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용 미성악기 대표, ‘음향해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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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용 미성악기 대표, ‘음향해결사’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6.02.0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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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 행사 95% ‘독점’…20년 순창 애환 ‘체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군내 행사장에 항상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문별로, 지역별로 참석대상이 다르지만 군내 정치인들과 관계공무원들 그리고 지역 유지들의 참석은 어느 곳이나 비슷하다. 그런데 이들 말고 항상 행사장에 빠지지 않는 빠지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음악이 필요한 행사에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이다. 군내 행사의 95%에서 음향을 담당하는 최일용(66ㆍ순창읍 순화) 미성악기사 대표다. 그의 음악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전축 만드는 기술자

1950년생인 최일용 대표는 충남 금산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전쟁의 화마를 피해 작은 굴로 피신한 그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한동안 지내다 내려왔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최 대표는 부모님을 따라 정읍에 왔고 학교를 다니던 16살 때부터 악기점을 운영했다. 지금의 악기점은 피아노, 기타 등 악기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곳을 말하지만 당시에는 음반을 주로 팔고 하모니카 등 작은 악기를 취급하는 곳이었다. 악기점을 하면서 그는 학원에서 1년 동안 배운 기술을 가지고 전축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에 쌀 한가마니가 300원, 500원 했고 최고급 술도 100원이었다. 그때 전축 한 대에 5만원씩 받고 팔았다. 그걸 일주일에 3대를 만들었다. 양복점 하는 사람이 전축 사려고 한 달을 기다리기도 하고 만들어지는 대로 달라면서 미리 돈을 넣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인두냄새 맡아가면서 수작업으로 하는 거라 힘들긴 했어도 그때 돈을 많이 벌었다”는 최 대표는 한때 우리나라 오디오시장의 큰 산맥이었던 인켈과 태광전자로 부터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인켈과 태광은 서울 낙원상가내 일개 가전업체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악기점은 불티날 정도로 잘 됐다고 한다. 이미자, 나미 등 유명 가수들의 음반을 사려는 대기자가 줄을 설 정도였다. 최 대표는 “서울에서 200개를 가져오면 3일을 못가 다 팔렸다. 그마저도 없어서 며칠을 수소문해야 겨우 구해 팔수 있었다. 노래가 끊이지 않고 계속 연결돼서 나오는 ‘메들리’를 개발해 팔 때는 날만 새면 돈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기획사 실패로 ‘부도’

그렇게 잘나가던 악기점 사장 최일용에게 위기가 다가왔다. 서울에서 야심차게 시작한 기획사가 부도난 것이다. 그는 “유명 연예인이 음반회사를 하자고 해서 기획사를 시작했다. 물건을 만들어 한 사람에게만 줬는데 그 사람이 망하니 나도 망했다. 여러 사람에게 졌던 빚은 그동안 모은 재산을 처분해 겨우 갚았다. 정읍역 앞에 당일 개업한 여관을 통째로 빌려 빚쟁이들을 모으고 집과 땅을 전부 파는 식으로 빚을 처분했다. 돈은 참 묘하다”고 말했다.
음반회사를 접은 후 그는 방송국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지만 곧 그만두고 순창으로 왔다. 후배 소개로 악기사를 차리고 한 차례 자리를 옮긴 것이 지금의 미성악기(미래이벤트)이다. 그는 이곳에서 여러 행사를 다니며 음향장비 운용을 하고 있다.
음향장비 운용은 관심 있는 사람이라도 상당한 공부가 필요한 일이다. 그는 행사 2~3일 전 시설이 설치되면 하루 전에 음향시설을 조율해놓는다. 행사의 성격과 공연자 성향에 맞게 세밀한 조율을 해야 한다. 최 대표는 “사람이 100명 오는지 1000명 오는지 확인하고 거기에 맞는 음향장비를 배치해야 한다. 예상인원의 50%를 더해서 장비를 설치해야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도 괜찮고 기계도 상하지 않는다. 더러는 공연할 사람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인맥을 활용해 트로트 가수나 각설이 공연을 할 사람을 소개해준다”고 알려줬다.

맡은 행사 끝까지 책임

요즘같이 추운 계절에는 행사가 드물지만 그는 하루에 많게는 8개를 운영할 정도로 많은 행사들을 다녀왔다. 그는 이 행사들을 전부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사진자료로 남겨둔다. 20년 넘도록 지역행사를 하면서 많은 모습들을 봤고 세월의 변화도 느낀다. 그는 “과거에는 환갑잔치를 많이 열었지만 지금은 팔순이 기본이다. 최근 3년 동안은 팔순과 칠순잔치가 별로 없어서 많이 안 다녔다”고 말했다.
웃지 못 할 일들도 있다. 회갑연 사진을 찍을 때 조리개를 조이고 찍는 바람에 까만 사진만 나온 일은 어떻게 수습하긴 했어도 아직도 생각만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고 했다.
최 대표는 술을 좋아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는 지인들과 종종 이웃가게에서 술자리를 즐긴다. 다만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다음날 필요한 장비는 반드시 챙겨놓고 잔다. “어떤 단체든지 나와 행사 하는 곳은 내가 안고 간다”는 그의 책임감은 상상외로 크다. 동업자이자 그가 후계자로 지목하고 함께 일하고 있는 안선근(46ㆍ순창읍 남계)씨도 이런 그의 직업의식을 잘 알고 있다.
“행사를 남의 돈으로 치루는 사람과 자기 돈 들여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완전히 다르다”는 최 대표는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기념할 수 있도록 장비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무대 주변이나 뒤편에서 모자를 쓴 채 조용히 음향장비를 만지는 사람, 최일용 대표의 2016 행사나들이도 날이 풀리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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