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156) 악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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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156) 악취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6.08.2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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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자막약주(銷憂者莫若酒) 근심을 지우는 데는 술만 한 것이 없다.<한서>

술을 일러 망우물(忘憂物)이라 한다. 글자 그대로 근심을 잊게 만드는 음식물이란 뜻이다. 최선의 삶은 취하지 않고도 즐겁게 사는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서로 같지 않아 사람과 부딪치고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쾌한 일을 잊기 위해, 공허함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때론 즐거움을 증폭시키기 위해 술을 가까이한다. 이성을 존중할 만큼의 음주는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고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하지만 과음은 감정에 열을 가하여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게 하고 입의 뚜껑을 열리게 하여 남에게 감추고 싶은 마음속의 때를 밖으로 드러나게 한다.
술은 몸과 감정을 취하게 하지만 평상시 마음이 선한 사람은 비록 몸이 흐트러지고 말이 많아져도 악의가 없고 평상시의 마음이 탁한 사람은 술에 취하게 되면 남과 다투려하고 말에서 악취(惡醉)와 독기가 섞여 나온다. 술에 취한 것보다 무서운 취함은 신념에 취한 것이다. 술은 감정을 취하게 하여 일시적으로 이성을 마비시키지만 신념은 이성을 항상적으로 취하게 하여 각성을 원천봉쇄한다. 심성이 어진 사람의 술에 취한 실수는 술에서 깨어나면서 반성을 통해 교정 되지만 어둡고 탁한 가치관과 도리에 반한 신념에 정신이 취하면 인생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잘못함으로서 일생을 실수로 만든다.
돈과 지위와 권력과 명예에 대한 탐욕에 취하여 일생동안 깨어나지 못하여 선미한 진리의 길을 끝내 못보고 삶을 마감한 사람이 많다. 때문에 공자는 조문도 석사가의(朝問道夕死可矣) 아침에 인간의 진정한 길을 들어 알게 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다. 술에 심하게 취하면 정신을 잃고 버리게 되며 돈에 취하게 되면 돈을 위해 사람을 버리게 되며 명예에 취하게 되면 진실을 버리고 위선을 택하게 되고 권력에 취하게 되면 정의의 길을 버리고 불의의 길을 택하게 된다. 정의, 진리, 신앙에 대한 신념은 좋은 것이지만 사람보다는 작은 것인데, 취하여 마음이 붙들리면 작은 것인 수단을 위해 큰 것인 사람을 잃고 버리게 된다. 집착이 진해지면 탁해지고 탁해지면 소통이 막히고 소통이 막히면서 마음과 세상은 건강을 잃게 된다.
이익을 쫓는 욕망에 취한 눈으로는 세속적 이익과 손해의 경쟁만 보일뿐 함께 사는 즐거움인 진리와 정의 인간의 도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익을 향한 탁한 욕망에 취해 살면서 사람은 미움과 더러움이 있는 추악하고 험악한 불의의 길로 유혹되어 간다. 깨어 있다는 것은 마음과 정신을 비워 밝고 맑게  검소하고 겸손하게 산다는 것을 의미하고 취해 있다는 것은 무언가에 의해 마음과 정신이 물들고 탁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소하다는 것은 내면에 충실하며 외면을 치장하지 않고 물질적 이해득실과 천성을 훼손하는 불필요한 장식물인 명예와 지위를 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겸손하다는 것은 자기의 부덕을 보며 자기시야와 능력을 확대해석 하지 않음으로서 자기를 확장하고 싶은 욕심을 비우는 것이다.
술에 취해 있다는 것은 탁한 정신에 젖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부귀에 취해 있다는 것은 부귀에 의해 마음과 정신이 탁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에 취하여 정신과 마음이 어리석은 생각에 붙들리게 되면 인생은 최선의 길을 벗어나게 된다. 정의는 밝고 맑은 것이고 불의는 어둡고 탁한 것이며 무욕은 밝고 맑은 것이고 이욕은 어둡고 탁한 것이다. 어둡고 탁한 취한 눈으로는 사물을 정직하게 볼 수 없다. 이욕에 취한 눈, 탁한 눈으로 보면 맑고 밝은 것도 탁하게 보인다. 사물을 바르게 못 보면 재앙의 길에 유혹되어 복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재앙을 복으로 봄으로서 복의 씨앗을 버리고 재앙의 씨앗을 심어 가꾸며 헛된 인생을 살게 된다. 욕망을 비워 마음이 맑고 정신이 밝은 사람은 진리를 보는 눈이 밝기 때문에 도리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인간이 추악한 길을 가는 것은 정신이 이욕에 취해 아름답고 선한 편한 길을 못 보기 때문이다. 반성이란 취함으로부터 깨어남을 의미한다. 어둡고 탁한 탐욕의 정신으로부터 밝고 맑은 비움의 정신으로 돌아옴을 의미한다.

글: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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