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45)/ 디지게 농사짓고 살았는디 손에 쥔 것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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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45)/ 디지게 농사짓고 살았는디 손에 쥔 것은 없고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4.07.18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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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45
시방까정 뭣했나 생각허니 일이 손에 안 잡히는 날이네요

가죽나무                             -도종환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딴에는 곧게 자란다 생각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 꼬여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것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 걸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짝을
잘라 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부족한 내게 그것도 기쁨이겠기 때문이다.


새복밥 묵자마자 고추 줄치러 안골로 가방 들쳐 메고 갔더니, 워짤라구 비가 안와부네요. 요상하게시리 일 헐라고 맘 묵고 일어나믄 새복부터 비가 오고, 바깥에 나갈 일이 있으면 영락없이 쨍쨍해붕게 구신이 곡할 노릇이더라구요. 꼭 꾀 부리는 것 맹키로 내 맴을 알아주나봐요.
시방 같으믄 농사 못 지을려나 봐요. 이래 뵈도 농사 짓기 시작한지 25년이 다 되가는 고참인디라. 내 몸이 아플때 외에는 농사짓기가 싫다는 생각은 혀본 적이 없는데 죽어라고 일허기가 싫응게 미쳐불겠구만요. 몸이 갱년기 증상땜시 아파 붕게 자꼬 눈물만 날라고허고 우울해불고 웃기지도 않게 짜증만 나서 고런가? 가슴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아픔이 오거나 얼굴이 뽈개짐서 땀이 헛것 본 것 마냥 비실비실 내려쌓더니 오십살 내맴이 허해졌나? 허는 의심도 드네요.
아님, 블루베리도 싸불고 감자 심어도 싸 불고 헝게 농사에 대한 의욕이 쌍그리 없어져부렀나 싶다가도 언제는 안 그랬가니 헌당께요. 참말로 우울한 증상이 오래 가 갖꼬 산속에서라도 울고 자파짐서 통곡혀불고 싶은디 고것도 내 맘대로 안 되고….
어쩐대요. 이녁들은 오십살에 요런 기분 안드셨당가요.
디지게 농사짓고 살았는데 손에 쥔 것은 없고 앞을 봐도 험난한 산이요, 뒤를 보면 꽉 막힌 채 끝도 없는 낭떠러지 절벽뿐이고요. 옆을 보면 독사들만 우글거리고 있는 것 같은 초조하면서도 아득한 기분 땜시 아모 일도 손에 안 잡혔구만요. 시방까정 대체 내는 무엇을 이룩해 놓았나? 라고 자문해보는 지 맴을 이해해 주시려나요.
요렇게 저렇게 상처받아 허무한 마음들에 일을 안 허고 핑계꺼리를 대려니 맨날 아픈디 밤마다 머릿속에서는 일거리들이 헤집고 다님서 들 쑤셔 놓고요. 
근디 딱 두 가지가 지를 쬐까 살려주드라구요.
한나는 친구들헌티도 전화도 못할 정도로 우울혀서 작정하고 통곡할려고 쐬주 한 병 마시고 안골 냇가에 가서 울었어요. 친정엄마 들으실까봐 작은 소리로 울음을 참으며 작년에 수수랑 심어 놓은 자리에서 누워 하늘을 쳐다보다가 못자리 하우스 안에 들어가서 참깨꽃 콩꽃 피어나드끼 울었더니 다음날 아침에 눈이 부어 있지 않겄어요. 이상하게 여긴 큰 딸이 물어보길래 “열심히 일했는데 남는 게 없다고 생각헝게 기냥 쬐까 우울혀” 했더니 한마디 하더라구요.
“엄마 딸 네 명이나 이쁘게 키웠잖아. 고걸로 큰일 했지.”
아휴, 속으로 눈물 나게 고마웠어요. 아하, 고렇구나 험시롱 나도 별수 없구나 싶더라구요.  황무지 같던 안골을 요로코롬 이쁘게 만들어서 꽃들이 피어나게 허고 우리 딸들도 당당허고 야물딱지게 키워 놨으면 된 거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또 한나는 땅에 씨앗을 심고 모종을 옮기고 줄을 치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치유력이 있더라구요. 지는 땅을 맨발로 밟을 때의 그 감촉을 좋아하는디요. 워떨땐 기냥 땅바닥에 누워서 하늘 쳐다볼때도 마냥 좋구만요. 들깻모를 고 흙속으로 시집보냄서 뒤돌아보면 좋고라. 심난허게 풀밭인 밤나무 묘목 밭을 맴서 옥과떡 엄니, 가남떡 엄니, 글고 연산 언니랑 도란도란 이야그 헐때도 좋구요. 허리춤 올림서 돌아보면 깨물어주고 싶게 이삐구만요. 오늘도 고추 줄치다 봉께 사래가 지인 밭 끝머리에 자귀나무 꽃이 화들짝 놀랜 듯 서 있응게 고로코롬 이삘 수가 없어요. 지는 워쩔 수 없는 농사꾼이당께요. 보랏빛 가지꽃처럼 피어나고 싶어서 가지 하나 생으로 먹는디 꿀맛이더라구요. 기냥 흙 파고 훅 훅 던져 놨던 호박들이 언덕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도 좋구요. 고추 꽃, 호박꽃, 가지꽃, 토마토 꽃, 자귀나무꽃, 개망초꽃이 피어 있는 안골 밭처럼 지 맴속에서 커지려는 묵정밭의 기세를 눌러야 쓰겄지요. 도종환 시인의 가죽나무처럼 지는 지가 볼품이 없는 나무라 캐도 뿌리 내리려 열심히는 살아가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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