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산과 물 좋은 데서 나는 것 먹어야 사람도 착해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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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산과 물 좋은 데서 나는 것 먹어야 사람도 착해지제”
  • 배명재 기자
  • 승인 2015.04.28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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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전남 장성군 장성읍 버스터미널에서 내린 외지인들이 할머니장터에 들러 각종 푸성귀를 사고 있다. | 장성군 제공

친환경 ‘장성 할머니장터’
취나물ㆍ두릅에 엄나무 등
직접 캐거나 재배한 먹거리
250여가지 저렴하게 판매
매월 9차례 장날 성시 이뤄

 

취나물·두릅·쑥·미나리·아욱·돌나물…. 산자락과 들판에 깔린 향긋한 봄내음이 읍내 아스팔트 거리로 옮겨왔다. 23일 오전 전남 장성읍 영천리 장성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자리한 ‘장성 할머니장터’. 이날도 어김없이 할머니 19명이 좌판을 펼쳤다. 쌀·보리·옥수수·메주·참기름·매실농축액·어성초·자소엽·엄나무·울금 등 250여가지 농산물과 임산물이 손님을 기다렸다.
할머니들이 직접 캐거나 재배한 먹거리다. 농약은 일절 치지 않고 화학비료도 뿌리지 않았단다.
장터라면 으레 이런 ‘친환경 먹을거리’를 앞세워 물건을 파는 것이 상술이다. 하지만 이곳 장사꾼들의 손님맞이는 특이했다. 30대 주부 2명이 박중효 할머니(82·진원면 학전마을) 앞에서 두릅과 미나리 값을 물어봤다. 박 할머니는 흥정보다는 다소 엉뚱한 대꾸를 하며 손님을 붙들었다.
“이렇게 깨끗한 채소, 음식을 먹어야 하는 거여. 옛날 우리 장성엔 선비가 많았어. 전남에서 과거시험 합격자도 가장 많이 나왔다는 거 알고 있는가? 이거 나물 무쳐 아이들에게 먹여봐. 금방 좋아져.”
옆에 있던 양윤순 할머니(75·황룡면 교동마을)도 거들었다. “우리 바로 옆동네에서 정승(김황식 전 총리)이 났어. 다 이런 신선한 푸성귀 먹고 공부해서 그런거랑께. 산 좋고, 물 맑은 데서 나는 것을 먹어야 건강하고 사람도 착해져.”
두 할머니들의 입담에 손님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두릅과 미나리를 녹색 비닐봉지에 가득 담았는데도 값은 1만원. 박 할머니는 지난해 가을 말린 고구마순 한 주먹을 더 넣어줬다.
장성 할머니 장터는 장성군이 ‘어르신 일터마련 사업’으로 지난해 3월부터 매월 9차례 열어오고 있다. 날짜가 0·3·5·8로 끝나는 날이 장날이다.
장사에 나선 할머니는 읍·면별로 2~3명이 추천됐다. 농산물을 머리에 이고, 들고 올 수 있을 만큼 건강해야 하고, 친환경농사를 짓겠다는 다짐도 해야 한다. 이렇게 뽑힌 할머니는 매달 수당 20만원을 받는다. 하루 빠지는 데 1만8000원씩이 깎인다. 노란색 점퍼를 유니폼으로 입는 할머니들은 “매달 ‘월급’을 받으니 우리도 공무원”이라며 활짝 웃었다.
한때 수당지급을 놓고 선거법 위반 시비가 있었다. 그러나 ‘친환경 농산물 판매’로 지역 이미지를 높이는 행위도 ‘공공근로’로 볼 수 있어 보상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남순 할머니(71·북하면 월성마을)는 “한 짐을 지고 와도 몽땅 드리니까 하루벌이는 2만~4만원 정도 된다”면서 “산골에서 사람 구경하러 나오는 기쁨이 크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5년 4월 24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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