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지인/ 개인의 혈기에만 의지하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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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지인/ 개인의 혈기에만 의지하다간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5.12.1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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婦 지어미 부, 人 사람 인, 之 갈 지, 어질 인 仁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19

사마천(司馬遷)이 쓴《史記·淮陰侯列傳(사기·회음후열전)》에 나온다. 然不能任屬賢將, 此特匹夫之勇耳(연불능임속현장, 차특필부지용이) : 현명한 장수를 쓰지 못하니 이는 특히 필부의 용기일 뿐입니다.’
진(秦, BC221-BC206)나라 말 저명한 군사귀재였던 한신(韓信)은 처음에 항우(項羽) 휘하에 있었다. 그러나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니 나중에 유방(劉邦)을 찾아가 의탁하였다. 하지만 유방도 한신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 여전히 중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유방의 최측근인 소하(肅何)가 한신을 알아 봤다.
“대왕, 한신은 능력과 재간이 대단한 자일뿐만 아니라 통솔력도 좋으니 중용하여 대장군으로 삼으십시오.”
“그래? 하지만 항우한테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을 어찌….“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 속는 셈치고 한 번 만나 보십시오.”
소하가 이처럼 간곡히 건의하므로 일단 그를 불러 면전에서 우선 작금의 전쟁에 대하여 한신의 의견이 어떠한지를 물었다. 한신이 대답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왕께서는 스스로 보기에 무예와 인자(仁慈), 그리고 세력 세 가지를 갖고 비교할 때 항우보다 낫다고 보십니까?”
유방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힘이 빠져 한숨을 쉬고는 탄식하여 대답했다. 
“네가 말한 세 가지?… 아무래도 내가 항우보다 못한 것 같구나.”
한신이 황망히 고개를 수그리고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지금 화가 나시겠지만 좀 참으시고 제가 그간 항우에 대하여 분석한 내용을 한 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유방과 수하 장수들이 궁금해 하며 한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항우가 한 번 소리를 질렀다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무서워 벌벌 떨고 물러납니다. 정말 용맹스럽죠. 하지만 항우는 현재(賢才)를 중용하는데 있어서는 이러한 용기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모릅니다. 필부의 용기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의 인자(仁慈)는 어떨까요? 사실로 보자면 항우의 인자함은 참으로 매우 높습니다. 부하가 병이 났을 때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고 자기가 먹던 귀한 음식을 보내어 먹게 합니다. 그러나 논공행상을 하여 관작을 나눠줄 때가 되면 오히려 봉작(封爵)의 직인을 내놓지 않고 만지작거려 직인이 닳아 없어질 지경입니다. 이런 인자함은 아녀자의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항우가 전투에 나갔다 하면 연전연승하여 그 세력이 하늘을 뚫을 정도로 높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나가는 자리는 모조리 쑥대밭이 되니 백성들의 원성을 크게 사 아무도 우러러 모시지 않습니다.”
한숨을 돌리고 다시 유방을 우러러 보며 말했다. 
“그러면 왕께서는 어찌하셨습니까? 관중(關中, 진나라의 수도)에 들어 오시자마자 바로 백성들 앞에서 약법삼장(約法三章)을 반포하고, 그들을 위해 진(秦)나라가 행했던 가혹한 악법을 폐기하고 세금을 줄이셨습니다. 이러한 왕의 조치는 빠르게 천하의 인심을 얻는데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앞으로 왕께서 항우와 일전을 벌여 차곡차곡 격퇴해 나가신다면  천하를 얻는 것이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한신이 이처럼 조리정연하게 분석하면서 또 자신에 대하여 칭찬까지 하며 추켜세우니 유방이 너무 기분이 좋아 그의 양손을 부여잡고 흐뭇해 마지않았다.
“만일 내가 좀 더 그대를 일찍 알아 나를 돕게 하였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이로써 한신은 마침내 유방의 핵심참모가 되어 나라의 책략을 세우고 전략을 수립하는 일을 맡아 유방이 천하를 도모하는데 큰 힘을 보태 주었다.
고사 내용 중 한신이 항우에 대하여 분석한 것은 사실 항우가 실패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훗날 사람들은 항우를 매우 용감무쌍한 장수라고 형용하면서도 ‘필부지용(‘匹夫之勇)’ 이라는 말을 더하여 그의 실패를 안타까워하고 탄식해 마지않았다.

필부지용(匹夫之勇)에 대하여는 맹자의《梁惠王下篇(양혜왕하편)》에도 나온다. 맹자가 제(齊) 나라에 갔을 때 선왕(宣王)이 물었다.
“이웃나라와는 어떻게 사귀는 것이 좋겠소?”
“오직 인(仁)으로 사귀는 것이 좋습니다. 오직 인자한 왕만이 큰 나라로써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고 지혜로운 왕만이 작은 나라로써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도를 즐기는 것이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도를 두려워하는 것이니, 하늘의 도를 즐기는 사람은 천하를 편안케 하고, 하늘의 도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를 편안케 합니다.”
“참으로 좋은 말씀이오. 그런데 과인도 사실 용기를 좋아합니다. 선생은 이 점에 대해 어찌 생각하오?” 
“왕께서는 부디 작은 용기(小勇)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칼자루를 쥐고 노려보면서 제 어찌 감히 나를 당할 소냐 하고 큰소리치는 것은 못난 한 남자의 용기일 뿐입니다. 필부지용으로는 한 사람밖에 대적하지 못하는 것이니 왕께선 부디 큰 용기를 갖도록 하십시오.”

필부의 용기, 즉 지모에 의하지 않고 개인의 혈기에만 의지하는 작은 용기를 뜻하는 이 말은 훗날 사람들이 힘으로만 일을 처리하려는 천박한 용기, 사리 분별없이 혈기만 믿고 함부로 날뛰는 용기라고  폄하하고 삼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말이 되었다.
큰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깊이 생각을 하고 자신의 행동에 따른 이해득실을 충분히 검토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신중함에 대해 마치 겁쟁이가 하는 것이라고 깔보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이 바로 필부지용인 사람이다. 흔히 욱하는 성질 때문에 낭패를 보게 되는데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이와 유사한 성어로 婦人之仁(부인지인)이 있다. 삼국(三國)시대 유비(劉備)가 익주를 차지하여 안정이 된 후, 제갈량(諸葛亮)이 익주의 전 주인인 유장을 다른 곳으로 내보내라고 건의하였다. 정이 많은 유비가 차마 멀리 보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제갈량이 재차 말했다.
“주공께서 만약 아녀자의 하찮은 인정을 생각하여 중요한 일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시면 아마 이곳도 오래 차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좋은 일을 행하여 은혜를 주긴 하나 큰일을 결정할 줄 모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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