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림씨 두문제 임선미 ‘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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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림씨 두문제 임선미 ‘제향’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5.05.13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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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동 72현 … 임선미는 누구?

 

순창임씨 시조(始祖) 순창군(淳昌君) 임중연(林仲沇)의 아들 고려 충신, 선미(先味)의 후손들이 인계면 호계마을에 있는 호계사에 모여 제향을 올렸다.
음력 3월 17일인 지난 5일 오전, 군내에 거주해 온 장자(長子) 용배(用培)의 후손들은 전남 화순에서 온 용배의 장자 치지(致之)의 후손과 유등에 거주하는 삼남(三男) 용계(用烓)의 후손들을 반갑게 맞았다.
이날 제향의 초헌관은 남주(팔덕 장안 출신, 경기 안산) 종친이, 아헌관은 호환(전남 화순), 종헌관은 예민(순창읍 남계ㆍ전 군의원)이 맡고, 집례는 홍주(화순 거주), 축은 락용(순창읍 가남), 봉향은 남수(풍산 삼촌), 봉로는 장호(순창읍가남), 봉작은 재휴(전남 화순), 존작은 태호(전남 화순), 사존은 택주(전주 완산), 찬자는 래열 종친이 맡았다.
이날 참석한 50여명 종인들을 엄숙하고 숭고한 마음 자세로 선조에 대한 제례에 정성을 다했다.
임래열 회장(순창임씨순창종회)은 “조선을 부정하고 목숨까지 내던진 선조들의 충절이 후손들을 어렵게 했지만 그 숭고한 정신을 잇도록 종친들이 더욱 단결하고 종중 일에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향을 마친 종인들은 자리를 옮겨 종친들의 안부와 종친회 운영 및 활동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두문동 72현 … 임선미는 누구?>

고려 충신 임선미
임선미 (林先味ㆍ1362~1394)는 자는 양대(養大)요 호는 두문제(杜門齊) 또는 휴암(休庵)이다.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며 충숙왕 5년 정축(丁丑)생이다. 묘(墓)는 두문동(杜門洞) 후록증봉하(后麓甑峯下)에 있다.

고려 순창백 좌정승(淳昌佰左政丞) 연(演)의 손자이고, 추성양절공신(推誠亮節功臣) 찬성사(贊成事) 순창군(淳昌宭)인 중연(仲沇)의 아들이다.
그는 타고난 기질이 높고 굳세고 숭고한 절의와 겸손한 덕성을 지녀 자기 자신의 수양뿐 아니라 타인 존중과 경애사상이 투철했다고 한다. 그는 성석린(成石璘), 박상충(朴尙衷), 홍중선(洪中善)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닦았으며, 태학사(太學士)로서 삼년상(三年喪)을 권장하는 등 퇴폐한 예법과 세속을 바로잡는 데 힘썼다고 전해진다. 고려말 풍속이 투박하여 사람들이 백일 탈상하는 풍습을 보고 포은(圃隱) 정몽주, 반남(潘南) 박상충 등과 함께 3년상(三年喪)을 권장하는 등 퇴폐한 세속을 바로잡았다.

 

두문동 72현…두문동 3절

그는 간성왕(杆城王) 4년, 혁명세력에 의해 고려가 망하자 태학생인 조의생(曺義生) 등 71명과 함께 부조현(不朝峴)을 넘어 은거했다. 훗날 그들이 은거한 곳을 두문동(杜門洞)이라 하여 충절을 기렸다. 두문동은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에 있던 옛 지명이다.
72명의 고려 신하들은 그곳에서 마을의 동쪽과 서쪽에 문을 세우고 빗장을 걸어놓았다. 그래서 두문동의 두(杜)는 막을두(杜) 이며, 두문(杜門)은 ‘문을 막아놓았다’는 의미다. 문을 스스로 막고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에서 유래되었다. 두문불출(杜門不出)과 같은 말이다.
그들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뜻을 확실하게 내비치며 스스로 유민(遊民)임을 자처하고 일민(逸民)이 될 것을 다짐하며 고려의 신하가 된 자는 마땅히 목숨을 다하는 것이 바른 군신의 대의라 하고 신하가 마땅히 천리를 쫓아 충성을 다하여야 한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이성계(李成桂)는 그들을 불러내려고 부조현이 건너다보이는 경덕궁에서 과거를 열고 그들의 잘못을 사면해서 거두어 등용하겠다는 뜻을 보였으나 두문동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화가 난 이성계는 두문동에 불을 놓았고, 그 불길에 물러설 줄 알았으나 물러서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임선미, 조의생 그리고 맹성인(孟姓人)이다. 그들이 무너진 고려와 운명을 함께한 두문동 삼절(三節)이다. 그때 임선미의 나이는 33세였다. 급작스런 죽음 때문에 그가 쓴 글도 그에 관한 기록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의 행적이라곤 태학생 신분으로 두문동에 든 것과 아버지 3년 시묘를 행했던 것만 전해졌다고 한다.
조선 영조 16년(1751년) 9월, 영조가 송도(松都)를 지나면서 지난 옛일을 물으니 부조현(不朝峴)이라고 하니 이곳에 ‘고려충신부조현’ 일곱 글자를 새겨 고개에 세우라 했다. 그해 10월 21일 두문동 72현을 기리는 첫 제사를 지낼 때 낭독했던 사제문(賜祭文)에 “오직 임씨(林氏), 조씨(曺氏), 맹씨(孟氏) 성을 가진 세 사람만 전하고, 나머지는 찾아볼 기록이 없네”라고 했는데 이때 임씨가 임선미다.
또한 영조 27년(1751년) 두문동에 어필로 쓴 비를 세우고 개성유수 서종급(徐宗扱)을 파견하여 충신의 혼령에 제사를 지내게 하니 그 제문은 두문동 유적기(杜門洞遺蹟記)에 있다. 그후 정조7년(1783년)에는 왕명으로 개성의 성균관에 표절사(表節祠)를 세워 배향하게 하였다. 1934년 후손 임하영(林河永)이 중심이 되어 두문동 서원을 건립하여 치제하고 전남 장성 경현사(景賢祠)에 배향하였다.

