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관세화유예’ 종료…기로에 선 ‘식량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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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관세화유예’ 종료…기로에 선 ‘식량주권’
  • 남융희 기자
  • 승인 2014.06.2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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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쌀 개방 불가피” 농민, “협상 계속해야”

쌀 수입 개방 두고 갑론을박
정부 사실상 쌀 관세화 결정

올해 말 쌀 관세화 유예 종료를 앞두고 정부는 “쌀 개방이 불가피하다며 쌀을 양허(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공식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국내 쌀시장은 지난 20년 동안은 ‘쌀 관세화 유예’ 조처를 통해 시장 전면개방을 피할 수 있었으나  정부는 쌀 관세화(수입 전면개방) 여부를 결정해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해야 한다. 농민단체는 관세화되면 농업의 근간이 무너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20일 경기도 의왕에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대강당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쌀 관세화 유예 종료 관련 공청회’에서는 농민과 정부 간의 확연한 의견 차이가 재확인됐다. 정부는 “국제 협정 내용이나 국내 현실을 감안했을 때 쌀 관세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농민들은 “미리 결론부터 내려놓고 개최한 요식 행위 공청회”라고 비난했다.
송주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주제발표(쌀 관세화 유예종료에 대한 이해와 쟁점)를 시작하자 현장은 성난 농민들의 목소리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송 위원은 “관세화 전환은 2004년의 관세화 유예 연장 협상보다는 부담이 적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들며 설명했으나 농민들은 “수치가 틀렸다”며 “우리를 바보로 아느냐”고 지적했다.
1994년 타결된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에서 쌀 시장을 개방하기로 약속한 정부는 올해까지 그 개방 의무를 면제받고 있다. 그 대신 1995년부터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했고 그 양을 점점 늘려 올해 쌀 수입량은 40만9000톤에 이르고 있다. 이 수입량에 제한을 둘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정부와 농민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개방’이란 말 대신 ‘관세화’를 앞세운다. 정부는 쌀 관세화가 국내 쌀 농가에 이익이 될 거라며 쌀 시장을 개방하되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며 농민을 설득하려든다. 지난해 국내산 쌀 평균가격은 킬로그램(㎏)당 2189원이고 미국 쌀 가격은 791원에 불과하다며 관세율을 300%는 매겨야 국내산 쌀의 가격 경쟁력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일본은 1999년 쌀 개방을 할 때 1066%의 관세를 매겼고, 대만도 2003년 개방 때 563%로 관세율을 정했다며 300% 정도는 문제되지 않을 거라는 게 정부의 논리다. 하지만 미국 등 쌀 수출국들은 150~200%의 관세율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날 공청회에서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서 쌀 수입 관세 300%를 약속하라”고 농민들이 주장했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쌀 관세화 유예 종료는 관세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쌀 관세화 유예 기간이 종료된다고 관세화 의무가 새로 발생한다는 내용 또한 협정에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정부는 이미 관세화를 기정 수순으로 보고 있다”며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현상유지, 의무면제 등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협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율 관세를 매기면 된다’는 개방 찬성론에 대해서는 “고율 관세가 영구불변하다는 보장이 없다”며 “관세 감축에 대한 압력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고 양보를 피할 방법이 없어 결국 식량주권 확립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도 “쌀 관세화의 해법은 협상”이라며 “공청회에서 중요한 쟁점이 검토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의 손재범 사무총장은 “관세화 유예를 요청하면 쌀 수입 물량이 전체 소비량의 20%까지 증가할 수 있어 국내 농업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높은 관세와 농가소득안정방안 마련을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대표적인 농민단체 간의 확연한 의견 차이를 보였으며 전농과 한농 소속 농민 간에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의 관세화를 추진 방침에는 쌀이 주요 식량으로서 지위를 잃어 가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1인당 쌀 소비량이 1995년 106.5㎏에서 지난해 67.2㎏으로 줄었다는 것이고, 식품소비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1995년 19.9%→2013년 14.2%)이 매년 줄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농민들의 불안을 분노로 확산시키는 모습이다.
정부는 도하개발 어젠다(DDA) 자유무역협정(FTA) 농업분야 통상현안 관련 설명회를 개최하면서, 지난 16일 경기서울지역 설명회 장소를 서울 시내 한복판(LW컨벤션)에 마련해 농민들의 비난을 샀고, 18일 충북설명회에서도 빈축을 쌌다. 농식품부는 이런식의 설명회 개최나 토론회 참석을 소통성과로 홍보했으나 ‘공감능력’없는 소통은 아무리 횟수가 많아도 쓸모없다는 여론이다.
공청회나 설명회에 참석한 농민은 “바쁜 농사철에 이해당사자인 농민을 쏙 빼고 공청회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쌀 시장을 개방하려는) 의도를 갖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발표자도 토론자도 농민의 아픔을 듣는 게 아니라 정부가 하는 일을 대변하러 온 것 같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요즘 수확했거나 하고 있는 농산물(매실ㆍ오디ㆍ복분자ㆍ블루베리, 양파ㆍ마늘 등)의 가격이 폭락하고 있고 이맘때쯤이며 연중 최고에 달해야 할 나락가격이 16만원대로 하락하는 등 심각한 상황에서 농식품부가 쌀 관세화만 고집할 게 아니라 원점에서부터 농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농민들의 요구가 높다.
순창군농민회 남궁단 회장은 “정부는 현 상태 유지을 위해 협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는 이미 무너진 상태와 다름없는데 현상유지 등 자국 농민 보호책보다는 수출국인 미국 등의 요구를 받아 쌀 관세화를 기정사실화 하면 큰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며 “이제 더 물러설 곳이 없는 농민들은 전국적인 국민운동에 동참하여 끝까지 투쟁할 수 밖에 없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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