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편지(8)/영국에 갈 때는 ‘부처의 마음가짐’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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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편지(8)/영국에 갈 때는 ‘부처의 마음가짐’ 가져야
  • 조남훈 객원기자
  • 승인 2015.04.07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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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보낸 마지막 편지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런던에서 구장투어를 간다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곳이다. 운이 좋다면 외질, 지루, 월콧 등 세계 정상급의 선수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운전 방향 다르고 콧대는 높아 … 마약 권유까지
런던서 길 잃고 국제미아 될뻔 … 배멀미로 고생

 

인솔자, 특히 운전자에게는 꽤나 가기 싫은 곳이랬다. 우선 항구에 내리자마자 좌측통행이니 내게 익숙한 모든 운전방향은 틀렸다고 생각하고 그 반대로 해야 한다. 산업혁명 좀 먼저 이뤘다고, 기회의 땅을 찾아 미국을 일궜다고 형님 행세를 하는 그 드높은 콧대가 꼴 보기 싫었더랬다. 유럽공동체를 표방하는 핵심인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않고 자국 통화를 고집하는 모습부터 시내의 악랄한 정체까지… 영국은, 런던은 그런 곳이라고 들었다.
이거 묘하게 설득력 있다. 우 핸들 차량 채택국가, 즉 주행방향이 왼쪽이니 운전할 때 고려해야 할 게 여러 가지였다. 교차로도 왼쪽으로 돌아야 하고 우회전 할 때는 바깥으로 돌아야 한다. 고속도로에 진입할 때는 오른쪽 차선을 유심히 봐야 한다. 통행료를 낼 때는 조수석에서 내야 하니 똑똑한 동승자가 타야 한다. 물가는 엄청 비싸다. 유로는 다른 나라에서 쓰기라도 하지 파운드는 영국이 아니면 벙어리 돈이 된다. 콧대는 내가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 쯤 되면 거부감이 들 만 하겠다. 하지만 어쩌랴. 학생들에게 런던은 파리에 버금가는 필수 여행도시이니 가야 한다.
벨기에 숙소에서 낸 사고를 수습하려고 둑에서 캐온 잔디를 심다가 출발이 늦었다. 배편을 맞추기 위해 속도를 냈다. 칼레항에 도착해 입국수속까지는 잘 마쳤다. 사건은 그 다음 일어났다.
차량을 한 쪽에 정차하고 다른 인솔자가 예약한 배표를 받으러 창구에 간 그 때다. 영국인으로 보이는 어

◀트라팔가 광장 -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한 영국의 넬슨제독을 기념하기 위해 넬슨 동상이 세워져있다. 

느 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차를 철조망 바깥으로 빼야 한단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철조망을 경계로 영국령과 프랑스령이 나뉜다는 것을… 안내에 따라 필자와 다른 인솔자가 4대의 차량을 철조망 너머로 이동했는데 배표를 가지고 온 인솔자가 주저앉았다. 다시 들어가고자 철문 근처를 서성이자 문이 열렸다. 닫히기 전에 차를 얼른 이동하니 아까의 그 직원이 다시 나와 도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Get out!(나가!).” 통 성명을 해도 듣지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입국심사대에 다시 온 우리들을 직원들은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결국 배편은 놓쳤고 다음 배를 타고 들어갔다. 홧김에 질렀다. “얘들아 경험해서 알지? 영국 가서 돈 쓸 생각 하지 마라. 저렇게 콧대 세우는 애들한테 우리가 쓸 돈은 없어.” 그리고 나는 현지에서 그 좋아하는 커피도 한 잔 사먹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 갈 때 썼던 지하철비 8파운드가 너무나 아까웠다.
‘지금까지 운전한 거랑 반대…’를 끊임없이 상기하며 런던의 교통지옥을 뚫고 마침내 숙소에 도착하니 해가 넘어간 지 한참이 지났다. 짐 정리를 끝내고 다른 인솔자와 얘기하러 숙소 밖에 나온 그 때, 길 건너에서 한 청년이 다가왔다. “마리화나? 마리화나?” 대마초를 사겠냐는 의미였다. 강하게 거절하니 곧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숙소는 런던 외곽에 있고 아파트가 많이 있지만 치안이 불안한 듯 연신 사이렌 소리가 났다. 이쯤 되면 영국이란 나라에 정 붙이기는 이미 틀렸다. 어차피 알아듣는 사람도 없으니 한국어로 신나게 엘리자베스 욕을 해댔다.
자연사박물관과 영국박물관을 둘러보는 영국 이틀째 날에도 사건은 어김없이 생겼다. 자연사박물관까지는 좋았지만 영국박물관을 가는 길에는 내비게이션이 말썽이었다. 기계가 먹통이 돼 버린 데다 신호에 걸려 일행까지 놓치니 말 그대로 국제미아가 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 전화에 있는 구글 지도를 켰다. 다행히 일방통행까지 표시가 된다. 20분이면 갈 거리를 두 시간 이상 허비했고 도착해서 학생들을 내려주고 나니 설움이 밀려왔다. ‘영국이 대체 뭔데 내가 여기서 이 고생을 해야 하지?’
3일째 되던 날에는 자유시간이 있어 인솔자에게도 꽤 많은 개인시간이 주어졌지만 나는 솔직히 이 시간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싶지 않았다. 트라팔가 광장과 런던 최대 번화가인 레스터 스퀘어, 피카델리 서커스를 배회하다 시간이 되면 저녁을 먹을 요령이었다. 그렇게 골목을 샅샅이 누볐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외질(독일축구선수) 경기복(유니폼)을 사야 하는데 가는 길을 모른다는 한 학생의 얘기를 듣고 아스날 구장으로 향했다. 시내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아스날의 구장,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보는 순간

▲영국박물관 약탈물. 영국박물관 전시품의 90% 이상이 약탈물이다. 약탈물을 보고자 런던 시내에서 우왕좌왕했던 경험은 다시 하고 싶지 않다.

펼쳐진 웅장한 광경이 인상적이다. 방송으로나 보던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이곳에서 뛴다고 생각하니 흥분도 됐다. 그런데 또! 이번에는 매장 직원들이 우리를 호구로 봤는지 약을 판다. 잘 팔리지 않는 원정 경기복을 추천하면서 “컵 대회에서 우승할 땐 노란 원정 경기복을 입는다”고 말했다. 원정 경기에서 우승컵 들어 올린 걸 숨기는 게 교묘함이고 상술이면 우리는 속지 않는다. 노란 원정 경기복을 들고 가다가 다시 빨간색으로 바꿔 계산했다. 직원의 표정이 흐뭇함에서 불쾌함으로 변한 것을 필자는 봤다.
영국여행의 백미는 돌아오는 길이었다. 런던에서 도버항으로 이동하는 길은 차량이 매우 많았다. 풍랑이 심해 배가 제때 도착하지 않아 도로는 화물차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 시간에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화물차가 2차선에서 멈춰있을지언정 1차선으로는 절대 진입하지 않았다. 번호판 국적은 달라도 1차선은 승용차의 차선이라는 인식이 확고한 듯 무려 10킬로미터(km)이상 먼 거리를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칼레항까지 두 시간 남짓한 그 시간은 필자에게 악몽이었다. 4만5000톤짜리 그 큰 배도 성난 파도 앞에 태연하기는 어려웠나보다. 배 멀미란 것이 이래서 힘들다는 것을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됐다. 쓰고 나니 영국이란 나라에서 배우고 느낀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배운 것 또 하나, 런던은 말한다. 로망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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