 

순창임씨 시조 임중연의 아들

임선미는 순창임씨의 시조인 임중연(林仲沇)의 아들이다.
인계면 호계마을에는 임선미를 기리는 사당 호계사(虎溪祠)가 있었다. 호계마을은 마을의 형상이 날개를 펴고 있는 매와 같아 응동(鷹洞)이라 불렀다. 예전에는 이 마을의 절반 이상이 그의 후손들이었다. 호계사가 이 마을에 세워진 것은 1943년이다. 장성 만수산에 있던 경현사가 1942년 일제에 의해 철폐되면서 거기에 있던 임선미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그때만 해도 임선미의 후손들은 개성의 두문동에 있는 표절사와 두문동 서원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지금은 순창 호계사와 1960년에 세워진 전남 화순 송월사(松月祠)에 위폐를 배향하고 제사를 모시고 있으며 경기도 파주에 있는 고려통일대전(高麗統一大殿)에도 위폐를 봉안하였다.

임선미는 슬하에 용배(用培) 용달(用達) 용계(用烓) 3형제을 두었다. 첫째 용배(用培)와 셋째 용계(用桂)는 순창으로 내려왔고, 둘째 용달(用達)은 개성에 남았다. 두 아들이 순창으로 내려온 것은 할아버지 임중연이 원나라에 체류하면서 고려 충숙왕을 보필한 공로로 순창군(淳昌君)에 봉군된 인연 때문이다. 임중연은 순창읍 장덕리에 허리가 잘록한 ‘벌’ 명당에 묻혔다. 임선미가 3년 동안 시묘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임선미의 아들 용배와 용계의 무덤은 할아버지 순창군을 모시듯 그 밑에 있었다. 훗날 용배의 장손 치지(致之)는 화순 오씨(吳氏)와 혼인하여 화순에 새거지를 이뤘다. 훗날 치지의 자손들은 할아버지 용배의 무덤을 화순 송월사로 옮겨갔다. 용배는 정몽주의 아들 정종성과 함께 구효(九孝)중 한분으로 찬양하고 있다. 용계의 후손들도 충남 홍성으로 옮겨가 살면서 용계의 무덤도 홍성으로 옮겨갔다. 둘째 용달은 송도에서 모진 세파를 극복하고 선영을 돌보면서 은거하여 새거지를 이뤘다.

 

조선을 부정한 순창임씨의 ‘영욕’

순창임씨(淳昌林氏)의 시조 임중연(林仲沇)은 임연(林演)의 아들이다. 임중연은 충숙왕 때 우상시, 밀직부사, 첨의찬성사가 되어 순창군(淳昌君)에 봉해졌다. 그는 왕을 대신하여 동정성(東征省)을 다스리기도 했다. 그 뒤 후손들이 당초 평택임씨에서 분관하여 순창을 본관으로 삼았다. 따라서 순창임씨는 평택임씨에서 갈라진 성씨다. 
임선미의 후손들은 순창군 임중연을 파시조로 삼아 독자적으로 순창임씨를 만들었다. 그러나 임선미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그들에게 매우 불리했다. 그래서 원래 시조에 맞춰 평택 본관을 쓰면서 살아야 했다.
최근까지도 평택임씨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순창임씨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그러나 실제로 되돌아갈 수 있는 임선미의 후손은 그리 많지 않다. 순창, 화순, 홍성에서 본향을지키는 종친을 포함해 전국에 1000여 가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조선을 부정하고, 목숨까지 내던진 선조 때문에 순창임씨 후손들은 간신히 명맥을 잇고 살아왔다. 순창에 사는 후손들도 크게 출세한 사람이 없다. 벼슬이라고 해야 겨우 순창 관아의 아전을 지내는 정도에 그쳤다.
순창임씨는 조선시대에 모두 14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문과 2명, 사마시 12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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