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편지(1)/ 페헤라쉐즈, 파리꼬뮌 현장에서 ‘광주’를 기억하다
상태바
파리편지(1)/ 페헤라쉐즈, 파리꼬뮌 현장에서 ‘광주’를 기억하다
  • 조남훈 객원기자
  • 승인 2015.01.02 0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볍게 떠났다가 무거움에 짓눌린 첫 파리방문기

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첫번째 편지

조남훈 객원기자가 떠났다. 강원도에서 순창으로 바람따라 내려오더니 이젠 프랑스 '파리'로 갔단다.
파리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열린순창>은 그가 파리에서 겪는 타국생활 이야기를 연재한다. 첫번째 편지는 '가볍게 떠났다가 무거움에 짓눌린' 그의 첫 파리방문기.  <편집자>

 

▲종교에 비판적인 필자에게 크리스마스는 크게 중요한 행사는 아니다. 다만 샹젤리제 거리에서 보낸 그날만큼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출퇴근길 신도림역을 연상케 하는 그 거대한 인파에 질렸고 밀려드는 손님에 지친 노점 직원들의 표정에서 고단함을 읽었다.

열심히 다녔다. 길을 벗 삼아 바람 소리를 노래 삼아, 학창시절부터 전국을 누비게 한 그 방랑기는 곧 내가 열심히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쉬는 날이면 어디론가 떠날 생각에 들뜨던 나는 그렇게 무려 10년이 넘도록 국내에서만 맴돌았다. 국내를 벗어날 수 있는 우연한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외도(?)를 결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행시작은 삐걱거렸다. 베이징공항 보안검색대에서는 절반이상 쓴 향수병의 크기가 규정보다 약간 크다는 이유로 압수당했다. 그리고 나보다 10배 이상 싼, 단돈 80달러에 티켓을 구했다는 옆자리 중국인의 얘기까지 들으니 비행여정은 정신적으로도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다만 베이징공항을 떠나며 본 중국대륙의 광활함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중국산 천지’를 인정하게 됐다. 그런가 하면 자다 깨어 영상 한 편 보고 술기운을 빌어 또 자다 깼는데 여전히 러시아 상공이라는 걸 알고 러시아 횡단 여행계획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파리에 도착해서 본 첫 번째 기억에 남을 장면은 공항 앞 거리에 너저분하게 깔린 껌이었다. 지저분한 장면이면서 자유로운 곳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파리는 생각보다 지저분한 도시라는 얘기는 절반은 맞았다. 거리에서 가장 많이 본 물건이 벤치와 쓰레기통이었고 지하주차장과 고속도로 휴게소는 소변지린내로 가득했다. 용변이 급한 사람들의 흔적이라고나 할까. 어느 곳을 가던 화장실을 알아두는 것이 프랑스에서는 현명하다. 그나마 유료(0.5유로, 원화 700원 가량)인 곳이 대부분이겠지만.
어쨌든 프랑스에 도착했으니 여행 목적에 맞는 프로그램을 이행할 차례가 됐다. 필자는 이번 여행에서 역사,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저항의 흔적을 통해 한국 사회와의 공통점과 모순을 찾는 것이 주제다. 물론 순수 관광의 일정도 있다. 에펠탑과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은 그저 파리에 왔다는 인증인 셈이고 한국 사람들이 자주 찾지 않는 곳들을 꽤 다니게 됐다.

 

