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소죽 끓여 마흔 두 마리 소 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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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소죽 끓여 마흔 두 마리 소 키워요”
  • 선재식ㆍ김슬기 기자
  • 승인 2015.04.0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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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 맛있는 것을 안다” 팔덕 용두 임형락 씨

  

   배합사료 대신 볏짚ㆍ콩ㆍ옥수수 ‘맛있는 소밥’
   사료 값 300만원  →  80만원 … 200만원 ‘절감’

팔덕 용두마을 마흔 두 마리 소들이 살고 있는 임형락(58) 씨의 외양간. 세 사람이 둘러싸고 감싸야 할까, 큼지막한 솥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고 고소한 냄새까지 더한다. “소들도 맛있는 것, 먹고 싶은 것을 먹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으로 배합사료를 거부하고 직접 여물을 끓여 42마리의 소를 기르는 ‘소 아빠’ 임형락 씨를 만났다.
임 씨는 6개월 전부터 키우는 모든 소들에게 직접 소밥을 삶아 주고 있다. 볏짚, 미강(벼에서 왕겨를 뽑고 현미를 백미로 도정하는 공정에서 분리되는 고운 속겨), 옥수수 등을 넣고 큰 솥에 삶아 배합사료를 대신할 소밥을 만든다. 임 씨는 “우리 소들은 되새김질도 잘 하고 변의 냄새도 지독하지 않다”면서 “사료 값이 월 300만원 들어갔다. 이제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것을 실천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지난해 6월, 기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10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배합사료를 완전히 끊고 직접 끓인 소밥을 소들에게 주고 있다”고 말했다.

    “소도 먹고 싶은 것, 맛있는 것 먹어야지”
     되새김질 잘하고 살도 ‘통통’ 건강한 소

▲죽과 함께 볏짚을 섞어주는 기계.
축사 앞 처음 보는 기계들이 눈길을 끌었다. 짚을 써는 기계, 돌을 걸러내는 기계, 소밥을 삶는 커다란 솥 등 모두 임형락 씨의 머릿속에서 나온 작품들. 임 씨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0마리의 소를 키울 생각을 하고 기계를 만들었다. 내 손으로 만들 수 없으니 이런 방법으로 하면 틀림없이 된다 하고 아이디어만 내서 기계를 만드는 전문가에게 의뢰해 제품이 나왔다. 처음에 전문가한테 가서 소죽 만드는 기계를 만들 거라고 했더니 생산비도 많이 들고 안 될 거다, 그런 게 잘 됐으면 벌써 누가 했을 텐데 안 하는 걸 보면 안 되는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건 아니다, 그동안에 몇 년 동안 내 머릿속에서 수백 대의 기계를 만들어봤다. 분명히 된다’고 말했다”면서 “시설을 갖추는데 지금까지 6000만원에서 7000만원 정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과하게 투자한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축산농가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배합기만 보아도 그냥 섞어주는 기계인데도 불구하고 5000만원에 달한다. 그에 비하면 이 기계는 엄청 싼 것”이라고 말했다.
배합사료를 끊고 소밥을 직접 끓여서 먹이기까지, 모든 것이 처음이라서 걱정이 많았다. 소가 먹고 영양분이 충분한지, 부족한 영양분에 살이 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던 그는 축산과학원에 소밥의 샘플을 보내 영양성분을 의뢰했다. 축산과학원에서는 번식우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나 비육우에는 단백질 성분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결과를 보내왔다고 한다. 임 씨는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깻묵을 구해보려 했는데 여의치 않아 옥수수를 넣었다. 아직 보리가 생산되지 않아서 그렇지만 지금 8000평 정도 보리를 심어놨으니 곧 있으면 옥수수를 돈 주고 사올 필요도 없이 내가 직접 키운 보리로 소밥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혹자는 보리가 옥수수보다 비싸니까 옥수수를 주라 하는데 소의 비육단계에 있어서 뭐가 나을지는 모르지만 과거에 소죽 끓여서 소 키우고 소 팔러가기 2개월 전 쯤부터는 보리를 삶아서 줬는데 소가 막 살이 쪘던 기억이 있다. 그걸 생각하면 보리가 옥수수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사서 쓰는 게 아니고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거니까 괜찮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직접 소밥을 끓여서 소를 키우기 시작한 지 6개월. 배합사료 먹일 때와 비교해서 사료 값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임 씨는 “배합사료를 먹일 때는 월 300만원이 들었는데 지금은 전기세를 포함해서 월 80~100만원이 든다. 월 200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소밥을 끓여 주며 소를 키우는 비용은 줄었지만 일손은 더 늘었다. 소밥에 들어가는 재료마다 직접 손이 가야하고 임 씨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쉽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 씨는 “예전에 배합사료를 줄 때는 아내에게 맡기고 어디 다녀오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이 기계를 나밖에 모르는 거라서 매일 축사에 얽매여 있다.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소밥을 줄 수 없어서 집을 비우거나 여행도 못 가고 허리가 좋지 않아서 서울에 있는 아이들이 건강검진 받으러 오라고 하는데 가지도 못하고 있다”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된다고 말하기
    수백번의 생각을 현실로 옮겨 실행하기

