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77)/ 속은 쬐까 아프겄지만 살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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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77)/ 속은 쬐까 아프겄지만 살아지겠죠.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5.11.11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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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77


-이정록

기사 양반,
이걸 어쩐댜?
정거장에 짐 보따릴 놓구 탔네.

걱정 마유. 보기엔 노각 같아도
이 버스가 후진 전문이유.
담부턴 지발. 짐부터 실으셔유.

그러니께 나부터 타는 겨.
나만 한 짐짝이
어디 또 있간디?

그나저나,
의자를 몽땅
경로석으로 바꿔야것슈.

영구차 끌듯이
고분고분하게 몰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고분이니께.

 

시상 살아가는 재미가 워쩌신가요. 하루하루가 기냥기냥 황홀하고 살맛나던 시절도 있었제라잉! 고구마를 캐기만 해도 입이 헤벌쩍 벌어지고 들깨를 텀서도 고 향기에 노랫가락이 절로 나오던 서울떽 젊은 날도 있었제요. 아시제라, 고때 고 시절 지가 월매나 빛났었을는지라잉!
콤바인을 타고 그 심든 나락일 훑어 대고 어깨에 짊어지고 밤중까지 나를 때도 하룻밤만 자고나면 개운하게 피로가 풀리던 쌔고 쌨던 젊은 날들이 있었당께요. 건조기에 나락 넣고 허리 아픔시롱도 밤새워 보채던 아그들 곁에 끼고 젖 맥이며 무장무장 잠속으로 빠져들던 그때가 서울떽의 황금 나날이었나봐요.
워째선지 시방은 잠도 잘 깨가지고 선듯선듯한 잠만 자게 되고 피로도 안 풀리고 내가 일을 하는 건지 일이 나를 데꼬 끌고 쏘다니는 건지 모르겠어라. 하이고메 장류 축제랑 이번 주랑은 내내 해설이 연타로 잡혀있었제요. 일주일에 한 네 번 정도를 하는디 강천산 길이 월매나 막히는 지는 말 안 해도 다 아실꺼고. 세 군데의 관광지를 돔시롱 이야그 하고 나면 맥이 확 풀려불고 새벽에는 쥐도 난다니까요. 시방 일요일 날도 강천산과 장류 민속마을과 향가까지의 일정을 마치고 커피숍에 앉아서 버스가 오기 전까지의 짬을 내서 잠깐 글을 쓰구만요.
요렇게만 쓰면 서울떽의 오지게 사는 이야그가 아니제라. 힘든 일도 있지만 하루하루 다르게 변해 가는 강천산 애기 단풍들은 겁나게 이삐구만요. 어제 빗속에서 보던 단풍잎과 오늘 보는 단풍은 태가 다르고 섹시함이 다르고 미모가 다르구만요. 어제는 내리지 않던 천우폭포의 물줄기가 시원하고 간헐폭포가 오랜만에 물줄기를 날리는 것도 허벌나게 멋지당께요. 지가 순창군 관광 해설사가 아니었더라면 워찌 이런 차이를 감상 할 수 있겠어요. 거기에다가 쬐까 거시기허지만 지꺼 시도 떡 허니 전시되어 있던디 시상에나 만상에나 누군가 제 시화 위에다가 단풍잎도 하나 이삐게 붙여 주셨더라구요. 아까 관광객들과 내려오다가 봤는디 황홀하더라구요. 요런 맴 모르시겄쥬. 혹여 누구신가는 고것도 시라고 썼냐고 타박 주실지 모르지만 서울떽 깜냥이 아직 요것 밖에 안 된 게 내년에는 조금 더 마음 깊은 곳에서 샘물 품어올려서 깊은 시 한번 써 보야제라. 믿고 기둘리씨요.
지난주에는 우리 인계 세룡엄니들과 책꺼리 발표회도 했구만요. 7개월 넘게 30권도 넘는 그림책 읽으며 옛날 이야그도 하고 윷놀이랑 진달래 화전도 부쳐 먹고 무지개 물고기도 그려보고 재미지게 볼링놀이도 하고 요리도 하고 오메! 진짜루 한 게 많았네요. 전주로 마당극 보러 가서 밤 11에도 들어오고 구절초 축제로 소풍도 갔다오고. 흐흐흐.
그래서 엄니들과 재미지게 우리 엄니들이 쓴 편지도 읽고 「똥자루 굴러간다」라는 책도 읽어주는 할머니까징 하기로 했제라. 강사들이 단풍잎 같은 빨간 티셔츠도 사서 미모와 몸매도 통일하고 사랑하는 서방님께 쓰신 편지, 아들딸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전하시는 편지, 모른당께로 시작되는 시까정 풍성했어라. 고마우신 분들이 비디오도 찍어주고 사진도 찍어주시고 박수도 쳐주셔서 우리 강사들이 엄니들 몰래 신나는 공연도 급히 준비했어요.  황호숙의 황, 김원옥의 금, 박인순의 박, 이영화의 지. 고래서 일명 황금박쥐 팀이 노래했지라 잉! “순창읍을 지나 인계면을 지나 세룡 마을 향해서라면 엄니들이 부르면 달려 갈 거야. 무조건 달려 갈 거야. 짜짜라 짜라짜라 짠짠짠” 긴장했던 엄니들 피식피식 웃음 새어 나왔답니다. 분위기 확 하늘로 올라갔다고 최고의 공연이었다고 우리 네 자매는 자부하고 있제라.
토요일 날은 결혼 기념 25주년이었구만요. 버얼써 라는 말이 나오는 세월 동안 겁나게 달려왔네요. 해설 끝내고 아이들이랑 우리의 신혼 여행지였던 여수로 달려가서 여수 밤바다와 야경 구경하고 왔지요. 힘들 때면 돌산대교와 향일암으로 튀어와서 휴식을 취해서 그런지 깃든 추억도 엄청난디, 자꼬 나이가 들수록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자꾸 반문하게 되구만요. 단풍잎 물들 듯이 시방 버려야 할 것과 잡고 있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사이에서 눈물이 자꾸 고이네요.
11월에는 지가 꽉 잡고 있는 것들을 버리는 작업을 하면서 속이 쬐까 아프겄지만 살아지겠죠. 이녁들은 속 아프지 말고 기냥 하루하루가 황홀하고 찬란하고 웃음이 넘치는 나날이 되었으면 참말로 좋겄어라. 거짓부렁 한나도 안보태고 진심으로 허는 소리여라.
황호숙 황홀한 농사꾼(구림 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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