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녀의 자살’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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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의 자살’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4.03.0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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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생활고를 비관한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은 5만원짜리 14장이 들어 있는 하얀 봉투를 남기고 이승을 떠났다. 지난 달 26일 발견된 이들이 숨을 거둔 비좁은 방은 작은 침대와 이불, 각종 세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도 밀린 집세와 공과금을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이웃에 대한 원망이나 정부에 대한 분노는 없었다. 넘어져 다친 것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간 것도, 열심히 공부해도 취직하지 못한 것까지를 ‘제탓’으로 여기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국민의 의무를 다할 줄만 알았지 보장된 권리를 누릴 줄도, 사회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돈 없고 아프면 죽어야 하는 야만적인 사회’를 원망조차 하지 않았다. 컴퓨터에만 등재(주민등록)된 국민이었다. 세 모녀의 빈소는 차려지지 않았지만 이들을 애도하는 마음은 줄을 이었다.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얼마나 오랜 시간 울었을까?”,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국민들의 안타까운 죽음”, “시기만 다를 뿐 우리의 미래 모습”이라는 탄식과 정부에 대한 비난이 줄을 이었다.
애도하는 시민들은 슬픔과 분노를 가누지 못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아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운운했다. 반복지 세력으로 의심받던 대통령 후보가 ‘맞춤형 복지’와 ‘국민행복시대’를 내걸고 당선돼 결국에는 ‘돈타령’을 하고 있다. ‘복지’를 주창해 당선된 뒤 ‘경제활성화’를 국정목표로 내세우더니 ‘행복은 소득 순’이라는 낡은 사고를 전파하는 꼴이다. 대통령은 늘 그랬듯이 이 참상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고, 격분한 지식인들과 조의를 표하는 누리꾼들의 반응은 줄을 이었으나 공감도 긴장감도 주지 못한다.
“이 사건도 내일이면 모두 까맣게 잊을 것이며 앞으로도 이런 비통한 사건이 끊이질 않을 것”이란 인식 때문이다. 비극은 줄지 않고 일상이 됐다. 세 모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주범은 무엇인가? 실직한 뒤 11살 아들을 다리 밑으로 내던지고 자살한 가장, 자신이 죽으면 장애자 아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목을 맨 50대의 또 다른 아버지, 영양실조로 숨진 30대 청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만으로 살 수 없다며 자살한 60대 부부 …. 이들이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하도록 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세 모녀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 끼니 걱정을 하지 않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며, 제 한 몸 뉠 수 있는 집을 갖는 건 당연한 권리이고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사회ㆍ경제적 양극화와 빈곤화가 심화되면서 세 모녀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국민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생활고나 민생문제 때문에 비극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이ㆍ성별ㆍ직업을 불문하고 오로지 성장과 성공만을 외치며 살아가는 무한경쟁시대, 앞만 보고 달리는 폭주 기관차 시대를 끝내야 한다. 이 고장 난 자본주의를 더 늦기 전에 뜯어고쳐야 한다.
세 모녀의 비극은 복지정책과 민생대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는 생계 주거지원이나 일자리 대책이 있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전ㆍ월세 때문에 시달리지 않는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공영화, 다중채무자도 변제 가능한 채무조정제도, 누구나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노동환경, 과도한 교육ㆍ주거ㆍ의료ㆍ통신비 부담이 없는 사회였다면 이같이 불행한 죽음에 이처럼 비통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런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부양의무제 등을 폐지해 복지사각지대를 줄이고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현재의 신청주의에서 발굴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면 “자살할 용기가 있다면 그 각오로 살아보라”며 책망하는 목소리들도 들려온다. 하지만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안에서 춥고 배고픔을 달래고 있는 가난한 이웃이 아직 많다”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침묵하는 정권과 정치인의 행태를 먼저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구멍 뚫린 사회안전망을 바로잡고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 “바보처럼 살다 천사의 모습으로 하늘나라로 간 세 모녀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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