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일기장 속 나를 만나게 해 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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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일기장 속 나를 만나게 해 주고 싶었어요"
  • 황호숙 기자
  • 승인 2010.11.04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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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미 저「욕시험」

 

난데없이 “너거들, 어데 욕하고 싶은 거 있으면 이게다가 다 적어 봐라”고 말씀하시는 야야네 선생님이 하도 새퉁스러워서 다시 귀재고 들어보아도 욕을 쓰라는 말이 맞네요. ‘뭐라꼬? 이 시험지에다가 욕을 써 내라꼬?’ ‘욕도 쓸 데가 있다’고 하시는 야야네 선생님은 욕을 무조건 하지 말라고 잔소리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시험지에 욕을 가득가득 쓰라고 했어요. -「욕시험」본문 중에서

 

일기장 속 나를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는 박선미 선생님의 어릴 적 경험이 책을 따뜻하게 아이들을 품어준다. 제목부터 아이들을 사로잡아 끄는 매력이 있다.

역시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위해 애써 오셨던 분이 쓴 글은 틀리구나 싶게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는 것이다.

“야! 뭐 하고 있노? 욕 시험이다, 시험! 너거들 빵점 묵을래?” 선생님의 호통소리에 처음에는 욕 한마디도 못 쓸 것처럼 미적미적하던 아이들이 시험지에 엎드려 쓰기 시작 한다.

“참 내, 무슨 이런 시험이 다 있노? 아이들은 진짜로 그 욕을 다 써 낼란강? 진짜로 내가 아는 욕을 다 써도 될란강? 그런데 와 이래 아무 욕도 생각이 안 나노”라면서도 뒷장에 까지 빼곡하게 욕이란 욕을 다 써낸다. 그런데 교무실에 갔더니 선생님들이 야야가 쓴 욕을 가지고 짖궂게 놀려대자 담임선생님이 얄미워서 마음속으로 욕을 퍼부어댄다. 이 부분에서 아이들은 낄낄낄 거리며 박장대소한다. 자기들도 속으로 선생님이 얄미워 욕했던 적이 있나보다. 순간 뜨끔하다. 아버지한테 혼날까봐 밥도 못 먹고 놀지도 못하고 이불 뒤집어 쓰고 운다.

“바보 빙신아, 문디 자슥아, 이 범보다 무서운 놈, 빌어묵을 놈아.”

 선생님은 알고 싶었던 거다. “너거들이 말로 하지도 못하고 꾹꾹 눌러 참고 있는 기 뭔지, 너거들 마음을 어둡게 누르고 있는 기 뭔지, 그기 알고 싶더라.” 라면서“ 박선생은 박선생이고 박선생 딸은 박선생 딸인기라. 사과하꾸만 ” 펑펑 울고 난 야야가 눈깔사탕을 들고 하교하는 길은 아마 복사꽃 핀것처럼 화사해 졌을 것 같다.

하하하. 이 책을 읽기 전에 작년에 아이들과 욕 시험을 보았던 적이 있다. 모든 말의 뒷마무리가 무조건 욕으로 끝나는 게 당연한 듯 욕지거리를 해서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4절지에 “너희들이 쓰고 싶은 욕 다 써봐라. 그리고 욕 시험 경연대회도 할꺼니까 실감나게 써라”라면서 뫼비우스의 띠를 준비했었다. 모든 욕을 허용해 주겠다는 말에 듣기 거북한 욕들이 쏟아져 나왔고 욕 경연대회는 실로 난장판이었다. 고개 끄덕이며 들어주고 웃으며 흥미를 나타냈더니 신나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자기의 종이를 뫼비우스의 띠로 만들고 느낌을 토론하였다. 그 시간 이후 최소한 독서논술시간에는 욕을 자제하려고 아이들은 노력하였고 스스로 줄여 나갔다.

욕 써내는 ‘욕시험’ 본 아이들은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 내지는 못하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어른이 있다면 웃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5학년 아이들이 “선생님, 욕시험 한번 더 봐요”하며 나를 쳐다본다. 아마도 뒷이야기 상상화 그리기를 하라면 아이들은 물 만난 물고기가 되어 싱싱 튀어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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