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용ㆍ박봉애 부부, 금과 딸기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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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ㆍ박봉애 부부, 금과 딸기농사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6.01.21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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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한 알에 스민 농민의 철학

자연 믿고 농약 거부한 천상 농사꾼
 허리 펴고 일 하는 ‘고설재배’ 딸기

후대 위해 고생이지만 제초제 안 써
“준비하고 대응해야 농사도 잘 짓는다”

 

 

 

 

 

 

 

 

 

딸기 수확 철을 맞은 금과면이 바쁘다. 대부분 시설작물인 딸기는 여름이 아닌 겨울에 수확하기 때문에, 다른 작물 농사도 짓는 딸기 재배농가는 1년 내내 농장을 드나들어야 한다. 그래서 ‘딸기농사 짓는 사람들에게 1년은 13개월’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재배기술이 보급되고 효과적인 재배가 가능해지면서 딸기하우스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수용ㆍ박봉애 부부의 딸기들은 땅바닥이 아닌 공중에서 자라고 있었다. 고설재배(수경재배)다. 허리높이에 있는 상자에 상토와 관수시설을 넣고 딸기를 재배하는 고설재배는 다리와 허리를 굽히며 일하는 수고를 획기적으로 줄여서 농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또 보일러를 통과한 온수가 상자 속 토양을 데우고 또 다른 관에서는 영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에 관리 편리성도 매우 좋아졌다. 이 씨는 약 850평의 하우스 4동에서 딸기를 재배하고 있는데 이는 금과면 평균과 비슷하다. 칠순이 넘은 이 씨가 젊은 농민들과 비슷한 면적의 딸기 재배를 하는 것은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는 고설재배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금과면 방축리에서 태어난 이수용 씨는 군대 복무기간을 제외하고 평생을 고향에서 농사짓고 살았다. 그가 딸기를 접한 것은 약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씨는 “1975~1976년 정도에 순창농고 권이출 교장선생님이 백색혁명을 열자며 딸기를 보급했다. 그때는 대나무로 하우스를 하던 시절이다. 그때부터 순창에 딸기가 퍼졌다”고 말했다. 백색혁명은 비닐하우스를 의미한다.
하지만 딸기농사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변변찮은 관수시설조차 귀하던 시절 물을 댈 수 없던 사람들은 자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씨는 “사람들이 산에 만든 밭에 딸기를 심었는데 인위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없어 말라죽는 일이 많았다. 또 마른 땅은 물을 대면 단단해져 통기성이 필요한 딸기에는 맞지 않는 토양조건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경운기가 등장하고 펌프로 물을 댈 수 있게 되면서 물 문제가 해결됐다”고 회상했다.

 

 

 

 

 

 

물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이 씨는 딸기재배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태풍에 비닐하우스가 주저앉았는데 보상금은 고작 종자비 정도여서 다시 하우스를 짓기 위해서는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탄저병과 응애로 고생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고소득을 기대할 수 있고 다른 작물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겨울철 농작물로 딸기는 분명 매력적인 작물이었다. 이 씨는 15년 전부터 딸기 재배규모를 확대해 지금은 연간 약 2톤의 딸기를 수확하고 있다.
이 씨가 고설재배를 시작한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난해 태풍피해를 입고 하우스가 무너진 후 재건하는 과정에서 파이프를 촘촘히 박고 시설을 들여 고설재배를 시작했다. 시설비는 다소 들었지만 깨끗한 작업환경과 능률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만족하고 있다. 물론 고설재배의 단점도 있다. 이 씨는 “토경재배는 땅에 있는 온갖 유기물을 흡수하는데 반해 수경재배는 제한된 토양의 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맛이 떨어진다. 그래도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물면 계속 손이 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의 딸기는 과육이 탄탄하고 단맛과 신맛이 어울려 맛있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이 씨는 선별을 거쳐 소비자들에게 도착하는 시간을 고려해 약간 덜 익은 것을 출하한다. 바쁠 때는 ‘상’과 ‘특’품만 내고 보통 이하의 작은 딸기는 안 딴다. 그리고 한가해진 시기에 작은 것을 따는데 이 딸기들은 수분이 어느 정도 빠진 뒤여서 상품가치는 별로 없지만 맛이 무척 달다. 즉, 가장 맛있는 딸기는 생산자만 맛볼 수 있다. 4월이 지나고 수확이 끝날 시기에 나온 딸기는 가공업체들이 잼을 만들 목적으로 사간다. 이 씨의 집에서도 잼을 만들고 있지만 가족들과 나눠먹는 정도로만 만들고 판매는 하지 않는다. 식품첨가물에 대한 거부감이 많기 때문이다.
이 씨는 농약에 대해 예민하다. 아직 기술이 완성되지 않아 고설재배 딸기는 저농약 방식으로 재배하고 있지만 살포하고 다음날 따서 먹어도 지장 없는 검증된 약품을 쓴다. 다른 작물들에는 일절 쓰지 않는다. 그의 아내인 박봉애(61)씨는 “후손을 생각해 제초제도 안하고 손으로 뽑느라 고생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과거 무농약 연구모임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옛날에는 멸구약이 가루로 돼있어 마스크를 하고 쳐도 약이 입에 들어왔다. 헹궈도 입천장에 붙어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짚을 소가 먹으면 쓰나? 1975년도 경에 농약을 치고 병원신세를 진 적이 있다. 그 뒤로는 농약을 안 한다”고 말하고 “딸기는 수정할 때 비닐하우스에 벌통을 두기 때문에 약을 잘 못한다”며 농약에 대한 견해를 나타냈다.


그가 전하는 딸기농사 비법은 따로 없다. 변수가 많기 때문인데 “땅을 다 소독해도 큰비가 오면 안으로 물이 들어온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계절을 보면 날씨가 주기적으로 바뀐다. 작물은 기술적인 것도 있지만 자연이 길러준 것 같다”며 “준비성을 갖추고 자연의 변화에 대비하는 사람이 농사도 잘 짓는다. 태풍 오면 끈 한 번 더 매고 침수지 점검하며 물고랑 낮추고, 비오는 데 우의 입고 나가 보는 사람은 물 고인 곳 없는지, 강이나 하천에 물이 얼마나 올라왔는지 보러 가는 것이다”고 말했다.
“쉬어야 할 나이지만 내일 할 일이 있다는 게 좋다”는 이 씨는 취미로 기타를 배우러 읍내에 다닌다. 모두가 농촌을 떠난 젊은 시절에도 고향에 남아 묵묵히 땅을 일궈온 그는 그동안 열심히 일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고 살아온 점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또 “배운 것들을 실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며 지금도 자신을 단련시키려는 마음가짐도 가지고 있다. 이런 농부의 마음이 투영된 딸기는 윤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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