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황량한 가을, 농민 값이 똥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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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황량한 가을, 농민 값이 똥값이다
  • 김효진 사무국장
  • 승인 2015.11.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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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순창군농민회 사무국장

가을걷이를 마친 농민들은 턱없이 폭락한 나락 값 때문에 요즘 심사가 불편하다. 예년에는 나락 값이 약간 떨어져도 수확량이나 변동 직불금에 기대는 농민도 있었지만, 올해는 낙폭이 워낙 크다보니 그저 한숨뿐이다. 현재 순창시세는 4만3000원(조곡 40kg)선이다. 대체 어느 정도 떨어졌다는 건가. 올해 나락 값은 대북지원이 중단된 이명박 정부 초기(5~6년 전)와 비슷하고 멀게는 30년 전과 비슷한 가격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순창에서 첫해 농사를 짓던 14년전(2001년) 추곡수매 1등가가 6만440원인 건 명확하다.
부모 세대가 받던 월급을 오늘날 자녀가 같은 액수로 받는다면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풍년으로 인한 생산과잉과 소비감소가 쌀값 폭락의 주원인으로 진단한다. 풍년인 것도 사실이고 소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진단대로라면 일시에 국민들 입맛을 바꿔 소비 촉진을 현실화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면, 안정적인 쌀값 유지를 위해서는 매년 흉년이 지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없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쌀값 폭락의 주범은 수입쌀이다. 1994년과 2004년, 두 번의 관세화 유예조치를 통해 꾸준히 저율관세로 의무도입물량이 증가해왔는데, 현재는 작년에 이어 최대치 40만톤 가량이 수입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차관형태로 보내던 쌀 지원을 중단한 이후, 2009년과 2010년에 최대의 쌀값 폭락이 이어졌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남북관계가 계속 경색되면서 해마다 재고로 쌓인 수입쌀이 국내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언 발에 오줌누기식이라 기대할 바가 없다. 정부 정책은 ‘자가당착’식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9월, 관세화를 통한 쌀시장 전면개방을 선언하면서 정부는, “밥쌀용 쌀은 수입하지 않을 것이며 관세 513% 유지를 통해 국내쌀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지 않아 한국농축수산물유통공사(aT)를 통해 밥쌀용 쌀을 국가 세금으로 들여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업계에 닥칠 피해는 물론이고 제조업에도 타격이 예상돼 대기업까지 반대해왔던, 사실상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이라 할 수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위해 조공을 바치듯 굴욕적인 행세하고 있다. 이 협정에 가입하게 되면 정부가 호언했던 쌀 관세 513% 약속은 아무런 효력을 기대할 수도 없게 된다. 결국 관세장벽마저 무너져 쌀산 업 기반 붕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의 대책에 기댈 바가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최근 발표한 20만 톤 추가매입은 그 양이 쌀시장 시세를 정상적으로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고, 쌀 재고 과잉에 따른 내년 부담을 해소할 대책이 마땅하지 않다. 연말에 발표할 쌀 수급 대책에도 고작 쌀 생산량과 재배면적을 줄이는 것이 주 내용으로 반영될 것이 뻔하다. 작년, 재작년 80%대까지 떨어진 쌀 자급률은 또다시 곤두박질칠 것이며 식량주권은 영영 공염불이 될 판이다.
현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안은 8년째 중단된 대북차관을 재개하는 것이며 중장기적으로는 수급조절, 생산조정, 가격안정, 소득보전 등의 측면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농정철학조차도 없는 박근혜 정부에 기댈 것은 아무것도 없는 현실이 암담하다.
순창읍내 여기저기 전국농민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즐비하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콤바인이 삼키고 지나간 빈 들녘은 그루터기만 남긴 채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꽤나 감상적인 나의 지인은 “벼 그루터기가 주는 인상이 그리움”이란다. 볍씨에서 여린 모로, 나락으로 성숙시켜온 자기 역사에 대한 그리움…. 그의 바람대로 그리움이 희망이 되어 내년 봄을 맞이했으면 좋으련만, 나로서는 자궁 같은 논바닥에 그저 황량함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듯 해 허전하고 쓸쓸한 가을일뿐이다.
김효진 순창군농민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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