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또 희망을 배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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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또 희망을 배반했다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6.03.0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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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처리를 막으려는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9일째 이어지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마지막으로 발언하고 마무리됐다. 국가정보원에 시민에 대한 감시 권한을 쥐어 주는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한 한국 야당의 ‘무제한 토론’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제1야당인 더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토론이 한창 진행 중이던 3ㆍ1절 날 ‘필리버스터 중단’을 선언했다.

더민주당이 어렵게(?) 영입했다는 김종인 대표의 ‘선거구 획정 문제를 책임지라’는 강경한 입장과 지금은 ‘안보 이슈 보다 경제 이슈로 전환’해야 한다는 판단을 거스르지 못했다. 이로써 지난달 23일 저녁 7시 김광진 더민주 의원이 시작해 47년 만에 한국 의정사에 등장한 ‘필리버스터’는 막을 내렸다. “선거는 감동으로 치러야 하는데, 우리는 정치를 ‘보리개떡’처럼 하고 있다”는 한 의원의 중단 반대 발언만 무색해진다.

국가정보원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줌으로써 사생활 및 인권 침해 우려를 불러온 테러방지법 제정 저지를 위한 국회 ‘무제한 토론’은 끝났다. 더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30명이 넘는 야당 의원들은 무려 9일 동안 180시간 넘는 세계 최장 ‘무제한토론’ 경주를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불통’을 뚫지 못했다. ‘옳고 그름’이 ‘많고 적음’에 막혔다는 절망과 아쉬움에 슬픔을 넘어 분노가 인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제20대 총선을 40여일 앞두고 선거구 획정안을 처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악용했다. ‘무제한토론’을 통해 속속 폭로되고 시민사회의 반대 여론이 높아진 테러방지법안을 한 자도 고칠 수 없다고 버텨 이겼다. 정부·여당의 비민주성과 소통 부재를 비판하는 일조차 사치로 느껴진다. 테러방지법안을 ‘국가 비상사태’ 조건에 뜯어 맞춰 직권 상정케 한 정부여당의 압박은 실로 ‘점입가경’이다.

야당의원들의 ‘무제한토론’은 시민들과의 공감을 통해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성과를 거뒀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국가정보원의 판단에 따라 은행계좌도 통화내역도 언제든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국회의 ‘무제한토론’을 지켜본 시민들의 적극적인 공조는 국회 밖 ‘장외 필리버스터’로 이어졌다. 국회 방청석에는 시민들이 몰려들었고 반대 토론하는 의원들을 응원했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보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가 생각난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그때도 반대하는 의원을 강제로 끌어내며 일사천리로 가결했다. 민중을 짓밟고 인간의 모든 희망을 압살하는 권력자의 주도면밀하고 강고한 힘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사람을 지배하려는 권력이 무섭고 두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무제한토론’을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무제한토론’을 통한 야당의 항거에 대한 역사적 의의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분명해지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호통은 그대로 현실에 투영돼 민주주의를 옥 죈다. 시민들은 유례없는 사태를 목격하면서 정치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있다. 가만 있지 않을 때 변화도 희망도 가질 수 있음을 느낀다.

이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은 박근혜정부의 ‘전가의 보도’로 사용될 것이다. 반면 ‘무제한토론’ 중단은 시민들의 가슴에 실망, 체념, 분노 등의 감정으로 남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이겨내는 판단이다. ‘무제한토론’을 통해 느낀 문제의식과 정치 관심은 4ㆍ13 총선까지 이어져야 한다. 현실은 희망을 또 배반했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희망을 여전히 희망으로 남겨야 한다. 4ㆍ13 민주세력의 승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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