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79)/ 알랑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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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79)/ 알랑가 몰라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5.12.2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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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79

겁나게 못 생겼다고 시방들 날 놀리능겨

 


오지게 향기로와서 뜨끔허니 놀래불고 잉!
죄받어 뜹뜰혀도 할 도리는 다 하고 상게

 

쬐까만 씨앗으로 강천산에 뿌리 내리고
목탁소리 들음서 산 세월이 300년이여
시방도 꽃 피우고 열매 맺음서 웃고 있잖여.

옹이를 맹글면서 진분홍 꽃 퍼트림서
딴 생각  허고 자도 헐수가 없었던 것은
고대로  향기로 남아 집이헌테 스치고 자팠당께.
                      <서울떽의 졸작 시조>

워메! 뭔일이다냐, 서울떽이 지꺼 시조를 떡하니 붙여놓고야. 미쳤는갑다 라고 웃으실랑가요. 드디어 ‘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마지막 글을 내 보냄서 시방 지의 마음이구만요. 이녁들에게 못생긴 모과 한 알에서 풍기는 향기마냥 스치고 자팠던 황홀한 시절 이었당께요.
일하는 밭에 까지 오셔서 제 글 잘 읽고 있다고 농사 보다는 책을 내라는 선생님의 과분한 칭찬도 들었고, 뜨끈뜨끈헌 목욕탕 안에서 ‘혹시 <열린순창>에 글 쓰는 서울떽 아니냐고’ 물어봐주시던 처음 뵌 어머님도 계셨제라. 연세도 있었는데 제 글의 내용을 꿰뚫고 계셔서 벗은 거시기 만큼이나 부끄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던 기억이지요.
하이고메, 모임에 가면 살짝 다가오셔서 ‘팬입니다’ 허신 분들도 있고,
처음 본 분들이 지를 너무 잘 알아서 넘 들에게 소개해줄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졌제라. 왜냐허믄 지가 바쁘다는 핑계로 맨날 마감 전 날 그때그때의 일을 사실 그대로 써버렸거든요. 참말로 거짓뿌렁이가 하나도 안 들어간 사실 그대로 여서 발끝에 밟히는 잡초 같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파닥파닥 살아 숨 쉬는 생선 비닐 같은 글이어서 허벌나게 겁나게 이뻐해 주셨을랑가도 모르지요. 하먼 하먼!!


