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편지(7)/ 풍경에 취하고 맛에 취하는 ‘해상도시 브뤼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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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편지(7)/ 풍경에 취하고 맛에 취하는 ‘해상도시 브뤼헤’
  • 조남훈 객원기자
  • 승인 2015.03.3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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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일곱번째 편지

벨기에, 전쟁과 지역감정 심하지만 관광하기 좋아
와플과 초콜릿 … 무엇을 상상하던 기대이상의 맛

 

▲성모 대성당. 마르크트 광장은 한 겨울 잠시 스케이트장이 들어선다. 오른쪽의 바실리크 대성당 성모 마리아 예배당에는 실제 예수의 피가 있다고 한다.

독일을 떠나기 전 조수석에 탄 학생 두 명에게 내기 제안을 했다. 벨기에 숙소까지 안자고 가면 벨기에 와플을 사주겠다고 하니 미끼를 덥석 물었다. 내비게이션에 나온 거리는 630킬로미터(km)로 여행기간 이동 경로가운데 가장 길었다. 한국으로 치면 해남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가는 셈인데 이 먼 길을 잠 한숨 안자고 가는 대가가 와플 한 조각이면 싸도 너무 쌌다. 그런데도 한단다. 자신의 인내력을 시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 친구, 이겨냈다. 아우토반의 경주하듯 달리는 차들을 봤고 브뤼셀 근처의 교통체증도 견뎠다.
“들이 눈 감았네, 자냐? 푹 자고 돌아다녀야지. 까짓 것 5유로 내면 어때?”
“아 안 졸았어요. 여기까지 참은 게 억울해서라도 와플 먹어야 돼요.”
학생의 인내력 덕분에 필자는 대화를 할 수 있었고 조금은 덜 피곤한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짓궂은 장난에도 굴하지 않은 이 학생에게는 와플 대신 영국행 배에서 간단한 샌드위치와 콜라를 사줬다. 14유로, 와플보다 맛도 없는 것이 엄청 비싸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나라 벨기에는 독특한 나라다. 벨기에어가 버젓이 있는데도 제쳐두고 다른 나라 언어를 쓴다. 남부지방은 불어가 공식 언어이고 북부지방은 독어를 많이 쓴다. 벨기에 남부와 북부지방 사람들이 만난다면 아마 영어로 대화하다가 싸움이 날지도 모르겠다. 이 나라 지역갈등은 영ㆍ호남 이상으로 심해 축구경기라도 열리는 날이면 팬끼리 종종 싸움이 벌어진다고 한다.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 힘겨루기에 피해를 입은 벨기에는 전쟁 상흔도 안고 있다. 한국과 벨기에는 치유하기 힘든 역사를 안고 있으면서 내부갈등도 심한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기에는 관광하기 좋은 나라다. 필자가 갔던 브뤼헤는 사실 관광객들이 놀기 딱 좋은

▲와플. 크림, 토핑 어느 것이든 감격할 맛.와플. 크림, 토핑 어느 것이든 감격할 맛.

곳이다. 중세시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브뤼헤는 베네치아와 마찬가지로 바닷물이 시내 중심부까지 들어오는 도시다. 운하와 항구가 있어 일찍이 상업의 중심지가 된 이곳은 지금도 인파가 북적인다. 도시는 아름답고 볼거리도 많다. 마르크트 광장과 수로 주변을 걷는 동안 보게 되는 풍경은 셔터를 누르면 그대로 작품이 된다. 비어월(beer wall)에는 수 백 종류에 달하는 벨기에 맥주와 전용 잔이 전시돼있다. 마르크트 광장 외곽에는 장이 서는데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생선도 여러 종류 나온다. 골목이 워낙 많아 길을 잃어버리기 쉽지만 그런 사람들 보라고 종루가 높이 세워져 있다. 자동차와 섞인 채 신호까지 지키며 다니는 마차가 있고 물 위를 가르는 배들을 보고 있으면 즐기기 딱 좋은 도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학생들과 여행하기 전 브뤼헤에 갔을 때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거리주점에서 손을 잡아끄는 현지인과 춤을 추기도 했다.
관광도시 브뤼헤는 먹을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명물은 명물이다. 어느 것이나 기대 이상의 맛이 있었다. 와플은 그들만의 기술로 반죽을 숙성시켜 부드럽고 풍미가 좋다. 공장식 와플조차 의외로 맛있다. 토핑을 얹어 먹으면 이 또한 조화로운 맛이 일품이다. 벨기에 초콜릿이 유명해진 것은 20세기 초 벨기에가 콩고를 식민지로 둔 일이 계기다. 콩고의 카카오를 벨기에로 가져와 가공해 팔게 된 것이 벨기에 초콜릿의 시작이다. 결코 옳지 않은 일이지만 벨기에는 초콜릿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벨기에에서는 카카오버터 100%여야만 ‘초콜릿’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응용한 제품이더라도 원료로 쓰이는 초콜릿만큼은 순수 카카오여야만 한다. 브뤼헤의 유명한 홍합탕은 정작 현지인들이 즐기지 않고 관광객에 의해 입소문을 탄 것이 명물이 됐다고 한다.


▲벨기에에서 부엉이는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인솔자 한 명과 고르고 고르다 어느 식당을 들어갔다. 이것저것 고르다보니 비용이 무섭지만 이참에 제대로 맛보기로 했다. 빵이 나오고 맥주가 나왔다. 바삭하게 구운 곡물식빵에 맥주를 한 모금 결들이자 행복함이 밀려왔다. 알고 보니 그 맥주는 3년 동안 숙성돼야 세상에 나올 수 있고 맛은 국제 품평회에서 두 번이나 금메달을 수상할 정도로 인정받은 맥주였다. 쇠고기와 연어요리, 후식까지 황홀한 식사를 마친 후 치룬 비용이 90유로(11만원)니 꽤 큰 지출이었지만 여행기간 중 가장 만족한 식사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는 숙소에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족구를 하려는데 날이 어두워 차량을 잔디밭으로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한 뼘 이상 진흙에 빠진 차를 고생 끝에 빼기는 했지만 들어가고 나오며 이미 상한 잔디를 복구하는 것은 어려워보였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일부 학생과 강둑에 핀 잔디를 떼다 심었다. 펜션 여주인 사라는 개장 5년 만에 받은 첫 외국인이 우리 일행이라고 했다.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애쓴 흔적을 사라는 봤을까? 다행히 큰 불화 없이 해결하긴 했지만 앞으로 외국인 손님은 받지 않을까봐 걱정이다. 지면을 빌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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