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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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식 시인
  • 김재석 순창문협 회원
  • 승인 2016.02.1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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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샘 마를 날 없었던 샛별, 저 하늘에 뜨다

 

2016년 1월 18일.
순창읍 한 모퉁이 집에서 태어나 49년을 살아온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에 ‘돌시인’으로 알려진 박진식 시인입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온 몸이 돌처럼 굳어가는 희귀병-연소성 피부 근염에 의한 범발성 석회화증-으로 근 40년을 병마와 싸웠습니다. 몸이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동안, 그의 영혼은 온 마음을 다해 삶을 글로 남겼습니다.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시대의 창, 2001년),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명상, 2001년), <어머니, 기필코 새벽종을 치렵니다>(하늘호수,2002년), <아버지, 울었습니다>(명상, 2003년), <무심가>(명상, 2005년), <돌시인과 어머니>(밀알, 2007년), <소망>(밀알, 2014년) 등 인터넷 서점에서 찾아본 책이 총 7권입니다.
나는 순창으로 귀농해서 그가 아직 살아있을 때, 제7일 안식일 순창교회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처음 본 그는 뻣뻣한 몸에, 눈의 초점조차 서로 맞추기 힘들어 여간 낯설지 않았습니다. 돌시인으로 불린다는 말에 그의 작품이 궁금했지만, 왠지 그의 장애가 편견의 벽이 되어 쉽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여담이지만,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나서, 그가 남긴 책을 읽어보려고 순창공공도서관과 순창군립도서관에서 자료검색을 해봤습니다. 그의 책을 한 권도 찾지 못했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희귀병과 싸우는 박진식씨는 지상파 방송(MBC휴먼다큐 사랑 10화, 돌시인과 어머니, 2007년 방송)을 타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는데, 실상 시를 쓰고, 수필을 쓰는 작가로서의 박진식씨는 고향에서 그다지 관심 밖이었나 봅니다. 인터넷 서점에서도 절판된 책들이 많아, 나는 타 시군의 도서관에서 자료 검색해 책을 모았습니다.
그의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시인인 이해인 수녀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녀의 시는 난해한 기교나 묘사보다는 삶의 순수한 본질을 생각에 담아 펼쳐내어 누구나 편히 읽을 수 있습니다. 박진식 시인의 시에도 세상에 태어나 하루하루 희귀병과 싸워야하는 실존적 삶 그자체가, 그의 속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책장을 덮으며 희귀병을 가진 1급 지체장애인 박진식씨 그대로의 모습도 좋지만, ‘순창이 낳은 시인’으로 그가 오랫동안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박진식 시인이 생전에 남긴 책

2016년 1월 18일, 나는 눈을 감았습니다. 이 날은 나의 눈물도 마른 날입니다.
세상에선 나를 돌시인이라 불렀습니다. 이름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작명 놀음이겠지만 딱 두 마디로 나를 정의해 준 기분입니다. 몸은 칼슘 과다 분비로 평생 석회화가 진행되면서 돌처럼 굳어갔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13살부터 1급 지체장애우가 되어 방에 누워버린 나는 뭐 하나 할 일이 없었습니다. 손가락 마디 사이에 볼펜을 끼워 컴퓨터 자판을 쿡쿡 누르며 자음, 모음을 모아서 글을 만들고, 그렇게 시를 썼습니다.

 

새벽, 겨우겨우라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햇살을 볼 수 있기를/ 아무리 천대받는 일이라 할지라도/ 일을 할 수 있기를/ 점심에는 땀 훔치며/ 퍼져 버린 한 끼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기를/ 저녁에는 쓴 소주 한잔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타인에게는 하잘 것 없는 이 작은 소망이/ 내게 욕심이라면, 정말 욕심이라면/ 하나님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소망’ 시집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에서

한 많은 세상을 이제 떠나니 홀가분해야 하는데, 누가 머리채를 잡아당기네요. 나를 낳고 반평생 내 수발하느라 백발이 되어버린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불치병이라 20살을 못 넘길 거라고 의사들이 말했을 때,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부모님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나는 49살까지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보살피랴, 화장품 외판원 하랴, 아버지는 연탄배달 막노동에 환경미화원까지, 당신들 삶도 버거웠을 건데…. 

“요것 먹어라.”/ 오늘도 막노동으로 하루를 끝마치고/ 어둑어둑 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불쑥 내미신 새참 우유/(중략)/어느덧 칠순을 바라보시는 아버지,/ 당신의 등골을 휘게 한 막노동은/ 한잔 술로 잊으면서도/ 당신의 새끼는 결코 잊지 못해/ 자식이란 놈의 눈시울을/ 콕콕 찌른 그 우유는 바로/ ‘부모’였습니다.// 아버지도 목이 마를 텐데/ 새참 우유/ 이젠 집에 가져오지 마세요
-‘부모’ 산문시집<아버지, 울었습니다>에서

 나에게 산다는 건 무슨 의미였을까요? 하루를 그저 오롯이 살아내는 걸까요? 내가 이 삶을 선택한 것일까요? 

