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편지(9)/ 유럽은 사람이 귀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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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편지(9)/ 유럽은 사람이 귀하다 (끝)
  • 조남훈 객원기자
  • 승인 2015.04.1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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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훈 여행기 - 에필로그

 

▲오랜 비행에 힘들었을 것이고 곧 부모님을 만날 생각에 설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보고싶을 것이다. 스물 여섯명, 청소년의 꿈은 더 많아지고 확실해졌다.

역사와 제도 속에서 사람의 가치 발견
식량ㆍ학문적 토대가 선진국 전제조건 
스스로 찾아 나서는 여행이 진짜 여행

 

프랑스, 그리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있었던 일련의 역사들을 마주하며 민중주권을 배웠고 시민들의 자아가 발현된 제도의 인문학적 토대를 접했다. 흔적을 찾아가면서 우리가 남길 흔적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지배의 흔적은 크고 화려하지만 생활의 흔적은 담백하고 재치가 있다. 그리고 노력의 흔적, 전쟁의 흔적에서는 각각 다른, 아픔과 슬픔이 보였다.
종교와 인종 차별의 흔적도 발견했고 의지와 상관없이 테러의 간접 피해자도 됐다. 이른바 유럽에서도 선진국이라 일컫는 복지국가의 복지재원은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복지제도 속에는 식민지와 약탈에 기반을 두어 만들어진 비윤리적 모순이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교훈도 얻었다. 화폐통일(유로-EURO)을 앞세우고 유럽 공동체를 표방하며 나온 유럽연합(EU)의 정치ㆍ경제적 목적은 프랑스, 독일 등 입김 센 나라의 의도를 철저히 반영한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의 경제위기는 놀기 좋아하는 국민성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적어도 유럽연합 국가들의 경제적 불균형은 유로 출범 이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기업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주민들이 인종차별적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은 한국이나 프랑스나 마찬가지다. 자본의 지원을 등에 업고 우향우를 외치는 모습 역시 비슷하다. 이런 점들을 비판적으로 보지 않으면 유럽의 강대국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선진국으로만 보일 것이고, 우리 사정에 맞는 복지제도에 반영할 수도 없다는 것이 짧은 시각이지만 필자가 내린 결론이다.
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꽤 오랜 시간동안 복지국가며 선진국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자국민이 먹을 식량 그 이상을 확보하고 있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복지제도와 문화가 있다. 인문학에 대한 갈망이 있고 사상 혹은, 입장의 다름을 인정하는 시민성에서도 그 이유를 찾는다. 함께 다닌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이런 점들을 고민할 여지가 생겼다는 점에서 이번 여행은 충분히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공의 이익은 개인의 불편을 전제로 한다는 인식은 통하지 않는다. 숨겨진 가치를 인정하고 끌어내는 것에서 복지국가는 시작한다.

학생들과 같이 한 여행 첫날 묵었던 파리동부캠핑장을 떠난 지 20일 만에 다시 왔다. 이미 한 번 와봤다고 샤워장 등 시설이며 풍경이며 모든 것이 익숙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등교하는 학생들도 보고 빵집도 다녀왔다. 테러 때문에 못 갔던 노트르담 성당에 학생들을 내려주고 기념이 될 만한 선물을 샀다. 한국에서 3000원이면 충분한 작은 수첩도 한 권에 만원이 넘는다. 비싼 파리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학용품 가격은 입이 벌어질 만큼 세다.
학생들이 갔던 마지막 방문지는 페헤라쉐즈 묘역과 바스티유 광장, 레옹블룸 광장이었다. 다른 인솔자가 야심차게 해설을 준비했지만 얄궂게도 비 섞인 함박눈이 쏟아져 재빨리 둘러보고 와야 했다. 프랑스 혁명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는 이 일정은 피엠(PM)코스라 하여 우리 여행의 목적과 해설이 집약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곳을 곧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불어를 조금이라도 배워갔으면 그만큼 현지인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행지에 대한 학습을 많이 했더라면 학생들에게 더 유익한 예기들을 들려줄 수 있었으리라. 교통정보를 숙지했더라면 조금이나마 덜 피곤한 여행길이 됐을 것이다. 이 모든 교훈들을 ‘다음에는’이란 말로 넘기기에는 그 기회가 흔치 않아 아쉬움이 더했다.
공항에 도착해 마지막으로 주차를 하고 짐을 빼고 문을 닫는 순간 마음이 짠해졌다. 5000킬로미터(km) 이상 장거리를 여행하는 동안 한 번도 고장 없이 안전하게 몸을 맡길 수 있었던 차에 대한 고마움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무사히 학생들을 공항까지 데리고 온 필자 스스로에 대한 칭찬이기도 했다.
표를 끊고 출국과 탑승수속을 밟는 순간까지도 무덤덤했던 감정은 여객기가 이륙할 때 갑자기 북받쳐 올랐다. 이때까지 느낀 것과는 또 다른 벅찬 감동… 그것은 아쉬움보다도 무언가 삶의 소중한 부분을 채웠다는 뿌듯함에서 나오는 감동이었다. 도착할 때, 떠날 때 보는 야경이야 비슷하다만, 예상과 다르게 이륙하는 순간 멀어지는 파리의 야경은 아쉽지 않았다. 체력이 닿는 한 작정한 만큼 많이 다녔고 더 많은 모습, 더 많은 흔적을 보려고 노력했기에 아쉬움보다 뿌듯함이 훨씬 컸다.
김포공항에서 학생들이 부모님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필자의 인솔 역할은 끝났다. 먹는 것 자는 것 다니는 것 모두 부족함이 있었지만 이것도 여행의 일부겠다. 학생들 가운데 누군가는 앞으로 유럽에 갈 때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여행일정과 방문지를 짜고 움직일 것이다. 누군가는 대학에 진학할 때 배우고 싶은 교수를 따라 갈 것이며 물질보다 정신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바라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모두는 잠깐이나마 부모님 품을 떠나 있던 그 때를 추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인솔자 다섯 명이 함께 유럽 전역을 누비는 그 날을 상상해본다. 평생 간직하고 싶은 추억 한 자락을 <열린순창> 지면을 빌어 활자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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