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자랑만 하는 ‘역사’는 사람답게 살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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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자랑만 하는 ‘역사’는 사람답게 살 수 ...
  • 유현정 다감회원
  • 승인 2016.02.1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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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밥데기 죽데기」글 권정생 / 그림 박지훈

-“아니에요. 저는 사람보다 늑대가 더 좋아요. 훨씬 착하게 살고 있잖아요.”
-“자꾸 그런다고 내가 속을 줄 아니?”
-“정말이에요. 늑대도 그렇고 너구리도 오소리도, 산에 사는 짐승들은 사람들처럼 총도 안 만들고 폭탄도 안 만들고 전쟁도 하지 않잖아요. 자동차도 안 만들고 학교도 없고 교회당도 절간도 안 만들어도 절대 나쁜 짓을 하지 않잖아요.”
-“…….”
-“쓰레기도 안 버리고 농약도 안 치고, 모두 깨끗하게 살고 있어요.”

우연의 일치일까, 올해 내가 발제하는 책들은 한국 근현대 동화작가를 대표하는 두 분의 책이다. 1학기에는 이원수 작가의 「잔디 숲속의 이쁜이」, 이번에는 권정생 작가의 「밥데기 죽데기」라니…. 어렵다. 약간은 오그라드는 대화들, 갑작스런 이야기 전개, 알 듯 모르겠는 철학, 거기에 한국의 역사까지…. 역시 어렵다.
솔뫼골에 사는 늑대 할머니는 50년 전 자기 남편과 자식을 죽인 원수를 찾기 위해 100일 동안 공들인 달걀로 손자들을 만들어 함께 서울에 올라가게 된다. 그곳에서 원수를 찾다가 정체를 모르는 황새 아저씨(난 개인적으로 천사일거라는 생각을 한다)를 만나 원수를 찾게 되면서 우리 역사의 슬픔들을 만나게 된다.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겪은 사마귀 할아버지, 원자폭탄의 피해자인 인숙이, 그리고 위안부에 끌려갔던 3층 병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도대체 역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잘못 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고민 끝에 늑대 할머니는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 세계평화를 선물한다는 내용이다.

원수를 갚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걸로 다 끝낸다면 세상이 어찌 되겠니?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게 되면 결국 세상은 망하고 만단다. 그러니 너희는 원수를 갚되 아름답게 깨끗하게 갚는 거야. (16쪽)

늑대 할머니는 여관방에 누워서 곰곰이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세상 모두가 함께 살아가자면 사람들 마음을 고쳐 놓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이렇게 잠 못 자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 밤새도록 생각했는데도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한 가지 방법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43쪽)

밥데기는 노란 금가루처럼 된 똥가루를 한 줌씩 꺼내어 훨훨 뿌렸습니다. (162쪽)

가볍게 보면 이 이야기는 똥으로 시작해 똥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똥으로 만든 밥데기 죽데기로 시작해 똥으로 만든 꽃가루로 세계평화가 이루어지니 말이다. 누군가는 ‘강아지 똥’ 다음에 나온 똥 시리즈라고도 이야기했다. 또 끝내주는 영웅이 등장한다. 어벤져스 부럽지 않은 캐릭터들이 세계평화를 이루어냈으니 영웅물의 완결편이랄까?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가볍지 않은 책이다. 92쪽에서 사마귀 할아버지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나라가 한 번 망하니까 그 누구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없었단다” 사람답게 살 수 없는 나라에서 자신의 잘 못을 뉘우치며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보며, 인숙이를 보며, 3층 병실의 할머니와 노숙자와 한 나라 안에서 서로 총을 겨누는 군인들을 보며, 휴전선을 보며 할머니는 묻는다. “도대체 그 역사란 게 뭐냐?”

서울의 모든 집에서, 아파트건, 단독 주택이건, 산동네 판잣집이건 재개발 비닐 천막집이건 달걀이 있는 집에선 모조리 병아리가 나온 것입니다. (165쪽)
휴전선 철조망이 모두 녹아 내리고 모든 전쟁 무기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녹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 전쟁 무기만 녹아 버린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 녹았습니다. … 이제 코리아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평화의 물결은 전 세계로 파도처럼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167쪽)

서로 잘못한 일은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하면 이 복잡하고 상처받는 역사는 반복되어지지 않을 것이다. 늑대 할머니가 알고 깨달은 이 단순한 원리는 황새아저씨가 말한 ‘힘겨루기에만 힘을 쏟는 역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힘자랑만 하는 역사는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빼앗아가고,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빛을 빼앗아가고, 누군가에는 꽃처럼 어여쁜 시절이 악몽이 되어 사라지게 만든다.
힘자랑만 하는 역사는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없는 나라를 만들고, 다시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려하고, 다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소리쳐 외치게 한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잘못을 할 사람이 정해져 태어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잘못할 수 있고, 어른들도 잘못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는 위인들도 잘못할 수 있고, 부자들도 잘못할 수 있다. 어려운 일이지만 잘못을 인정하면 쉬운 것 같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에겐 용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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