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영 씨, 금산여관 ‘방랑싸롱’ ‘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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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영 씨, 금산여관 ‘방랑싸롱’ ‘무슈’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6.09.2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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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와본 적 없었던 백지 같은 곳 순창” 눌러 앉아

▲금산게스트하우스 방 하나를 개조해 만든 카페 ‘방랑싸롱’은 순창에서 가장 작은 카페다. 개성 넘치는 이곳 야외 의자에서 주인장과 대화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무슈 장.
여관을 개조해 만든 금산 게스트하우스에 특별한 투숙객이 있다기에 놀러갔다. 자칭, 타칭 커피 애호가인 기자 눈에 수제 커피로스터기를 돌리는 모습이 들어왔으니 일단 커피 한잔 맛보는 게 순서였다. 게스트하우스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카페는 생각보다 분방했다. 이름조차 ‘방랑카페’다. 카페는 맞는데 장사할 마음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한쪽에는 손수 볶아둔 커피 몇 종류가 나열돼있다. 건장한 체격의 사장은 원두가 발효미생물진흥원에서 보내준 발효커피라고 했다. 직접 볶아 내린 커피의 풍미는 대량으로 조달해서 쓰는 카페들이 결코 따라할 수 없다. 순창에서 오랜만에 커피다운 커피를 마시게 됐으니 기자는 신났다. 심지어 원두 로스팅(구운) 정도나 내리는 농도도 입맛에 맞았다. 재미있는 카페다.
이 카페에서 커피는 주인장과의 대화를 위한 일종의 도구다. 사람이 대화하는데 빈손으로 앉아있자니 허전해 컵이라도 쥐어줘야 하고 커피 한 잔 내려주면 괜찮은 거다. 카페에는 테이블이 없다. 의자는 주인장을 향해 있다. 사실 주인장도 카페로 돈 벌 생각은 크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추석에는 다른 곳에 있었는데 손님이 전화하는 바람에 마침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는 김형욱 작가에게 장사를 부탁했다고 했다. 드립커피(가루에 끓인 물을 붓고 필터로 걸러 내는 방식의 커피) 내릴 줄도 모르는 사람을 시켜서 장사를 하니 부탁을 받은 김 작가나 손님 모두 황당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날 매출을 3만원이나 찍었으니 이 또한 기록에 남길 일이다. 주인장은 “기특해서 서비스로 커피 한 잔 내려줬다. 장사 이 따위로 하냐는 소리 들을 할 만 하다”며 껄껄 웃었다.
방랑끼 제대로 박힌 주인장 장재영(42)씨의 진면목은 출입문에 있다. 출입문을 닫으면 드러나는 수많은 항공권이 그의 삶을 말해준다. “여권을 몇 번 바꿨냐”고 물으니 “잃어버린 것 까지 하면 다섯 권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직 여행인솔자(가이드)였다. 지금까지 85번 출국했고 60개국의 공항을 드나들었다. 여행지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것 까지 포함하면 방문국가는 훨씬 많아진다. 그랬던 그가 순창에 정착한 이유는 뭘까?
그는 지난 6월10일 순창을 처음 방문했다. 당연히 금산여관도 처음이다. 처음에는 이틀만 있으려고 했는데 “홍 누나 친화력에 매료돼” 주저앉았다. 그는 “호주에서 3년 동안 살다가 한국에 들어온 게 5년 전이었다. 그리고 친구 권유에 하나투어 국내여행 가이드를 하게 됐는데 이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우리는 고품격 국내여행상품을 취급했다. 그러다보니 주로 오시는 분이 은퇴한 시니어들이다. 5년 동안 여행 인솔을 하며 우리나라에 좋은 곳은 많이 알게 됐다. 그 때 우리나라 관광에 눈을 떴다. 여행 비수기에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다녔고 금산 게스트하우스는 페이스북으로 알게 됐다. 그런데 한 번도 와보지 못했다. 여행가이드 하면서 담양 죽녹원만 200번은 넘게 갔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은 나에게 일종의 로망이었다. ‘저 길을 건너면 순창’인데 하면서 못 갔다. 그러다 우연히 왔는데 그날 손님이 나뿐인 거다. 이틀만 있으려고 했는데 아침에 밥 먹자고 부르는 등 누님 친화력에 나흘을 있었다. 여기는 하루 이틀 자고 가려다 그렇게 하루 더 있다 가는 사람도 많다. 사람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배낭여행자 사이에 불리는 여행자들의 블랙홀이 세계에 3곳이 있다. 태국의 빠이, 인도에 레, 네팔 포카라를 3대 블랙홀로 부른다. 잠깐 왔다가 주저앉는 생활여행자들이 이곳에 많다. 여기는 빠이 같았다. 마침 누님이 이 공간을 활용할 계획이라며 카페 같은 걸 해봤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데 거기서 느낌이 왔다. 그래서 카페를 꾸민 거다”고 소개했다. 
