수 있었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크다. 귀농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들, 딸이 고2, 중3이 되었다. 아빠 역할을 제대로 못해줘서, 아이들 뒷바라지에 고생하는 부인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귀농정책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우리 지역에는 젊은 귀농인이 상당수 있지만 1인 귀농자라서 ‘귀농 자격’이 안 돼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자녀들 교육 때문에 가족과 함께 내려오지 못한 남편이자 아버지들이 많다. 고향이 좋고 농업에 비전이 있다고 생각하여 젊은 나이에 귀농해서 조만간 뒤따라 내려올 가족들의 정착기반을 다지고 있는 1인 귀농자도 일정기간 거주하면 귀농자 자격을 주고 실질적인 도움이 될 사업 보조금 또는 융자금 지원 등이 필요한 것 같다.

향후 계획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여 금년에 자비를 들여 4000여평에 점적 관주시설을 설치해 가뭄 해소와 생력화를 이뤘다. 하반기에는 보조사업으로 비가림 시설하우스를 설치하여 냉해 피해 예방과 고품질 복분자를 생산할 예정이다. 4~5년 전부터 시험재배용 선행 작물로 심어 놓은 체리와 비타민, 칼슘, 산수유, 보리수, 무화과 등 20여 종의 유실수 중에서 적합한 작물과 품종을 찾아 식재 확대와 농가 보급에 앞장 설 예정이다. 또 복흥 지역에는 변변한 농산물 가공공장 하나 없는데 지역주민의 숙원사업인 농산물 가공 유통회사를 설립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농산물 판매와 소비자 직거래를 통한 농가 소득향상에 앞장 설 계획을 갖고 있다.

귀농 희망자에 대한 조언

제2의 인생으로 귀농을 선택하든지, 목가적인 삶을 원해 시골로 내려오든 농촌생활 역시 엄연한 현실이므로 귀농 목적과 목표가 중요하다. 도피성 귀농은 곤란하다. 자영업에 실패했거나 명퇴를 했거나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며 자립 기반도 없이 무턱대고 내려오면 오래 못가 또 다시 실패할 확률이 높다. 자신의 경제적 상황과 농사에 대한 지식수준 등을 점검하고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준비하는 게 좋다. 또 귀농이라고 해서 꼭 농사만 짓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소질과 전문성을 활용한 직업을 가지고 일정한 소득을 올리며 틈틈이 농사를 지으며 별도의 수익 창출을 권장하고 싶다. ‘가고 싶다’는 바람이나 ‘해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으로는 힘들다. 어쩌면 도시 생활보다 더 치열하고 냉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농사를 잘 지으면 도시에서 보다 더 잘 살 수 있다”며 “젊은 나이에 귀농을 결심해 7년째 되었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고 다부진 각오로 ‘귀농예찬’을 늘어놓는 정기영(010-7700-5098)씨의 성실함에 출향인의 한사람으로써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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