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지교/ 잘 아는 사이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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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지교/ 잘 아는 사이도 아니면서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1.05.1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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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지교(半面之交, bàn miàn zhī jiāo)

절반 반, 얼굴 면, 갈지, 사귈 교

후한서(後漢書)응봉전(應奉傳)에 나온다. 반쪽 얼굴의 사귐이다.

정부과천청사 중앙부처 N국장이 잘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가 왔다.

! N국장, 지난 일요일 공 잘 맞대. 이번 주말 어때? 친구들과 같이 밥이나 한 번 먹자.” 한참 너스레를 떨던 그 사람,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로서 졸업 후 한 번도 못 본 P였다. 그는 그 후에도 두세 번 전화가 왔는데, 그때마다 어찌나 친근하게 말하는지 좀 듣기가 어색하고 역겨울 정도였다. 어느 날, 또 전화가 왔다. 지금 청사 면회실에 와 있는데 좀 얼굴 좀 보자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변했나 하는 호기심도 일어 내려갔다. 그가 두 손을 맞잡으며 악수를 하더니 어깨를 감싸 안고 다독거리며 아주 친근한 티를 내었다. 그의 뒤에 좀 멀찍이 서너 명이 보였다. 둘을 눈여겨보는 그들, ‘저 사람들은 뭐지?’ 아차 싶었다.

두어 달 후, 경찰 수사관이 찾아 왔다. P를 잘 아는 사이냐는 것이었다.

“P가 조합주택을 분양한다며 사기를 쳤어요. 주택건설을 담당하는 N국장과 잘 아는 사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니까 피해자들이 그냥 믿고 투자를 했대요.”

이 사람이 친하지도 않으면서 반면지교를 이용해 N에게 농간을 부리고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이다.

 

중국 후한(後漢) 때 하남성 여남(汝南) 출신의 유명한 학자 출신인 응봉(應奉)은 기억력이 매우 좋아 한 번 읽어 본 책이나 한 번 보았던 사람, 겪은 일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의 기억력에 대한 일화들이 많은데 그중에 두 가지만 예를 들어 본다.

응봉이 관리가 되어 2천명도 넘는 사람들이 연루된 소송사건을 맡아 수사를 하게 되었다. 24곳 지방을 돌며 수사를 끝내고 관청에 돌아온 응봉이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기록한 자료를 보지도 않고 그동안 만난 사람들과 생긴 일들을 빠짐없이 보고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응봉이 팽성(彭城)에 있는 행정장관 원하(袁賀)를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주인이 외출 중이라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가 문을 두드리다가 되돌아가려고 할 때, 문이 조금 열리더니 한 사람이 얼굴만 삐죽이 내민 채 몇 마디 대꾸를 하고는 다시 들어가 버렸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어느 날, 응봉이 길거리에서 한 목공을 만나게 되었다. 응봉은 그 목공이 예전에 원하의 집에서 봤던 그 남자라는 것을 떠올려 인사를 건넸다. 그 남자는 어리둥절하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예전에 만난 일이 없는데 어떻게 저를 알아보시는 것입니까?”

어찌 만난 적이 없습니까? 단지 반면지교 밖에 없으니 무리도 아니겠지만 말이오.”

응봉이 수십 년 전 원하의 집에서 만난 얘기를 자세히 들려주니, 그제야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제가 그 댁에서 부서진 마차를 수리하고 쉬던 참에 누가 찾아 와 문을 두드리기에 잠시 열고 얼굴만 내민 것뿐인데, 그 오래된 일을 다 기억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한번 본 정도(一面識)의 친분도 못되는 사귐'이란 뜻으로 잠깐 만나 얼굴도 제대로 기억할 수 없는 그저 알기만 하는 사이나 친분이 돈독하지 않은 사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오다가다 한번 만났을 정도의 사이로 얼굴만 기억날 뿐인데, 앞서 언급한 N국장처럼 낭패를 입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인간관계는 자주 만나야 친분이 두터워지고 신뢰도 쌓이는 법이다. 일면식도 없으면서 동향, 동창, 일가니 친척이니 하며 아는 체를 하면, 거기에 틀림없이 뭔가 있는 것이다. 좀 멈추어 저 자가 왜 저러지?’하고 고개를 갸웃거려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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