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편지(6)/ 하이델베르크는 묻는다. 당신에게 대학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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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편지(6)/ 하이델베르크는 묻는다. 당신에게 대학은 무엇인가?
  • 조남훈 객원기자
  • 승인 2015.03.2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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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여섯번째 편지

대학 박물관ㆍ학생감옥에서 대학의 역할을 고민
배금주의와 취업경쟁을 넘어선 가치창조가 숙제

 

▲학생감옥은 수감된 학생들이 그린 그림과 문구로 가득하다. 일부 학생은 투옥을 훈장처럼 여기는 바람에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고. 학생감옥에 없어야 할 장면 하나가 있는데 나라망신의 흔적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는 한글 낙서다. 관리인이 보다 못해 낙서를 하지 말라고 한글로까지 적어 놨다.  

“대학을 왜 다녀야 하지? 대학 졸업장이 도대체 뭔데?”
“취업하려면 어쩔 수 없잖아. 거의 다 다니는데 나만 안다니면 괜히 낙오자 된 것 같으니까 재미없어도 다녀야지.”
“이게 맞는다고는 생각 안하는데 사람대접 받으려면 일단 학교는 다녀야 할 것 같아.”
필자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또래 친구들과 자주 토론했던 주제 가운데 하나가 대학의 기능과 역할이었다. 학과제가 학부제로, 계열로 두루뭉술하게 통합되고 인문계 학과보다도 이공계가 우선시 돼가던 시절이었다. 학교의 홍보 내용가운데 취업률이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세태가 대학의 현주소였다.
등록금장사하는 사립대 못지않게 국립대도 기성회비로 교수 월급 주고 건물 올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역 거점대학 육성이란 미명하에 통·폐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취업하기에 유리한 조건으로만 학과 개편도 했다. 필자가 다니던 학교도 국립대였으나 인문대학에 상경계와 사회계열이 있고 국문과와 철학과는 없었다. 이른바 이론을 탐구하고 지역 혹은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역할을 해야 하는 학과들은 아예 없었다. 당연하게도 대학의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얘기해줄 사람은 학교에 적었다. 학교를 떠난지 어언 10년이 된 지금도 배금주의에 빠진 대학을 구출할 사람과 조직은 눈에 안 띈다. 대학가의 한 주점에서 이런 주제로 목청 높이던 그 시절, 더욱 열심히 대외활동을 했어야 했다는 반성을 해본다.
오스트리아를 떠나 방문한 독일은 필자의 대학시절을 자연스럽게 되돌아보게 한다. 독일여행 주제 또한 대학이었다. 1386년 설립돼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연구 중심의 학풍이 있고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한 명문대학이기도 하다. 도시인구 13만명 가운데 약 2만7000명이 대학생이라고 하니 하이델베르크는 대학도시로도 유명하다. 우리는 이곳에 있는 대학박물관과 학생감옥에 들어가기로 했다. 대학박물관은 원래 하이델베르크 대학 건물이었다가 신축 건물이 생기면서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역사를 소개하고 학생들이 사용하던 교재와 도구를 전시해놓은 이곳 박물관의 2층 강당은 지어진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대학에 대한 간단한 자기의견을 말해보기로 했다. 대학을 가고 싶은 학생과 가고 싶지 않다는 학생이 나뉘기에 각각 이유를 물어보니 놀랍게도 앞서 언급한 대화내용이 그대로 나왔다. 대학에 대한 환상이 있는 학생과 그것이 깨진 학생이 있었고 말 그대로 “경쟁사회에서 졸업장 없으면 사람대접도 안 해주니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가야하지 않겠냐”는 대답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중·고등학생이 대학을 바라보는 이 패배적 인식을 누가 만들었는지 화가 났고 그것을 방기한 것 같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각각 공부해 터득한 자기사상과 이론을 설파하던 그 자리를 방문한 한국의 학생들이 대학의 역할을 보다 발전된 시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학생감옥이 생긴 배경을 얘기했다. 범죄를 저지른 학생이 단기간 수감되던 학생감옥은 1778년 설치됐다가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인해 1914년 폐쇄된다. 독일에서 학생감옥이 있게 된 배경은 당시 대학은 대학 자체 재판권을 갖고 있었고 대학 안은 치외법권 지역이어서 경찰이 학생범죄를 처벌할 수 없었다. 학생들이 범죄를 저질러도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그만이기에 시민의 불만이 컸는데 학교가 자체적으로 감옥을 만든 것이다. 다만 감옥에 수감된 학생들은 낮 시간에는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이후 학생들은 자신의 흔적이나 단체의 이상 등을 벽에 새기기 시작했고 감옥은 낙서투성이가 됐다. 그리고 학생감옥에 수감되는 것을 훈장처럼 여기는 학생들이 생겨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고 들어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시간이 흘러 학생감옥은 여러 사람들이 방문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본질적으로 학생감옥의 존재는 대학과 대학생을 존중하는 사회제도 속에서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작용이 있었지만 학생감옥은 대학의 자체 정화능력을 보여주는 본보기도 된다. 지금은 그 정도가 덜해졌지만 독일의 대학생은 사회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고 한다. 필자의 이론이 짧아 이것이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과 독일에서 대학의 위상은 이렇게 비교가 되는 것 같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겠지만 같이 간 학생들이 훗날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나눌 토론 내용은 조금 더 생산적이고 희망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하이델베르크 학생식당에서 저렴하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한 학식을 맛보고 하이델베르크성과 철학자의 길을 걸었다. 칸트가 하루 8번을 걸었다던 철학자의 길을 걷기 전 학생들에게 묵언을 요청하며 ‘나의 다짐’을 생각해보라고 권했다. 20여분 남짓 언덕길을 올라와 하이델베르크 야경을 보며 정리한 생각들을 얘기하는데 칸트의 영향 때문일까? 평소에 들을 수 없던 속내를 정리해서 말하는 모습이 몇 년 성숙한 듯 보였다. 여행을 통해 학생들의 주관이 뚜렷해진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다.