2013년 9월 말부텀 거시기헌 이야그를 용감 무상하게 시골 아지메의 용기로 쓰기로 했제라. 하하하. 지가 옛날에 잠깐 <열린순창> 기자 한 것은 아시잖아요. 기자하기 전에 인터뷰 기사도 크게 썼었지요. 지 글이 신문 한 면을 장식하고 나온 그 순간부텀 글을 끄적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근디 지는 요렇게 기냥 써 나가는 글은 맴만 잡으면 3천자건 5천자건 써내려 갈수 있는디 고놈의 육하원칙에 맞는 기사는 밤을 끙끙 새도 못하겄드라구요. 그래서 서럽디 서러운 눈물을 밤새 울고 나서 그만 두었죠. 지가 또 한 똥고집에 뒤끝이 작렬해서 “내가 다시는 글 같은 것은 안써야지”했었죠. 마음속에서 쓰고 자픈 이야그는 겁난디도. 정말 한 일 년은 글을 아예 못 썼더랬어요. 워메! 꾹꾹 눌러놓는것도 장난 아니더라구요. 2년 정도 지나서 대표님께서 글 한 꼭지 써달라고 요청해도 흔쾌히 응낙 못하다가 조건을 걸고 쓰기로 했제라. 첫째는 <열린순창>이 너무 딱딱하니까 내 글 만큼은 배시시 웃음이 나는 기냥 살아가는 이야그를 쓰겠다는 것. 둘째는 지가 맘에 안 들게 써도 간섭하지 않으시겠다는 것.
요렇게 두 가지 조건이었죠. 한 육개월 쓰다보면 끝나겠지 허는 단순 무식한 마음이었어요. 요상하게 3년을 이어왔네요. 사둔떽 짐장헐 때 서울 사는 사둔이 물어 보시더라구요, 월급 얼마 받냐공, 지가 쓰고 싶어 쓰는 글인디라. 시방 지가 <열린순창>에 재정 지원은 못하고 해줄 수 있는 노력 봉사구만요. 하하하!!
“서울떽? 누가 봐도 순창떽이여~ 저어 그 산 좋고 물 좋아 풍수적으로도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는 회문산 자락 구림면에 사는 서울떽 인사드립니다.”첫 제호의 글이었어요.
항아리에 묻어 논 짐치 맛보고 자프면 오씨요, 거짓뿌렁 한나도 안보태고 연지곤지 찍은 서울떽, 참말로 예뻤드랬지-, 월매나 얄미웠을까 하고 어머님 산소 있는 선산 한번 올려다봅니다. 서울떽의 상경기는 지금 생각해도 눈물겹지요. 시아버지 정 받으려 꾀 낸 서울떽의 족발맹글기! 뻥뻥! 대나무 터지는 소리에 서울떽 왼갖 걱정 날려버렸지라. 울 엄니들 봄날은 어땠어라! 살맛나는 시상 한번 만들어 보겄다고 왔지요. 서울떽 개똥철학, 농사는 철학이고 예술이랑게요. 통통한 가실 닮은 최고의 찬사 ‘오메 징한 것!’
짐장 떡 하니 끝내놓고 첫눈 와붕게 아조 오졌어라!
올해 서울떽의 인생엔 어떤 인연이 기다릴까요. 당게당게허다능게 뭔줄 아신당가요. 지도 가끔 나무에 기대어 흐느끼고픈 나이구만요. 하나 둘 잎 피워내는 산 더덕은 아조 쥑이제라~ 이 맛에 산당께요! 노오란 리본들과 아이들의 글들이 나부끼네요. 비가 내려도 촛불을 들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제라.
30년 전 봄날, 눈물 주룩주룩 흘리며 불렀던 이 노래가 가심 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5월 이구만요 
‘떡잎 전에 따버리지 않으면 나중에 도끼로 벤다’는 옛 속담이 이치에 딱 맞는 말이여라! 디지게 농사짓고 살았는디 손에 쥔 것은 없고 시방까정 뭣했나 생각허니 일이 손에 안 잡히는 날이네요. 손 발 묶는다고 새벽닭이 안 우는 것도 아닌디라~
호랭이가 물어가도 못 허게 바쁜 시월이 가뿌렀어라!
“나 보구 시 쓰라고, 워메 미쳤는 갑다. 나는 못혀야” 하시던 어메들 의 시 구경 하실라요!.
꾸척시럽게 아양을 떨면서 땅들 곁으로 가야겄지요, 시방 지 본업은 농새꾼잉게요. 엄니들의 은공을 워치코롬 갚은당가요! 호숙아, 일년간 옹골차게 살아내느라 애썼다! 등등

 

요것이 다 제목들인디 한 절반도 못 되게 적어봤는디 워떻데요. 어쩌다 하나씩 읽어봉게 그때 그 시절 느낌과 생각들이 고대로 전해지네요. 남편과 싸우고 쓴 글을 읽어보시고는 다들 괜찮냐고 물어보시던 모습들도 생각났답니다. 완젼히 맨 얼굴의 부부싸움을 썼었거든요.
이글을 마지막이라 생각하면서 한줄 한 줄 읽다보니 서울떽 참말로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어불구만요. 살아가는 이야그들을 3년 동안 연재하면서 휘몰아치듯 썼어도 다 저의 자산으로 남아불더라구요. 칭찬 들어서 행복했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나갈수 있어서 오지게 황홀했구만요. 서울떽은 오정자 마을에서 농사짓고 어메들과 공부하면서 순창떽이 되어 갈께라. 그려서 지 올 한해에도 체험음식 지도사 자격증, 역사논술 강사 자격증, 전래놀이 강사 자격증 땄어라. 있는 그대로의 서울떽의 모습으로 내년에는 또 어떤 인연과 만남들이 이어질지, 서울떽의 닫힌 문 앞으로 어떤 인생의 문이 열릴지 궁금합니다.
항상 지 글을 맛나게 읽어주신 이녁들에게 큰 절 올리면서 서울떽 물러갑니다. 고마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구림 오정자 마을에서 농사짓는 황호숙 위원의 『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가 3년 동안 80회 연재를 마친다. 황 위원은 자신의 글을 “거짓뿌렁이가 하나도 안 들어간 사실 그대로 여서 발끝에 밟히는 잡초 같은 글”이라며 “파닥파닥 살아 숨 쉬는 생선 비닐 같은 글”이라고 했다. 실제 꾸밈없고 소탈한 황 위원이 일상에서 보고 느낀 진솔한 이야기를 우리 지역 사투리로 연재해 주었다. “항상, 맛나게 읽어주신” <열린순창> 독자들과 함께 황 위원에게 감사드린다. 아울러 <열린순창>을 위한 어떤 ‘재정 지원’보다 귀중한 ‘노력 봉사’였음을 밝히며 거듭 감사드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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