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편지(3)/ 변수 있는 여행도 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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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편지(3)/ 변수 있는 여행도 제 맛(?)
  • 조남훈 객원기자
  • 승인 2015.02.0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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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세번째 편지

 

▲루브르 외곽. 루브르박물관은 매달 첫 번째 일요일마다 무료입장할 수 있다. 이때는 아침 일찍부터 긴 줄이 만들어진다. 루브르박물관의 연간 관람객 수는 800만 명이 넘는다.

 마르크스ㆍ엥겔스 생가 연말 휴무
 흐듸에서 자동차 사고 타이어 펑크
‘파리 테러’ 접하고 탈출 하듯 이동
 루브르, 전리품집합 제국주의 상징

 

여행은 고단함의 연속이다. 방법이야 다르겠지만 어떤 특별한 장소에 가기 위해 머리를 써야 하고 몸을 움직여야 하며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그렇게 보고 경험하고 느낀 모든 것들을 기억하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 여행하면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다이어트다. 먹성 좋은 필자도 한 달 여 바깥 생활을 하는 동안 3킬로그램(kg)이나 빠졌다.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그런 게 아니라 운전과 걷기 그리고 짐 나르기의 연속인 일정 때문이다.
이번 여행기간 중 벨기에와 독일을 각각 두 번씩 방문하게 됐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변수가 각각 한 번씩 생겼다. 학생들과 같이 다니기 전 독일을 방문했을 때는 마르크스 생가와 엥겔스 생가 모두 연말 휴무였다. 책마을로 유명한 벨기에 흐듸에 가는 길에는 거의 도착할 때 즈음 눈길에 미끄러져 작은 사고가 났고 타이어가 터졌다. 왕복 10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허탕 쳤다고 할 수 없으니 독일에서는 뭔가 기억에 남는 일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100년 넘은 모노레일을 타고 뷔페탈 시내 구경을 했고 운전을 해야 하는 형편이라 무알콜음료로 대신해야 했지만 골목의 작은 주점에서 독일식 맥주문화도 경험했다. 독일과 벨기에에서는 안주 없이 맥주만 마시다 귀가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오후 8시만 돼도 상점이 거의 문을 닫을 정도로 귀가시간이 빠른 이곳 특성상 취객도 적다.
벨기에에서는 다행히 사람을 잘 만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는데 흐듸 관광안내소 직원의 도움으로 어렵게 공업사를 찾았고 또 운 좋게 10유로짜리 중고타이어를 구해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흐듸에 도착했을 때 책가게들은 거의 다 문을 닫은 상태였다. 겨울철이 비수기인데다 눈이 많이 내렸고 가게들이 집에 붙어있는 형태여서 열어도 그만 안 열어도 그만이었다. 그 중 유일하게 문을 연 곳에 들어가니 마침 집에 있던 주인이 반겨줬다. 지긋한 나이에 넉넉한 미소가 인상적인 주인은 기억을 한참 더듬어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알고 보니 유럽 책마을협회 사무총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파주 책 축제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이 가게에서 취급하는 서적은 역사와 공포물이 대부분이었으며 흐듸 책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취급하는 분야가 각각 다르다. 여름에는 책을 소재로 한 토론이 수시로 벌어지는 이 동네 주민의 책을 매개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노력은 국제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여행을 함께한 자동차.

이번 유럽여행은 두 가지 틀로 진행한다. 소규모 인원이 파리를 근거지로 하여 자동차 한 대를 가지고 다니는 것과 여러 대의 차량이 함께 이동하며 학생을 직접 인솔해야 하는 일이 그 축인데 후자의 경우 한 국가에서 평균 3일을 체류했다. 그리고 학생과 함께 여행을 시작한 첫 목적지에서 뜻하지 않은 사건을 접하게 됐다. 파리테러였다.
들뜬 마음을 가지고 온 학생들의 첫 여정은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에서 시작됐다. 한 학생은 그 에펠탑에 도착하자마자 어느 흑인한테 200유로를 뜯겨 사기꾼,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한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었다. 다행인 것은 다른 학생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성금이 상당액 모여 이후 여행에 아무 지장이 없도록 한 일이었다.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은 다리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다. 그러나 두 곳을 하루에 다 보기는 쉽지 않다. 루브르박물관은 과거 루브르궁이었다가 왕의 처소가 베르사유궁으로 옮겨진 후 왕실의 예술품을 보관ㆍ전시하는 곳으로 바뀌면서 박물관의 면모를 갖췄고 예술가들을 교육하는 역할도 했다. 전시품만 약 40만 점이 있는 이곳의 규모는 어마어마해서 하루 안에 다 보기는 불가능하다. 이집트와 페르시아 문명 사이에서 헤매다 길을 잃기도 했다.
개인의견이지만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라는 루브르박물관의 본질은 ‘제국주의’다. 전쟁을 하며 빼앗아온 전리품이 아니라면 수많은 미라 등 고대 이집트 유물과 통째로 옮겨진 성곽이 어떻게 박물관 안에 있겠는가? 루브르박물관의 본질이 제국주의라는 점에 대해 현지에서 만난 한 지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전 세계 박물관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규칙 하나가 있다. 약탈품이 90%이상인 박물관은 입장료가 없고 90% 아래는 단계별로 입장료를 책정할 수 있다. 영국박물관은 입장료가 아예 없다. 루브르박물관은 원래 무료였다가 유료화를 한 지 얼마 안 됐다. 지금도 매월 첫째 주 일요일은 무료입장이 된다. 그나마 유료화를 하게 된 건 베르사유 궁에 있던 왕실 물건들을 가져와 프랑스 유물 비중을 높였기 때문이다.” 그

러고 보니 문득 대영박물관의 이름 속에 제국주의가 깃들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은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이 맞다. 대영박물관은 대영제국에서 파생된 단어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제국주의’ 네 글자에 골몰하다 루브르박물관 근처에 어느 카페에 들어갔는데 뜻하지 않은 소식을 접하게 됐다.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주시하는 모습을 보고 한 손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냐고 물었더니 “파리 시내에서 1명의 테러리스트가 10명을 죽였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박물관 안에 있었고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였다. 불과 이틀 전에 온 학생들이 불안에 떨 것이 분명하니 사실을 얘기하기도 어려웠다. 일단 최대한 일정을 빨리 마치고 돌아오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테러 현장은 박물관과 불과 3km 남짓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날 밤 머물던 숙소는 물론 파리 시내 전체가 경찰 사이렌 소리로 시끄러웠다. 학생의 안전이 최우선이었기에 예정된 파리 시내 일정을 미루고 외곽부터 다니기로 했다. 베르사유 궁전과 고흐가 여생을 보냈던 오베르슈아즈 등을 둘러본 후 서둘러 스위스로 출발했다. 파리를 떠난 날, 프랑스 전역에서는 테러 피해를 당한 언론사 ‘샤를리 엡도’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국정부가 이 테러를 규탄할 명분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민과 여행자의 차이 또한 여기에서 갈렸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지역과 사회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이 시민이라면 여행자는 해당 지역에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고 피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그렇게 파리탈출은 슬프면서도 한 번 쯤 생각해볼 문제를 안겨주고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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