 

프라이부르크, 순도 100% 생태도시
원전을 거부하고 생태도시를 만든 녹색 시민의 힘

▲자동차 통행이 제한된 프라이부르크 대학주변 거리에는 지정차량만 한시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어느 날 전쟁보상을 논의하기 위해 연합국과 독일 대표단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전쟁 피해국인 프랑스는 독일에게 보상으로 프라이부르크 지역을 포함하는 흑림 벌채권을 요구했다. 그러나 독일 대표단은 흑림은 미래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자산이라며 벌채만큼은 허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 흑림은 숲의 나무가 빽빽한 나머지 까맣게 보인다는 말에서 유래한다. 당시 독일의 흑림 가치는 나무만 팔아도 나라가 100년은 먹고 살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었다. 독일은 이 편한 방법을 뒤로하고 각고의 노력을 감수하며 전쟁 보상을 했다.
그리고 1970년대 초 석유파동을 겪는 독일은 프라이부르크 인근 지역에 핵발전소(원전)건설을 추진한다. 그러자 원전은 안 될 일이라며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시민들은 원전 반대운동을 하면서 대체가능한 에너지를 이용하는 생태도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1975년 이곳의 원전 건설계획은 철회됐고 프라이부르크 시의회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탈원전을 천명했다.
원전 건설을 저지한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은 쓰레기 줄이기 대중교통 활성화 등 자체 노력과 더불어 환경과 연관된 대부분의 제도를 손봤다. 시내에는 자동차 통행금지구역이 생겼고 태양광 발전시설도 곳곳에 들어섰다. 부족한 전기는 천연가스발전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산업시설도 친환경이어야만 도입할 수 있게끔 규정을 마련했다, 현재 이곳의 에너지 자립률은 100%가 넘는다고 하니 꿈의 숫자다. 환경수도라는 명칭은 그렇게 노력해서 생겼다.

▲거리 서점에는 화면으로 볼 수 있는 무료 신문가판대가 있다. 지역신문 가독률도 높아졌으면...

프라이부르크에는 친환경유전자가 있나보다. 이곳은 사실 계획도시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옛 모습 그대로 중세시대 분위기를 냈고 원래 있던 수로도 복원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수로는 매우 중요한 존재인데 이 수로는 항상 깨끗한 물이 흘러 유럽 인구의 1/3을 앗아간 흑사병도 비껴갔다고 한다. 그리고 깨끗하기까지 하니 독일인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답다.
프라이부르크에도 오래된 대학이 있다. 600여년 역사를 가진 프라이부르크 대학은 법학과 의학 연구수준이 높아 국내 유학생들이 꽤 온다. 뮌스터대성당 앞에는 노점상이 들어서고 골목마다 미묘하게 다른 멋이 있다. 대학생이 많다보니 중세도시임에도 활기찬 분위기가 있는데 의외인 것은 이 도시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은 성당 뒤편 조용한 곳의 놀이터를 마주보고 있는 작은 가게라고 한다. 월 임대료가 700만원을 넘다보니 조금 더 번화한 곳으로 이사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순도 100%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는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에너지와 더불어 돈으로 해석할 수 없는 또 다른 가치에 대한 고민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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