방에 누워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가 다 지나갔다/(중략)/ 그 숱한 사계가 흘러갔어도/ 꽃 피는 봄은 나도 모르게 흘러갔다/ 눈 내리는 겨울은/ 나도 모르게 와서 흘러갔다/ 방에 누워서/ 방 속에서/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절망하고 기절하고/ 살았던 그 세월
-‘세월’ 시집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에서

나도 가끔은 철학책을 읽습니다. 나에게 어떤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서…. 아니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까요?  사르트르가 내게 말하더군요. 나는 세상에 던져진 실존 그 자체이고, 오직 ‘상황-속-존재’일 뿐이라고. 신이 죽어버린 시대에 삶을 정당하게 해주는 가치와 질서도 찾을 수 없으며, 어떤 가치에 대해 핑계도 변명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나의 삶은 우연히 시작되었지만, 자유 그 자체이고 나는 나중에 무엇이 될 것이고, 삶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그 자체이다. 그의 말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공명이 울렸습니다.
‘이건 내 삶이 아니야’ 하고 발버둥 칠 일이 아니고,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한다고 변명거리를 찾을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 아니 ‘산다는 것’이 진리이지요. 바로 ‘나’와 ‘너’의 삶이 만나 생로병사, 희노애락을 같이 한다는 것. 빌어먹든 구걸을 하며 살고 있든, 숨 쉬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진리이며 영원한 것이지요.
-‘진리’ 산문집 <어머니, 기필고 새벽종을 치렵니다>에서

 
나는 오늘 이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시집’을 내고, 흉직한 몰골이지만 미소를 지으며 TV에 나왔습니다. 나의 불쌍함을 팔려는 의도가 있었냐고요? 물론 책이 팔려 그동안 고생한 내 부모에게 용돈이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얼마나 팔려야 내 부모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까요?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이 모습을 보고, 함께 살아가는 ‘너’가 위로와 새로운 힘을 얻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나의 수기를 읽고, 한 여고생은 독후감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덟 살 백혈병 소년은 나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이거 왕 비밀이예요./ 왠지 엄마가 알면 알 될 것 같거든요./아저씨는 무지 오래 아프다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나요./ 나는 아픈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아파서 울걸랑요./ 그때마다 엄마가 울보라고 놀려요./ 그래서 말인데요. 아저씨./아파도 안 우는 법 좀 가르쳐주세요./ 나도 아저씨처럼/  아무리 아파도 웃고 싶어요./ 꼬옥 꼭, 가르쳐주세요./ 그럼 내가 제일 아끼는 3단 변신로보트 줄게요.
-‘어떤 편지, 하나’ 산문시집<아버지, 울었습니다>에서

나는 차마 답장을 못 썼네요. 기다릴 텐데, 너무나 아파서 울고 있을 텐데…….
평생을 옥중에서 보내야 하는 사람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무거운 형량을 감내해야 하는 그의 처지에서 하루하루를 아픔과 고통에 굴하지 않고, 내가 웃음과 희망을 전해준 데 대한 고마움의 편지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의 편지를 보며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내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기까지, 내가 한 줄의 글을 쓰기까지, 그리고 희망을 전하기까지 참고 견뎌야 했던 투병의 시간을, 온몸이 돌이 되는 아픔에 바들바들 떨어야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갔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이 얼마나 잔혹했으면 차디찬 옥중에서 기약 없는 수인의 신체가 된 분들조차 나로 인해 용기를 얻을까요. 기댈 언덕을 찾는 걸까요. 위로의 또 다른 변명인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나도 그대와 같은 사람이니까요. 
-‘어떤 편지, 둘’ 산문시집<아버지, 울었습니다>에서

나에게 실존철학을 넘어 또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그건 ‘어머니’입니다. 나에게 신앙이 생긴 것도 ‘어머니’가 보여준 아가페 사랑 때문인지 모릅니다.
“엄마, 내 대변 냄새지만 너무 독하다. 엄마도 독하지?”
“뭐가 독해. 내 새끼 냄샌데…….”

자식이 뭔지 내 똥을 기꺼이 받아내시고, 치워 주시고, 닦아주시는 어머니. 병 수발 3년에 효자 없다고 했는데, 40년 한결같은 어머니의 그 사랑이 없었다면 나의 삶도 없었고, 내 생도 벌써 마쳤을 겁니다.

당신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나는 빈손이어서/ 드릴 게 없습니다// 당신은 내게 많은/ 사랑을 던져 주셨지만/ 나는 빈손이어서/ 드릴 사랑조차 없습니다// 드릴 그 무엇도 없어/ 가만히 빈손인/ 나의 손바닥을 쳐다봅니다// 내 생의 손금에는/ 당신의 손금이 그려져 있고/ 내 생의 손금에는/ 너무 많은 상처가 있어/ 당신 또한 눈물이 많습니다
-‘빈손’ 시집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에서

그대(신)에겐 투병자의 항변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겐 오늘이 주어졌기에 오늘을 살 뿐이며, 어머니를 위해서, 산다는 것을 위하여 그대의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난 단지 번뇌가 많은 사람으로서 종교를 품에 안았습니다. 나라는 인간은 절대적 존재가 필요했기에. 신앙에 대해 합리적인 논리를 펴려고 했지만 내가 신에게 나아간 건 쉬고 싶어서입니다. 쉬고 싶었습니다. 그뿐입니다.
-‘신앙’ <돌시인과 어머니>에서

나는 산소호흡기를 떼고 이제 눈을 감습니다. 수 십 번도 넘게 병원에서 생사를 넘나들었지만, 이대로 보낼 수 없다며 40년을 지켜낸 나의 어머니, 그 손을 놓아주세요. 그리고 저 밤하늘의 별을 봐 주세요. 눈물샘 마를 날 없었던 샛별이 그곳에 떠 있으니까요.

*** 고(故) 박진식 시인을 추모하는 글입니다. 가능한 그 분의 글에서 발췌하여 실었으나 글쓴이의 의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 고인을 알고 지냈던 분이 있어, 그 분의 철학이나 종교적 색채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다면 널리 양해하시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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