임 씨가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 옛날식으로 여물을 삶아 소를 키우는 이유에는 그만의 확고한 생각이 있다.
“전문가들이 소에게 영양분이 잘 흡수될 수 있도록 배합사료를 만듦에도 불구하고 옛날보다 소를 사육하는 기간이 1년가량 더 늘어난 것을 보면 소가 사료를 먹어서 살 찔 수 있는 영양분이 생각보다 없을 것이

▲미강, 옥수수 등을 넣고 큰 솥에 삶아지는 죽.
다. 사료공장에서 소를 막 살찌게 하겠나.”
임 씨의 말에 따르면 소를 사육해서 파는 데 까지 보통 33개월에서 34개월이 걸리는데 옛날에 집집마다 소죽을 끓여서 키울 때는 24개월이면 무조건 팔았다는 것. 좋은 영양분이 들어있는 배합사료라면 오히려 성장속도가 빠르고 영양분을 잘 흡수해 살이 쪄서 출하기간이 더 단축되어야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 임 씨는 “이렇게 소죽을 끓여주면 적어도 5개월은 소를 키우는 기간이 단축될 것이다. 생육 개월이 5개월만 줄어도 들어가는 재료비나 인건비를 생각하면 엄청난 것”이라며 “소들의 변 색깔도 다르고 냄새도 볏짚 발효되는 시큼한 냄새만 살짝 난다. 되새김질도 잘 한다. 현재는 6개월밖에 안됐기 때문에 100% 증명하지 못하지만 지금 6개월 된 송아지가 2년이 될 때 증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 수소도 다른 소들과 똑같이 주고 있는데 실제적으로 비육이 안 된다고 보면 저 소가 엄청 말라야 하는데 번식우와 똑같이 줘도 살이 쪄가고 있다. 저번에 영양성분 의뢰했을 때 비육하는데 조금 부족할지 모른다고 했지만 크게 문제가 없다고 본다. 저 소가 살이 안 빠진 것을 보면 부족하지 않다고 본다”면서 “배합사료 없이 소죽을 끓여서 5개월 먹인 소 두 마리를 팔았는데 한 마리는 1등급, 한 마리는 원플러스가 나왔다”고 말했다.
올해로 소를 키운 지 6년이 된 임형락 씨는 앞으로도 꾸준히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소죽을 끓여서 소를 키울 생각이다. 임 씨는 “배합사료는 99% 아니 100% 외국에서 원료곡을 사다가 소에 맞는 영양 성분을 첨가, 가공해서 만든다. 그러나 외국 농산물에 의존하지 않아야 축산농가가 산다. 외국에서 곡물 값을 올리면 사료 값은 오르고 그렇다고 소 값을 무작정 올릴 수 없으니 축산 농가는 망하는 것”이라며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고, 밀식으로 키우면서 구제역도 생겼다. 소들이 먹고 싶은 것을 먹게 해야 한다. 겨울에 노는 땅을 이용해 곡물을 키워 소에게 주는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외국 농산물에 의존하지 않고 과거에 해왔던 방식으로 가는 것이 축산업이 사는 길”이라고 말했다.
소처럼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농부, 임형락 씨. 나날이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남다른 도전정신으로 앞으로도 용두마을 ‘소 아빠’로서 건강한 소를 키워낼 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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