‘왕의 목을 친 유일한 혁명의 나라’
1789년 7월, 프랑스 민중들은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한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프랑스혁명의 시작이었다. 감옥에 있던 대포들은 녹여진 후 광장의 동상으로 재탄생했고 혁명 200주년이 되던 1989년 바스티유감옥이 있던 자리에 바스티유오페라가 개관한다. 프랑스혁명의 상징과 같은 바스티유광장은 반드시 가야 할 곳이었다.
필자는 해마다 오월이면 광주를 찾는다. 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위태할수록 광주는, 5.18은 더욱 기억되어야 할 우리의 역사다. 1980년 오월 광주를 언급한 것은 파리에서 광주를 기억해야 할 이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1871년 3월 봉기한 파리꼬뮌을 통해 프랑스에는 세계최초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자치정부가 세워진다. 단시간이지만 10시간 노동, 종교와 정치의 분리 등 꼬뮌이 내놓은 사회 개혁적인 정책들은 민중들의 지지를 얻었고 진보진영에 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꼬뮌은 두 달 뒤 기존에 있던 정부군과 연합군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된다. 이곳에서는 파리꼬뮌의 무력 진압이 자행되던 1871년 5월 21일부터 28일까지를 가리켜 ‘피의 일주일’이라 부른다. 그 마지막 날 페헤라쉐즈 묘역에서는 마지막까지 항전했던 파리꼬뮌 가담자 147명이 벽을 뒤에 두고 학살당한다. ‘1871년 5월 21 ~ 28일, 꼬뮌의 죽은 이들에게(AUX MORTS DE LA COMMUNE 21~28 Mai 1871)’라는 추모비가 세워진 그 벽의 아랫부분은 지금도 총탄자국이 선명하다. 이 벽을 중심으로 주변에 있는 묘들은 파리꼬뮌 당시 투쟁했던 사람들의 유해가 안장돼있다. 이 벽을 보며 최후의 항전이 진행됐던 전남도청이 생각나는 것은 항쟁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당연할테다. 덧붙이자면 묘역에 중국에서 망명한 사회운동가도 여럿이 묻혀있는데 프랑스는 정치적 탄압을 받고 망명 온 사람들을 호의적으로 대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 기억해야 할 휴머니즘의 사상가
페헤라쉐즈 묘역을 방문했다면 연관지어 반드시 가야할 곳이 있다. 빅토르 위고의 생가와 그의 유해가 안장된 팡데옹이다. 꼬뮌 진압을 표현한 유명한 소설 레미제라블을 집필한 빅토르 위고는 보수이자 자유주의자였지만 휴머니즘을 온몸으로 실천했던 사람으로 더욱 기억된다. 레미제라블은 파리꼬뮌을 통해 제목부터 내용, 등장인물의 이름까지 상당 부분이 바뀌었고 빅토르 위고는 작가이자 화가, 정치인으로 사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의 저서 ‘파리의 노트르담’이 당초 헐릴 예정이었던 노트르담 성당을 살렸다는 얘기는 허언이 아니다. 국장으로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는 무려 200만명의 사람들이 나와 애통해했다. 빅토르 위고의 생가에서는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은 물론 친필 원고, 사람들과 나눴던 편지, 그림을 볼 수 있고 심지어 침실까지 공개하고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통역기를 빌려주고 있지만 한국어 지원은 안 된다. 그의 유해는 국가 주요 인물만이 묻힐 수 있는 팡데옹에 안장돼있다. 팡데옹 뒤편 주차장에는 철학자 루소 동상이 있고 근처에 소르본대학도 있다. 한 가지 주제를 잡아도 여러 곳을 방문하게 되는 것은 곧 누군가 기억해야 할 만큼 이곳의 역사와 인문학 수준이 높고 보존을 잘 하고 있다는 의미다.

살인적인 물가도 기준이 있다
핫도그 한 개에 1만원이나 하는 그 살인물가는 직접 경험해봐야 안다. 프랑스의 물가는 비교적 비싸지만 의외로 한국보다 싼 물건이 많다. 프랑스에서 대형마트는 정책적으로 시가지 입점이 엄격히 금지돼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하는 외곽에 있다. 즉, 골목상권을 대놓고 죽이지는 않는다. 가격은 시내 슈퍼마켓보다 무척 싼데 대형마트를 이용하면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장을 볼 수 있다. 필자 역시 이곳에서 한국보다 큰 크기의 카트에 절반 넘게 물건을 채운 적이 있다. 식품, 잡화 등 약 20가지 품목을 합친 값이 80유로가 안 됐다. 필자 앞에 있던 어느 현지인은 카트를 가득 채우고도 100유로(원화 14만원) 이하로 계산을 끝냈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값도 한국과 비슷하다. 다만 사람의 손을 거쳐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하면 그 값은 무척 비싸진다. 가령 공산품은 싸지만 음식점은 비싸다. 미용실이 그렇고 택시도 비싸다. 물건이던 서비스던 사람의 노동력이 많이 들어갈수록 값이 비싸지는 것이 살인물가의 비결이다. 소득차이도 있겠지만 이곳에 오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관광객이기 때문에 음식점을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으니 그 물가가 더욱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아닐까? 소비를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 정하기에 따라 이곳 물가는 폭탄이 될 수도, 천사가 될 수도 있다. 빵 좋아하는 필자는 일단 빵집이라면 무조건 들어가고 봤다. 2유로짜리 계란케잌, 1유로짜리 크로와상 한 입 베어 물고 행복하기는 이곳에서 처음이다. 단언하건데 이곳에서는 여느 동네 빵집이라도 후회하지 않을 맛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루 두 번 이상 빵집에 들리는 프랑스 주부들이 오겠는가? 밀가루의 질이 굉장히 높아서 그런지 대형마트표 500원짜리 바게뜨조차 한국에서 먹어본 그 어떤 빵집 바게뜨보다도 맛이 좋았다. 그리고 그 행복함은 벨기에에서 와플을 먹으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