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앳가심’ 같은 형님을 보내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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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앳가심’ 같은 형님을 보내드리며
  • 선재식 독자
  • 승인 2015.02.1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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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식(순창읍 남계)

지난 해,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에 집안의 애사가 닥쳤습니다.
선친께서 돌아가시고 38년 만의 애사였으니 어찌 생각하면 그동안 우리 집안에는 경사만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조상님과 가족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고 살았음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1977년 봄, 고등학교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겨우 20대인 큰 형님이 6남매의 궁핍한 집안의 가장 노릇을 떠맡아야 했습니다. 형님은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려고 무리한 사업에 도전했고 뜻대로 되지 않아 사업에 실패하자, 어린 조카를 남겨두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나는 가장의 자리를 대신하는 형님에게 나름 최소한의 예우를 다하기 위하여 형님과 어머니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나 자신과의 최소한의 약속이었고 스스로 지켜왔습니다.
형님이 서울로 떠나고 나니 그 자리는 고스란히 내 차지가 되어 가까스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세의 어린 나이에 돈벌이를 시작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을 고등학교에 보내 어린 조카를 돌보며 살아야 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도시의 괜찮은 직장에 합격했으나 어머니를 모셔야하는 집안 형편은 결국 고향에 남아 어머니를 모시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을 한 평생 모시고, 가까운 곳(적성면)에 사시는 장인ㆍ장모님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사는 나의 삶이 꼭 “못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처럼 느껴지지만 퇴임기를 맞은 또래들이 노년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을 보면서 시골에 남아 살아온 것이 다행스럽고 고마운 생각도 듭니다. 비록 벌어놓은 것은 없어도 3대가 모여살고 자녀들이 정서적으로도 바르게 성장한 것은 더욱 감사할 일입니다.
30여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하려할 때 가족들 모두가 동의하고 격려를 하는데 정작 나 자신이 결단을 내리는 데 제일 주저하였습니다. 이것이 가장의 고민인가 봅니다.
한편 형님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해야 할 가장의 역할을 막내 동생에게 대신하도록 했으니 마음 한편에 고맙고 미안함이 자리했을 터인데 그런 형님이 나의 새로운 도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을까요. 일부 사람들은 그런 형님을 비방하고 헐뜯는데 신명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결과가 좋았다면 마음에 남겨두지 않았겠지만 미안함과 분노는 스트레스가 되어 급성 암이 온 몸에 퍼져 결국 지난해 12월 31일, 눈물 한 방울 떨어트리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역 사회단체인 순창청년회의소에는 “남의 말을 좋게 합시다”라는 슬로건이 있습니다. 남의 험담은 듣지도, 말하지도 말아야 하며 내 사연 내가 잘 알듯이 남의 사연을 남이 더 잘 알 수는 없습니다. 62세 청년 같은 젊음을 내려놓고 형님은 떠났습니다. 세상에 딱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며 춥지만 청명한 날에 떠났습니다. 형님이 나와 내 동생에게는 경제적으로 짐을 지워줬지만 그것은 우리 가족의 우애에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기꺼이 나와 내 동생이 감당할 일이고 남들이 아는 것처럼 남들에게 경제적으로는 어떠한 부당함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남에게는 잘하고 가족에게는 소홀했던 우리 큰 형님 이제 이 세상에 없습니다. 혹여 세상 살다가 잘못이 있었다면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부디 편안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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