그에게 순창은 백지 같은 곳이었다. “아무 것도 없어서 뭔가 만들어 꾸며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재즈콘서트를 계획했다. 전주에서 재즈공연으로 유명한 카페 ‘로이’ 같이 일정만 공지하고 장소를 제공하면 원하는 누구나 참가해 재즈공연 하도록 판을 키울 생각이다. 그는 지역 주민들이 시끄러워 할까봐 걱정하면서도 옆집 아저씨 할머니들이 참가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곳에서 제대로 놀아보고 싶은 그는 이 카페에 끼 많은 사람들을 불러 술을 몽땅 먹일 예정이다. 취하도록 마시고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방(금산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그가 틀어준 영상에서는 이미 소주 한 병 먹고 진심으로 ‘누구 없소’를 부르는 광주의 한 음악가의 목소리가 나왔다. “매주 금요일에 도서관 앞마당에서 재즈콘서트 하는 것 괜찮지 않나? 음악가들 공짜로 부를 수는 없으니 출연비라도 보태주면 아주 좋을 것 같다. 푸드트럭도 부르고 말이다. 아! 술은 내가 팔 거다!”는 그의 말은 그냥 지나치기에 구체적이고 이상으로 보기에는 실현 가능성이 높다. 그 실현 가능성은 사람에게서 비롯되는데 재즈 콘서트에서 보여줄 영상에는 국내 최고 인지도를 자랑하는 성우 케빈이 자처해 녹음을 하기로 했다.
장앤크래프트 브루어리의 맥주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는 향가터널에서 순창 맥주 축제도 열었으면 좋겠다며 “이미 캄보디아에서 노는 친구한테 기획해보라고 시켜놨다”고 했다. 판을 벌여놓으면 주변 사람들이 채워주는 것, 그것이 장재영 사장이 가진 인복이기도 하다. 군내 학교 원어민교사들은 이미 방랑카페 단골이 됐다. 유쾌하고 영어도 잘 하는 카페 주인장과 금세 친해졌다.

카페를 나오며 받은 명함에는 ‘무슈 장재영’이라고 쓰여 있었다. 설명이 걸작이다. “싸롱(Salon)은 우리나라에서 룸싸롱 때문에 의미가 퇴색됐다. 원래는 프랑스에서 문인들이 모이는 응접실 같은 곳을 의미한다. 보통 이곳에는 여주인, 마담이 응접을 하는데 나는 남자니까 마담은 못 되지 않나. 그래서 무슈다.”
무슈 장은 방랑카페가 여행자 카페가 되기를 바란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여행지 정보를 나누고 지도에 줄 그어가며 다음 경로를 정한 뒤 맥주병 부딪히며 어울리는 모습을 상상한다. 정기적으로 공연도 하며 사람 사는 ‘맛’ 제대로 느끼는 카페로 만들 생각이다. 그런데 수시로 자리를 비우니 당분간 “장사 이따위로 하냐”는 볼멘소리를 피하지는 못할 것 같다. 이 정도는 이해하자 그나마 “뼈를 묻을 각오로 왔다”고 했으니 다행이다. 방랑싸롱이 ‘여행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와야 할 성지’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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